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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j Jul 17. 2024

내 남편은 김가이버


남편은 맥가이버 같다. 남편의 성을 붙여 내가 만든 별명이 김가이버이다. 손재주가 많은 남편은 불편하다고 호소하는 것들을 바로 편하게 고쳐준다. 꼼꼼한 남편이 있어 편한 반면 덜렁거리고 실수가 잦은 난 상대적으로 위축될 때가 있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남편. 감성적이고 유연하고 자유분방한 나. 그 차이는 극명하다.


 "슬퍼서 빵을 먹었어." 란 질문에 대한 대답이 화제였다. 그 질문에 대해 난

 "왜 슬픈데. 무슨 일 있어?"

라고 답했다. 남편에게 똑같이 물으니

 "슬픈데 왜 빵을 먹어?"

란 답이 돌아왔다. 난 빵보다도 슬픈 이유가 궁금했고 남편은 슬픈 이유보다 왜 빵인가가 궁금했다. 남편은 전형적인 T, 난 F 이다. T와 F이기에 잘 맞는 점도 있다.


꼼꼼하고 손재주 많은 맥가이버 남편 덕을 많이 본다. 최근엔 가방 정리함을 만들어주었다. 폭은 30cm 깊이는 60cm 거실 선반장에 뒤죽박죽 넣어놓은 가방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왔다. 크기가 다른 가방 정리가 쉽지 않아 자주 쓰는 가방 순으로 넣었지만 깊숙이 들어간 다른 가방을 꺼낼 때마다 늘 불편했다. 툴툴거리는 내게 안 그래도 만들어 주려고 레일을 주문했다고 했다. 며칠 뒤에 온 레일을 선반장 안에 설치하고 칸막이가 있는 선반을 올려서 가방을 하나씩 넣었다. 안쪽에 있는 가방을 꺼낼 때면 레일이 있어 넣었다 뺐다 하니 편했다. 정리도 깔끔하게 되어서 아주 만족했다.


두 번째는 셀프 베란다 리모델링이다. 매 주마다 오던 둘째 아들이 결혼하니 짐이 많이 줄었다. 큰 아들은 두 주에 한 번 정도 와서 빨래까지 줄어 베란다 빨래 건조대를 치우고 옆쪽 천장에 새로 달았다. 넓어진 베란다엔 타일을 사다가 직접 붙이고 왁스 칠을 끝내고 모서리에 실리콘 처리까지 끝냈더니 환한 공간이 되었다. 거기에 캠핑 의자 두 개와 테이블을 놓아서 커피 마시고 음악 듣고 쉬니 너무 좋았다. 네 자매가 모여 치맥을 할 수 있을 만큼 넓고 아담한 공간이 되어 말만 하면 뭐든 되니 좋겠다며 부러움을 샀다.


세 번째는 아들 방 정리하면서 제법 큰 3단 서랍장이 필요가 없어졌다. 버리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방에 둘 곳이 없었지만 안방 화장실 앞 드레스룸 공간에 놓인 행거와 사이즈가 비슷해 보여 행거 밑에 놓고 쓰고 싶다고 하자 크기를 재보더니 맞을 거 같다며 바로 작업에 돌입했다. 서랍이 없던 행거에 3단 서랍장이 들어간 행거로 변신하면서 한칸은 양말. 두 칸은 가벼운 옷들이 들어갈 정도로 충분한 수납 공간이 되어 활용도가 높아졌다.


꼼꼼하고 손재주 많은 남편 덕분이다. 붙박이장 안에도 칸이 더 필요하다면 칸을 더 만들어주고 뾰족해서 위험하다 싶은 모서리엔 어느새 보호막이 덮인다. 애들이 어릴 때도 함께 레고를 맞추고 블럭놀이를 하고 타이타닉 배를 끝까지 함께 조립해서 장식해 두기도 했다. 난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픈데 어떻게 저렇게 아이들과 잘 놀아주고 꼼꼼한지 늘 놀랍다.


내겐 너무 고맙고 과분한 사람이다. 늘 한결 같은 사람. 말없이 과묵하게 일하는 사람. 부드럽고 자상한 사람. 무슨 복인가 싶을 때가 많다. 30년 결혼 생활을 해보니 이제 큰 노력 없이도 부딪힘 없이 살아간다. 마음 편하게 해주어서 지금까지 잘 살고 있는 거라며 서로를 높여준다.


우리 자매들에겐 이모님으로 아이들에겐 알뜰신잡으로 주변 남편들에겐 공공의 적으로 나에겐 맥가이버 같은 든든하고 자상한 남편이기에 내 삶이 더 풍성하고 편안하며 감사하다. 서로 너무 다르지만 맞춰 가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 이제 둘만 남게 된 제 2의 하반기 삶을 서로 의지하며 알콩달콩은 아니더라도 두런두런 살아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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