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보홀은 청정지구로 요즘 뜨고있는 여행지이다. 남편 친구 부부 세팀이 갔던 이번 여행은 긴 휴가를 낼 수 없는 각자의 일정으로 3박5일 동남아 여행을 계획했다. 코타키나바루와 세부. 보홀을 놓고 고민하다가 평이 좋고 고래상어로 유명해진 보홀로 정했다.
보홀은 생각 이상으로 값진 여행이었다. 남편은 50년지기 친구. 여자들은 30년지기가 된 부부 모임으로 절친들이다.올해 환갑을 맞는 남편들을 기념하기 위해 가볍게 다녀온 여행이지만 의미는 남달랐다.
보홀은 우기에 접어들어서 계속 비소식이 있었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제주도의 1.5배일 만큼 큰 곳이며 유네스코 자연유산인 청정자연지구여서 가는 곳마다 자연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었다.알로나 비치를 중심으로 보홀 본섬 옆인 곳은 그야말로 높은 건물과 자동차가 별로 없는 작은 마을이었다.
첫 날은 자유시간으로 편안한 일정을 보냈다. 간단히 조식을 먹고 리조트에서 2시간 정도 수영을 했다. 길이가 꽤 길어서 그동안 갈고닦은 수영 덕분에 아침 시간을 즐겁게 보냈다. 공놀이도 하고 수영과 잠수 시합도 하면서 간만에 일상을 벗어나서 자유로움을 마음껏 누렸다.
게요리로 유명한 레드 크랩 식당에 가서 게와 모닝글로리. 볶음밥으로 푸짐하게 먹은 점심은 다들 만족해 했다. 환갑을 맞아도 게모자를 쓰고 밝게 웃는 순수한 세 남자들 덕분에 웃음바다에 화기애해한 식사시간이었다.
남편은 동남아의 망고와 망고스틴을 엄청 좋아해서 점심 후에 망고 아스크림과 망고 쥬스를 먹으러 갔다. 입에서 살살 녹았다.갑자기 비가 쏟아져서 알로아 비치 산책을 잠시 미루고 발맛사지를 하며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저렴한 가격으로 한 시간 받은 발맛사지는 다리 전체를 시원하게 맛사지 해주어서 피로가 풀렸다.
비가 많이 그쳤다. 스콜이 자주 있는 변화무쌍한 날씨이다. 알로나 비치에 가니 길게 펼쳐진 모래사장 옆으로 옥색 바다가 아름다웠다. 낚시. 이동수단. 관광 목적으로 쓰이는 작은 배인 방카가 즐비해 있었다. 고운 모래사장에서 놀며 수영을 즐기는 아이들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해맑다.
지프니를 타고 나왔는데 갈 때는 툭툭이 두 대를 타고 들어왔다. 필리핀의 대표적인 이동 수단으로 어디서는 편리하게 탈 수 있다. 시원하게 아이스 커피를 마시고 샤브샤브를 먹으러 갔다. 한국식과 비슷했다. 반찬으로 나온 감자채와 무채볶음은 입맛을 돋구었고 각종 야채는 호불호가 없는 음식이다.
숙소에 모여 낮에 알로나 비치에서 산 망고와 망고스틴을 먹으며 첫날 여정을 마쳤다. 자유 일정을 보내니 한결 여유가 있었다.
둘째 날은 호핑 투어를 위해 일찍 모였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돌고래 워칭. 발리카삭의 바다 거북이. 스노쿨링. 버진아일랜드 섬 세 가지 일정을 위해 방카를 타고 이동했다. 돌고래는 배가 출발하자마자 금방 떼를 지어 출몰해서 쉽게 볼 수 있었다. 거북이는 아쉽게도 내 눈에는 띄지 않았다. 바다 밑을 보며 조류를 따라 내려가면서 세 마리나 봤다고 했다. 배에 올라타서야 옆으로 지나가는 큰 거북이를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스노쿨링을 위해 다시 이동을 해서 본 바다밑이 너무 깨끗하고 맑았다. 니모로 알고 있는 빨간빛. 파란빛 흰동가리와 산호. 수많은 작은 물고기가 너무 예뻤다. 깊은 바다로 나뉘는 경계에는 바다색이 확연히 달라졌다. 푸르고 맑은 옥색 바다색이 검푸른 빛으로 바뀌면서 깊이를 알 수 없는 절벽 옆으로 작은 물고기 떼가 수없이 다니는 모습은 경이로움 자체였다. 저 깊은 바닷속이 어떤 모습일지 약간의 두려움마저 느껴졌다.
버진 아일랜드로 이동했지만 물이 차서 들어가지 못하고 대신 청량 음료 광고로 유명해진 작은 섬에서 잠시 자유시간을 보냈다. 해일과 폭풍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맹그로브가 바다에서 자라고 있었다. 맹그로브는 탄소저장능력이 뛰어나고 뿌리가 밖으로 자라는 공기뿌리 이다. 해수로부터 소금을 걸러내고 영양분을 흡수한다고 하는데 밖으로 뻗어나온 뿌리가 엄청 크고 단단해서 앉아 있어도 끄떡없었다. 신기한 나무였다.
호핑 투어를 사실 처음 해봤다. 하와이에서도 푸켓에서도 보라카이에서도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물 공포증이 커서 들어가지 못했다. 수영을 배우니 좀 덜해져서 호핑투어가 가능해졌다. 신비한 바닷속을 들여다보면서 경이로운 자연에 감탄했다.
