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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j Jun 11. 2024

삶을 살아가는 용기


내가 제일 약한 부분은 용기이다. 도전 정신도 없고 두려움도 많다. 이번에 빌린 책 중 읽고 싶었던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가는 길이 꽃길이다> 라는 손미나 아나운서 책도 있었다. 멋지고 당찬 여성이란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배울 점이 많고 깨어있는 의식을 가진 작가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안정적인 KBS 아나운서를 내려놓고 돌연 스페인으로 유학을 떠난 일은 쉬운 선택이 아니었을 것이다. 석사를 마치고 다시 돌아와서 방송 일을 하면서 진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과감히 사표를 낸 이유도 이미 넓은 세상을 경험했기 때문이었리라. 이후 여행 수필 작가가 되고 스타트업 창업을 한 그녀의 도전 정신은 용기에서 비롯되었다. 꽃길이 될지 가시 밭길이 될지도 모르면서 도전하는 그 용기가 부럽다. 여러모로 나와 대조적이다.


여행을 좋아해도 혼자만의 여행을 해본 일이 없다. 정해진 숙소에 정해진 사람들과 정해진 스케줄 대로 움직이는 걸 좋아한다. 특히 해외여행은 하와이로 친구와 둘이 갔던 자유여행 (그것도 하와이에 사는 친구가 있어 가능했다) 외에 모두 여행사를 끼고 다닌 여행이었다. 언어의 장벽도 두렵고 여행의 묘미를 제대로 몰라서 인지도 모르지만 무엇보다 편하고 안전한 게 제일이란 생각 때문이다. 일단 두려움과 걱정이 많다. 일어나지 않는 일까지 걱정하며 사는 편이다.


혼자 남미 여행을 갔다는 아들 친구 얘기를 듣고 혼자 여행하기 위험한 곳이라며 미리부터 걱정한다. 태국. 대만. 필리핀. 싱가포르. 일본. 베트남 등 자유여행을 가는 아들들이 돌아오는 날까지 안심이 안 된다. 친한 친구 언니가 60세에 홀로 산티아고 순례길에 한 달 이상 다녀왔다는 말을 듣고는 기겁을 했다. 대담하지 못하고 소심한 내 성격 탓도, 우물 안의 개구리로 오래 살아온 내 환경 탓도 있다.  나로선 상상도 못할 일이다.


티베트 속담에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으면 걱정이 없겠네.' 란 말이 있다고 한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고치고 싶어도 안 되는 병이다.


작가님은 스페인. 일본. 아르헨티나. 파리. 페루. 칠레 등을 여행하며 여행기를 계속 집필하고 번역과 장편 소설에도 도전하고 지금도 진행 중이라니 그 도전과 용기를 응원한다. 나의 소심함과 용기없음이 책을 읽으면서 더 비교되었다.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해서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는 것이 가장 부러웠다. 스페인어를 전공하고 기본적으로 영어를 구사하고 해외 유학파여서 언어에 대한 장벽이 전혀 없다고 해도 혼자만의 여행은 어려운 도전이다. 세계 여행을 다니며 터닝포인트 기회로 삼고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며 국적을 불문한 우정을 쌓기도 했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작가에게 부러운 또 한 가지 사실은 너그럽고 자상하고 지적인 아버지의 존재였다. 남다른 부모님을 만나서 부모님의 말과 행동을 보며 가르침을 잘 받고 자란 작가님이었다. 고3이야말로 쉬어야 한다고 말씀해주신 아버지. 진로를 함께 고민해주신 아버지. 대학생이 된 딸의 자유분방한 행보에 조용히 학보를 보내신 아버지. 수시로 딸과 수많은 편지와 메일로 소통하며 많은 부분을 상의했던 걸 보면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았다. 갑자기 나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태어나게 만든 아버지를 내가 선택할 순 없지만 어려서는 원망의 대상. 커서는 연민의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내 아버지이기에 많이 사랑했다. '살아계실 때 좀 더 잘해드릴 걸' 후회가 남지 않는 자식은 없을 테지만 돌아가시기 전까지 마음을 다해 사랑을 드렸다. 아버지도 사랑의 깊이와 넓이가 다를 뿐 나름대로 표현하셨으리라.


만약 작가님처럼 한없이 존경했던 아버지였다면 내 삶은 어땠을까. 달라졌을까. 존경이 아닌 측은지심으로도 돌아가신 뒤 태산을 잃은 것 같은 허전함과 살면서 밀려오는 그리움이 크다는 걸 경험해서 아버지의 부재가 준 가족의 상실감 부분에서 공감됐다. 제각각 슬픔을 견디며 마주치지 않고 싶어했던 가족과 달리 우린 똘똘 뭉쳐 슬픔을 견뎠다. 이별은 잊혀지는 것이 아니다. 함께 추억하며 슬픔과 고통을 극복하는 것이다.


작가님은 복이 많다. 각자 타고난 복과 재능이 다른 것처럼 부모님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꽃길로 태어났어도 제대로 살지 못한 이들도 있으니 작가님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이룬 것이다. 각자 환경을 받아드리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 상황을 바꾸고 개선하면서 자기 몫대로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작가는 부모를 잘 만나서도 아니고 아나운서를 단번에 붙어서도 아닌 스스로 용기내어 도전하며 삶을 개척해 나갔기에 얻어진 결과물이다. 아니다 싶은 일에 박차고 나올 수 있는 용기. 오지에 가는 것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대담함. 부딪히며 배워가는 당당함. 생각의 전환이 가능한 유연한 사고. 주변을 돌아보며 관심을 갖는 사랑과 이해의 마음 등이 작가님을 지금의 자리에 서게 만들었다.


용기와 도전은 많은 걸 바꾼다. 환경을 탓하고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푸념만 하고 있으면 바뀌는 것이 없다. 물론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할 수는 없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정말 하고 싶고, 성취했을 때 즐거운 일에 용기내고 도전하면 된다. 그 일이 거창하지 않더라도 작고 소소한 일이라도 스스로 찾을 때 열정과 용기가 생길 거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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