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난 영혼의 동반자인 소울메이트이다. 부모님과 살아온 25년 보다 남편과 30년간 살아온 시간이 이젠 더 길다. 부모님만큼 나를 잘 아는 사람은 이제 남편이다. 부모님이 나를 낳아주셨다면, 나를 성숙시킨 사람은 남편이다. 연예 4년, 결혼 31년을 합치면 35년 간 함께 하면서 처음 해보는 아내, 엄마, 며느리 역할까지 원만히 해낼 수 있게 도와주며 진정한 소울메이트가 되었다.
편안한 친구이자 마음을 공유하는 남편과 동고동락하면서 어려움 앞에서도 인내하며 버텨오면서 함께 이루어낸 일들이 많았다. 30년간 나의 동반자로 옆에 든든히 서서 자녀를 양육하고 결혼시켜 독립시키면서 이제 둘만 남은 지금 소울메이트가 아니었다면 공허했을 텐데 내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준 남편에게 늘 고맙다.
청소년기의 소울메이트는 친구였다. 친구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속내를 주고 받았다. 순수한 그 시기의 많은 부분을 친구들과의 추억으로 채워갔다. 중학교 때는 5명의 친구들과 어울렸다. 여름 방학이면 교외선을 타고 장흥 계곡에 가서 물놀이를 하고, 겨울 방학 땐 스포츠를 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제출하는 체육 숙제를 하기 위해 살얼음진 논바닥에 모여서 잘 서지도 못하는 스케이트를 신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면서 깔깔거린 시간부터, 고등학교 땐 기차를 타고 남산도서관을 다니던 추억까지 수많은 기억들이 있다. 그런 소울메이트와의 추억이 있었기에 밝고 건강한 청소년기를 보낼 수 있었다. 지금까지 만나는 친구도 있고 연락이 끊긴 친구도 있지만 그때 함께 했던 시간만은 고스란히 내 마음 속에 남아있다.
대학 4년을 함께 보낸 두 친구와는 지금까지 30년지기로 지내고 있다. 그 시절엔 지금처럼 치열한 대학생활을 보내지 않아도 된 덕분에 나름 낭만과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지금처럼 대학 입학 과 동시에 스펙과 성적 관리, 취업 준비와 각종 자격증 등에 연연하지 않아도 졸업하면 어느 정도 취업이 보장되던 세대였다. 우린 시험만 끝나면 월미도로 향했고, 극장으로 향했고, 다른 학교의 축제도 다녔다. 같은 중학교로 교생 실습을 나간 친구와는 그때의 추억까지 공유한다. 고등학교 상담 교사로 재직중인 친구와 하와이에 이민을 가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못해도 두 친구는 지금도 나의 소울메이트이다.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어제 만난 사이처럼 편안하다. 어느새 중년이 되어 자신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자녀들의 든든한 부모의 역할을 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가끔은 예전의 앳되고 풋풋한 모습과 오버랩된다. 화살처럼 빠른 유수같은 시간에 놀라면서도 여전히 그때와 변함없는 친구들은 언제나 내 마음속의 소울메이트이다.
영혼의 동반자인 소울메이트가 있다는 건 인생을 잘 살아왔다는 증거이다. 언제든 마음 터놓고 속내를 나눌 수 있는 남편, 친구, 가까운 이들이 있기에 내 삶이 만족하고 풍성하며 감사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