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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j Aug 27. 2024

잘못된 방식의 사랑

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


 드라마 마지막 회를 보며 착잡하긴 처음이다. 드라마를 시청하며 많은 생각과 맞닥뜨리고 주인공 희주와 혜원이의 입장이 되어 감정이입이 되었다. 제목처럼 닮은 듯 다른 사람이다. 사랑에 집착하는 모습은 비슷하고 사랑의 방법은 너무 다르다. 희주는 사랑에 너무 가볍고 혜원이는 사랑에 너무 진지하다. 이들의 사랑은 과연 옳았을까? 잘못된 방식의 사랑이란 결론에 도달했고 폭풍이 지나간 자리는 참담했다. 어느 누구도 행복의 자리에 있지 못했다.


 정희주. 가장 이기적이고 자기 합리화를 잘 한 여자이다. 부유한 시댁과 자상한 남편에 다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자격지심에 눌려 거만한 시어머니의 무시와 냉대로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것으로 채운 것 같다. 친한 동생과 결혼까지 약속한 남자를 가로채 야반도주를 하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결국 그 사랑도 지키지 못하고 자기 것을 끝까지 포기하지도 못한 채 그 남자를 버리고 도망쳐 버린 용서받지 못할 여자였다. 남편의 용서와 사랑도 받고 화가로서의 꿈까지 이룬 완벽한 여자였지만 보이지 않는 열등감과 억눌린 감정을 해소하지 못하고 결국에 남편, 혜원이, 소중한 딸, 우재까지 너무 큰 상처를 남겼다. 올가미에 갇혀 빠져나올 방법을 찾기 위해 망설임도 없이 애인과 남편에게 수면제를 먹이는 무서운 여자임에 틀림없고 상처를 준 혜원이에게도 진심어린 사과보다 뻔뻔함으로 일관했다.


남편과 시댁에게 들킬까봐 전전긍긍하며 자기 행복만 지키려는 이기적인 여자였다. 그런 그녀도 모성애 앞에서는 무너졌다. 딸을 위해 다 버리고 내려놓았으니... 처음부터 상처 줄 행동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집착과 광기로 사랑이라고 착각한 옛 연인을 되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남자에게서 엄마를 지키기 위해 그 남자의 목을 찌른 딸을 위해 그동안 움켜쥐던 모든 것을 버리고 조용히 사라진 마지막 행동은 처음으로 인간적이라고 느꼈다. 엄마라면 누구라도 했을 행동이다. 원인 제공을 한 사람이 본인이기에 스스로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화려했던 삶을 뒤로 하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조용히 살며 죄책감과 상실감으로 자신이 만든 감옥에 갇혀 후회인지 체념인지 모르는 공허한 눈빛의 마지막 모습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자신이 우재를 밀어 넣은 호수에 앉아 무슨 생각을 했을지 약간의 동정심마저 들었고 극단적인 선택만은 하지 않기를 바랐다. 자신이 가진 행복에 만족하지 못한 참 안타까운 여자였다.

 

 구혜원. 비련의 여주인공 같지만 그 사랑도 어쩌면 비정상적인 사랑일지 모른다. 진짜 사랑했던 사람을 잃은 고통, 그것도 친한 사이였던 언니에게 사랑하는 이를 뺏긴 배신감과 고통은 아무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이 느낀 배신감을 똑같이 느껴보게 하려고 두 사람에게 복수하며 상황을 악화시키는 거침없는 행동은 또 다른 집착에 가까웠다. 진짜 사랑했다면 보통의 연인이 그러하듯 깨끗이 잊고 떠나보냈어야 한다. 결국 사랑하는 이에게 두 번 배신당하고 그의 죽음까지 방조하며 희주의 모성애를 너무 쉽게 이해하고 용서하는 모습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자신이 소중한 생명을 잉태한 경험이 있어 아무리 그 마음을 이해한다고 해도 말이다. 우재에게 자신을 떠날 거면 죽으라고 말한 죄책감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함인지, 진짜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체념인지, 희주의 딸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을 보면 우재에 대한 사랑이 진짜였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상처 받고 악만 남기 전에 우재에 대한 사랑을 단념하고 새 출발했더라면 자신이 상처 준 누군가에게 길에서 칼을 맞는 일도 없이 자신의 삶을 더 의미 있게 만들지 않았을까. 마지막 모습이 화면에 비치지는 않았지만 우재와 희주가 떠난 뒤에야 화가로서 자리매김하며 전시회를 개최하는 장면에서는 그나마 혜원이 조금은 마음의 보상을 받은 것 같아 안심 된다.


