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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j Nov 08. 2024

기억의 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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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밥과 누룽지를 좋아해 한식을 즐겨 먹는 편이다. 그건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 덕분이다.


친할머니 댁과 외할머니 댁에 가면 커다랗게 있던 두 개의 아궁이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연탄을 사용하는 우리집과 달리 아궁이가 있는 할머니 집이 어린 마음에 생경해서 자꾸 들여다 보았다.


엄마나 큰엄마가 불을 지필 때면 추운 겨울엔 시린 손이 따뜻해지는 게 좋아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타닥타닥거리는 아궁이를 한참 지켜보았다. 지금 생각하니 마치 불꽃놀이를 하는 것처럼 재미있어 자꾸 아궁이 곁으로 가고 싶었던 것 같다.


아궁이가 좋았던 또다른 이유는 아궁이에 불이 지펴질 때면 방안의 온기가 따뜻해지고 아랫목에 앉아 있으면 뜨끈뜨근한 방바닥에 온몸이 노곤노곤해졌다. 그 노곤함은 낮잠이나 식곤증을 불러오기도 했다.


친할아버지 댁은 항상 대식구가 살았다. 할머니. 할아버지에 함께 사시는 큰아버지 여섯 식구에, 따로 살지만 자주 가는 우리 일곱 식구까지 모두 모이면 그야말로 대식구였다. 그 많은 식사 준비를 엄마와 큰엄마 두 분이 도맡아하셨다.


지푸라기와 잔 나뭇가지를 부러뜨려서 아궁이에 넣어 불을 피워 가마솥에 밥을 짓고 누룽지를 긁고 숭늉을 마시던 기억, 긁어낸 누룽지를 꼭꼭 손으로 눌러서 설탕을 발라주어 덤으로 먹은 기억까지 새록하다. 그 누룽지가 맛있어서 누룽지 먹을 생각에 밥을 덜 먹기도 했다. 또다른 간식이자 별미였다.


어릴 땐 두 번의 명절과 제사 외에도 방학마다 친할아버지 댁에서 살다시피 했다. 엄마께서 농사철 때면 늘 농사 일을 도와야 했기 때문이다. 쌀농사에 밭농사까지 쉴 틈 없이 일하시곤 또 대식구 식사를 위해 재래식 부엌에서 아궁이에 불을 때워가며 준비해야 했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여자들의 노고가 얼마나 컸을지 짐작된다.


그때는 당연했던 것들이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게 아니었다. 누군가의 노고와 노동의 대가였다는 것을 그땐 알지 못했다. 그저 9명의 사촌들과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실컷 놀기만 하다가 때가 되면 해주시는 밥과 누룽지와 반찬을 거저 맛있게 먹었을 뿐이다. 수돗가에서 쭈그리고 앉아 닦는 설거지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여름이면 옥수수와 단호박을 먹고 겨울이면 고구마로 항시 간식을 먹으면서도 그 수고를 몰랐다.


외할머니 댁은 청주라서 자주 가진 못했지만 허리가 많이 굽으신 자그마한 할머니께서 할머니보다 더 큰 가마솥 뚜껑을 미시는 모습이 안쓰러워 옆에서 걱정스레 바라보던 기억이 난다. 그럼 할머니는 푸근한 목소리로 배고픈지 물으셨고 난 고개를 저었다. 할머니는 종종거리시며 아궁이 옆에서 떠나실 줄 몰랐다. 대식구 식사 준비를 하시느라 늘 분주하셨지만 밝은 웃음을 잃지 않으셨다. 마치 소녀 같았다. 지금 엄마 모습이 꼭 할머니를 닮았다.


외할아버지는 집에서 키우던 소 한마리에게 말없이 여물을 주며 소등을 쓸어주셨다. 마당 끝에는 펌프가 놓여있어 옆에서 빨래하시는 외할머니와 마당을 쓸고 계신 외할아버지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외할머니는 여덟 남매를 두셨다. 엄마는 둘째 딸이었다. 부모님을 생각하며 다섯 남동생을 애지중지했다. 일찌감치 서울에 올라와서 돈을 벌어 시골에 있는 동생들의 학비를 대주시던 엄마였다. 23살 이른 나이에 아버지를 만나 결혼하기 전까지 말이다. 정 많던 할머니, 할아버지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게 분명했다. 엄마의 유전자를 우리 오남매가 이어받았고...


친할머니는 초등학교 때 일찍 돌아가셨다. 외할머니는 결혼 전에 돌아가셔서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더 많다. 겨울에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차가운 땅속에 묻힌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파 눈물을 펑펑 쏟았었다.


외할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모락모락 김이 오르면서 맛있게 지어진 가마솥 밥이 떠오른다. 그때는 살아계시던 인자하셨던 외할머니. 바람이 차가워지니 굽은 허리로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지피던 그 작은 어깨를 안아드리고 싶은 몹시 그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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