현지식 점심을 먹고 들어와서 조금 쉬다가 저녁을 먹고는 반딧불을 보러 갔다. 배를 타고 가서 반딧불이 반짝이는 나무를 보니 마치 크리마스 트리 장식을 연상시켰다. 반딧불은 해가 진 후 한 시간 정도 환한 불빛을 낸다고 하며 보통 수컷이 빛을 발한다. 가장 큰 엄마 나무라는 곳에서 가장 많고 밝은 반딧불을 볼 수 있어 환상적이었다.
마지막 날 고래상어는 가장 기대가 컸다. 새벽 6시에 나간 바다 한가운 데에서 방카를 잡고 고래상어를 기다렸다. 고래상어는 크기에 비해 입이 작아서 작은 새우나 물고기를 먹는다고 한다. 과연 볼 수 있을까 했는데 금방 나타났다.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본 고래상어 크기는 어마무시했다. 10m~12m 정도 되는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 너무 가까워서 발에 닿았는데 딱딱했다고 한다.
그렇게 큰 고래상어를 수족관이나 영상이 아닌 실물로 그것도 바로 아래서 유유자적 헤엄치는 고래를 보니 입이 딱 벌어졌다. 작은 빨판 상어도 보았다. 이리저리 자리를 이동하며 옆모습 앞모습을 본 사람들도 많았지만 등과 꼬리 지느러미 만으로도 족했다. 나중에 남편이 찍은 고프로로 고래상어의 앞모습과 먹이를 먹는 입모양까지 보니 신비감이 더했다.
숙소로 돌아와서 조식을 먹고 짐을 싸고 나와 마지막 일정을 보냈다. 보홀에서 가장 크다는 바클라욘 성당은 산호석과 달걀 껍질을 이용해 만들어진 건축물로 종탑이 세워져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2013년 지진으로 일부가 훼손되었지만 아직 견고해보였다.
전 날 반딧불을 본 장소로 다시 가서 배를 타고 선상에서 점심을 먹으며 로복강 투어를 시작했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자 선상에서 강을 따라 야자수와 숲을 바라보니 운치 있었다. 잠시 멈춰서 민속춤 공연을 보고 통기타를 치며 부르는 음악과 식사. 망고쥬스와 과일. 좋은 사람들과의 대화. 행복이 밀려왔다.
도착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새 비가 그쳤다. 동남아의 스콜은 참 신기하게도 비가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면서 더위를 식혀준다. 날씨가 한몫한 시간이었다.
안경원숭이를 보러 간 곳은 밀림으로 둘러싼 숲속 같았다. 그곳에서 미동도 없이 숨어있는 안경원숭이는 크기가 정말 작았다. 크기는 작은데 비해 눈은 동그랗고 커서 안경처럼 보여 이름이 붙여졌고 꼬리는 쥐처럼 길었다. 보호 받는 멸종위기종으로 놀라지 않도록 조용히 다니면서 숨어있는 안경원숭이를 찾는 재미가 쏠쏠했다.
마지막 장소는 불가사의로 불리는 삼각 모양의 초콜릿힐이었다. 가을이면 초콜릿 색깔로 변한 삼각모양의 산이 키세스 초콜릿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70개 이상의 계단을 올라가면 전망대가 있어 멀리까지 보였다. 여기저기 보이는 작은 언덕이 능같아 보이기도 하고 작은 오름 같아 보이기도 했다. 200만 년 전에 형성된 1200여 개의 언덕이라니.
올라가니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전망대에서 본 초콜릿힐은 실망시키지 않았다. 사진으로 다 담지 못하는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마음속에 마음껏 담고 발걸음을 돌렸다.
막바지 아쉬움은 아로마 마사지로 달래며 피로를 풀었다. 한시간 반 가량 아로마 향기와 부드러운 맛사지로 여행을 마무리했다. 동남아는 물놀이. 열대 과일. 호핑 투어. 맛사지만으로도 충분한 만족을 준다.
3박 5일 짧은 일정이었지만 긴 여행처럼 느껴질 만큼 충분히 여유있고 꽉찬 일정이었다. 여행지는 그 나라의 민족성까지 느끼게 한다. 더운 나라 사람들의 특징이 게으르고 잘 살지는 못하지만 순박함이 있다. 바쁘지도 급하지도 않는 슬로우가 몸에 배어있으며 친절하고 웃음이 많은 민족이다. 큰 욕심 없이 살아가면 작은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우리보다 더 잘 살았던 필리핀이 낙후된 것은 부패한 지도자들 때문이다. 스페인. 미국.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필리핀의 아픈 역사 이후 지도자들 몇 명이 땅을 분배받아 빈부 격차가 심한 나라가 되었고 가난이 대물림 되면서 발전을 더디게 만들었다. 어찌 보면 희망이 없어 보이는 가난한 나라이지만 지도자들만 제대로 했다면 크게 발전할 수 있었을 거란 아쉬움이 남았다. 한국전쟁 당시 많은 도움을 준 고마운 나라이기도 하고 카톨릭 국가에 인구 축소도 걱정 없는 필리핀이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환갑을 맞은 친구들의 우정이 더욱 돈독해졌다. 벌써부터 다음 여행은 스페인으로 정하자는 걸 보니 다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여행이 된 것 같아 므흣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