 서우재. 가장 나쁜 사람이다. 결혼까지 약속한 여자를 두고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연인을 속이고 심지어 결혼식을 앞두고 말없이 사라져버린 파렴치한에 냉혈한이다. 자기감정을 솔직히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고 깨끗이 정리하고 새롭게 시작했어야 옳다. 그랬다면 혜원이도 그렇게까지 배신감을 느끼고 지나간 사랑에 집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을 모른 채 다시 만난 혜원이랑 결혼식까지 올리고 부부가 되었으면서도 잃어버린 기억이 돌아왔다고 자기 사랑은 다른 사람이었고 희주를 지금도 사랑한다며 혜원이에게 두 번이나 상처 입히고 뻔뻔하게 이혼을 요구한 오만하고 비열한 남자이다.


한때의 바람이 아닌 진정한 사랑이었어도 양방향이 아닌 일방적인 사랑은 옳은 사랑이 아니다. 기다려준 연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켰어야 했다. 결국 희주에 대한 사랑을 되찾기 위한 욕망이 집착과 광기로 이어져 허황된 꿈을 놓지 못해 비참한 최후를 맞는 어리석고 안타까운 남자. 자신이 탯줄을 자른 아들이기에 희주의 아들을 지금도 자기 아들이라고 우기며 다시 단란한 가족을 꿈꾸던 어리석은 남자. 혼자만의 집착에 빠져 재능 있는 화가로서의 꿈도 아름다운 사랑도 다 놓치고 젊음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차가운 호수에 가라앉는 마지막 모습에 인간적으로는 연민과 동정을 느꼈지만 인간실격인 사람이다.


 안현성. 희주 남편은 어찌 보면 가장 안타깝고 동정심이 갔지만 그 역시 진정한 사랑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자신을 속이며 유학 생활동안 부인이 바람피운 사실을 알면서도 용서한 남편을 대인배인지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옳은지.


자상한 남편에 다정한 아빠의 모습에 거만한 시어머님으로부터 아내까지 지키려는 태도는 완벽한 동정심을 유발하지만 결국 아내와 바람피운 남자를 차로 치는 큰 범죄를 저질렀기에 용서받아서는 안 될 사람이다.


아마 유전자 검사한 아들이 자기 아들이 아니었더라면 부인에게도 어떤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지 모르는 무서운 사람이다. 자기 감정을 숨기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처럼 무서운 사람도 없다. 자기 부인에게 책임을 물어야지 상대방에게  화풀이와 복수라니 비열하다.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가정을 끝까지 지키려고 아내를 용서하고 인내하고 포용한 결과는 결국 부인이 옛 애인과 다시 야반도주했다는 오해 속에 평생 갇혀 분노하며 괴로워하는 것으로 충분히 벌을 받지 않았을까.


상처 입은 딸도 결국 유학을 선택하며 엄마와의 기억을 지우려 했다. 그렇게 지키려고 했던 소중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질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중에 아내가 끔찍한 일을 저지른 딸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과연 또 다시 용서할 수 있을지 그 내면이 궁금한 마지막 회였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는 참담했다. 잘못된 사랑의 결과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에밀리 브론테의 대표적 작품 ‘폭풍의 언덕’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여운이 남는 작품이었다.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기분과는 상관없는 일방적인 사랑과 집착은 잘못된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은 현실에서도 많이 보았다. 지속적인 스토킹과 데이트 폭력 등은 잘못된 방식이 낳은 사랑이다. 그들은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절대 사랑이 아닌 집착이고 독선이고 범죄이다.


상대방의 행복을 바라고 서로 속이지 않고 신뢰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사랑. 함께 있을 때 기쁘고 편안하고 보듬어주는 사랑. 받는 것보다 줄 때 더 기쁜 사랑.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싶다.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알았다면 모두 행복의 자리에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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