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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사회생활

by oj

83세가 되신 엄마가 주간 보호 센터에 다니시면서 많이 활발해지셨다. 전화를 드려도 전에는 기운없는 목소리였다면 지금은 목소리 톤이 높아있고 한층 밝아진 모습이다.


어르신들이 나이들수록 사회생활이 필요한 이유이다. 센터 다니기 전엔 코로나라는 상황이 겹치면서 전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에 주일엔 교회, 평일엔 딸과 아들 집을 다니시는 일이 소일거리의 전부셨다. 무료해보이셨고 엄마 눈높이에 맞는 대화도 어려웠다. 집에 오시면 식사하시고 좋아하시는 가수 이미자 씨 노래나 트로트를 유튜브로 TV에 연결해 보여드리거나 맛있는 음식 사드리면 그걸 유일한 낙으로 여기셨다.


일을 하고 있는 나도, 함께 사는 동생도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없어 무료하신 엄마는 대부분의 시간을 둘째 언니네와 남동생 쉬는 날 함께 보냈다. 이제 연세가 있으시고 치매도 찾아온 이후론 자존감도 낮아지시고 우울증까지 찾아왔다. 식사하시면 주무시거나 누워 계시는 엄마가 좀 활동적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마땅한 일도 장소도 없었다.


예전의 엄마는 활동적이고 활달하시고 건강하셨다. 흥도 많으셨고 말씀도 재밌게 하셔서 꿈 얘기나 옛날 얘기, 시골 살 때 얘기들을 실감나게 풀어놓으셨다. 게다가 12명의 손주들의 산후 조리까지 다 해주시면서 엄마 손을 안 거쳐간 손주들이 없을 만큼 억척스럽고 강인했다. 자식들에게 한없는 사랑을 주신 헌신적인 엄마셨다. 인정도 많고 손도 커서 이웃들도 잘 대접하시고 계절마다 김치를 담그시고 주시면서 뭐든 적극적이신 엄마도 병 앞에선 나약하고 무기력해지니 별 도리가 없다.


엄마가 자식들에게 오직 하나만 바라셨다.

"오남매 가정가정 편안하고 건강한 것 밖엔 난 바라는 것이 없다"

라고 늘 같은 말씀만 하신다. 명절. 생일. 가족 모임. 신년 등 자식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고 하면 늘 똑같은 말씀이다.


아버지는 투정도 잘 부리시고 자식들에게 바라시는 것도 많으셨다면 엄마는 서운함도 내비치지 않으시고 늘 있는 자리에서 묵묵히 자식들의 안위와 행복만을 바라신다. 그런 아버지에겐 시간과 정성을 쏟으면서 기분을 맞춰드리면 금방 허허거리시며 감정 표현을 잘 하셨지만 엄마는 이런저런 어떤 내색을 안 하시니 상대적으로 마음을 덜 쏟는 게 사실이다.

엄마는 여전히 어떤 요구도 없으시다. 자식들이 뭔가라도 해주면 그렇게 미안해 하신다. 당당히 누리셔도 되는데 엄마는 당연히 받아드리지 않는다. 가끔씩 젊었던 엄마에게 사랑을 듬뿍 받을 때만 잘해드린 것은 아닌지 자식들의 속내가 드러나 보일 때면 '어쩔 수 없는 속물이구나.' 죄송하고 스스로 자책하기도 한다.


그동안 희생과 헌신을 다하신 만큼 이젠 자식들보다 엄마 자신을 위해 사시기를 바랄 뿐이다. 자신에게 쓰는 돈. 음식. 옷은 아직도 아깝다고 하시니 어떨 땐 참 답답하다. 엄마 스스로를 위해주고 소중히 여겨야 된다고 말씀드리면 이젠 다 살았으니깐 괜찮다고 하신다. 아무리 몸에 배인 태도라지만 너무 심하시다.


보호 센터에 다니시면서 사회생활을 하시는 것처럼 좋아하신다. 명절을 앞두고는 한복 입고 잔치와 축하 공연도 하고 웃음 치료. 노래 교실. 만들기. 편지 쓰기 등 활동을 하면서 무료함을 줄이셨다. 점심 식사 후엔 30분 정도 낮잠 시간도 있고 밝고 배려심 많은 엄마 성격 탓에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좋다. 적응을 잘 하고 계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한층 밝아진 엄마를 보니 마음도 놓인다. 복지관님께서 주변 어르신들께도 친절하고 밝으셔서 인기가 많다고 자주 소식을 전해오신다.


어르신들일수록 더 사회생활이 필요한 이유이다. 실버타운 조성을 늘려서 어르신들이 모여 살면서 사회활동도 하시고 식사나 건강 관련 케어도 하겠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도심이 아니더라도 병원이나 여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설과 저렴하게 입주할 수 있는 비용 문제 등이 개선되어 효율성 있는 고령화 대책이 마련되길 바란다.


엄마가 사시는 날 동안 건강하시고 황혼의 인생이지만 충분한 행복과 만족을 느끼시기를 바란다. "한 부모는 열 자녀를 키워도 열 자녀는 한 부모를 돌보지 못한다"는 말을 되새긴다. 엄마 마음을 더 헤아리고 마음만이 아닌 행동으로 애틋하게 더 마음 써드려야겠다고 되뇌인다.


'사랑은 명사가 아닌 행동으로 하는 동사라고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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