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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j Oct 16. 2024

벌써 환갑이라니...


남편이 육십갑자의 한 갑자가 다시 돌았다는 뜻의 환갑을 맞았다. 내겐 아직 30년 전 결혼할 때 그 모습 그대로인 것 같은데 어느덧 환갑이라니... 30년을 함께 가정을 이루면서 듬직한 두 아들을 키워내고 지금까지 희노애락을 함께 한 남편이 환갑을 맞으니 감회가 새롭다.


예전에 아버지의 환갑 잔치를 성대하게 치렀던 기억이 난다. 많은 이들의 축복을 받을 만큼 장수의 의미가 담긴 기쁜 날이 환갑이었는데 이제 백세 시대가 되면서 칠순, 팔순 잔치도 하지 않는다. 가족끼리 소소하게 보내지만 보통의 생일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건 사실이다.


젊을 때보다 나이들수록 중후한 멋이 더해가는 남편은 나이에 비해 젊어보인다. 자기 관리도 철저하고 꾸준한 수영 덕분이다. 옆에서 내가 맘 편하게 해준 덕분이라며 우스갯소리를 던지면 맞다고 맞장구를 쳐준다. 부창부수이다.


남편은 책임감이 강하고 성실하다. 25년 회사에서 근무하고 명퇴할 때까지 새벽 출근에도 말없이 소임을 다했다. 퇴사하고 힘든 일은 없었냐는 질문에 왜 없었겠냐고 하면서 힘든 일 다 말하면 해결되지도 않는데 같이 고민하면 뭐하겠냐고 했다.


고충이 없지 않은 걸 알기에 말없이 묵묵히 감당해낸 남편이 늘 고맙고, 명퇴할 때는 정말이지 그동안의 수고 눈물이 났다. 1년을 쉬고 재취업을 하면서 5년 넘게 하고 있는 지금의 일에도 만족해 한다. 뭐든 성실하게 책임을 다하는 남편이다. 한층 시간적 여유가 있고, 맘도 편하고, 아직 사회생활을 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올곧고 강직한 남편은 아이들에겐 다정한 아빠였고, 내겐 자상한 사람이었다. 부모님보다 함께 한 시간이 더 많은 남편, 누구보다 가족을 아끼고 헌신을 다해준 남편, 기쁘나 슬프나 함께 감당하며 옆에 있어준 남편, 부모 형제에게도 지금까지 마음을 잘 써 주는 남편을 만난 건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다.


우리 가족과 양가 형제들만 초대해 부페 룸에서 간단히 식사를 했다. 형제들도  환갑 때 모여 식사를 했고 새로 맞은 두 아들의 며느리도 맞은 터라 마련한 자리였다. 팔순이 넘으신 두 어머님들께서 가장 흐뭇해하셨다. 아들만 넷인 어머님은 셋째 아들까지 환갑을 맞으니 감격하신 듯했다. 살아온 인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가셨으리라.


어머님은 셋째인 남편을 많이 의지하셨다. 큰아들을 정신적으로 의지하셨다면 세밀하게 필요를 채워준 딸같은 아들인 남편은 마음으로 많이 아끼셨다.


그런 아들이 환갑을 맞아 두 손주와 손주 며느리까지 게 되셨으니 내심 감격스러워 하시는 모습이 보였다. 좌청룡 우백호처럼 양쪽에 든든한 두 아들과 예쁜 두 며느리까지.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쁨이었다.


인생은 60부터라며 행복하고 건강하시란 현수막에 사진까지 넣어 제작해 벽에 걸어두고, 맞춤 주문한 케익에는 아빠 생일을 로또 번호로 새겨서 로또 케잌을 만들고, 꽃다발 상자 안에 꽤 많은 현찰 선물을 준비했다.


잘 커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세밀하게 아빠 생일을 준비해준 두 아들에게 너무 고마웠다. 내년 봄에 결혼을 앞둔 큰며느리는 요즘 입기 적당한 바람막이를, 작은 며느리는 남편의 출퇴근용 가방을 선물해주었다. 두 사돈께서 보낸 와인과 상품권까지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가장 기쁜 선물은 올 봄에 결혼한 며느리가 남편을 위해 김동규 씨의 '10월 어느 멋진 날에' 란 노래를 바이올린으로 연주해준 일이다. 간호사 일로 바쁜 데도 틈틈이 연습해서 서프라이즈로 가족들 앞에서 연주를 선사해 감동의 시간이었다. 바이올린 선율이 너무 아름다워 남편은 눈물까지 흘렸다. 모든 게 감사한 순간이었다.


모든 순서가 끝나서 남편에게 인사를 전하라고 했지만 울컥하고 쑥쓰럽다며 못하겠다고 해서 내가 대신 아들들과 두 어머님, 형제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두 시간 동안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살면서 이토록 기쁘고 감격스러울 때가 있을까. 아들들이 결혼하니 그 몫을 해내고 있어 너무 든든하다. 댓가를 바라고 자식을 키우는 건 아니지만 자식을 키운 보람이었다.


나이 드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

 "너희의 젊음이 너희의 노력에 의해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얻은 벌이 아니라".

이적요 작가가 쓴 "은교" 에 나온 글이다. 나이 드는 것은 두려운 일이 아니다. 열심히 살았으니 한층 여유를 부려도 좋을 나이가 됐고, 그렇게 되기 위해 젊음을 허비하지 않는 것이다. 젊음도 늙음도 누구에게나 지나가는 한순간의 일일 뿐이다.


환갑 전후로 두 며느리까지 맞게 된 남편과 나의 30년 결혼생활이 너무 값진 보상으로 다가와서 가슴 벅차게 기쁜 10월의 어느 멋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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