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결혼을 앞둔 큰아들의 첫사랑이 누군지 알고 있다. 친구이자 사촌인 언니 아들과 절친 사이여서 아들에 관한 사실을 조카를 통해 종종 들었다.
필리핀에서 사신 큰아빠네서 2년 공부하고 왔을 때도 처음 좋아했던 그 친구 소식을 가장 궁금해 했다고 들었다. 필리핀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졸업 앨범이 없던 아들은 조카의 앨범으로 그 친구의 졸업 사진을 찾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면서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걸 좋아한 아들은 여자 친구를 사귀지는 않았다. 고백을 할만큼 용기도 없어 그야말로 짝사랑이자 어릴 때의 추억으로 끝났다.
대학에 입학하고 군대를 제대하고 졸업 후 취업하면서 회사 기숙사에서 지내게 된 아들은 일주일에 한두 번씩 집에 오면서 정신없이 바쁘게 지냈다. 여자친구도 없이 졸업할 땐 슬슬 걱정까지 됐다. 입사도 했으니 아들도 은근히 여자친구를 바라는 눈치였다. 가끔 소개도 받아 만났지만 잘 이어지지 않았다.
어느 날, 조카가 집에 온 아들에게 좋아하던 그 친구가 같은 아파트 옆동에 살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전했다. 조카는 다른 아파트에 살다가 우리 아파트로 이사온 지 얼마 안된 시점이라 같은 아파트에 같은 동에서 만난 친구를 보고 놀라고 무척 반가웠다고 했다. 셋이 같이 간단히 맥주 한 잔 하기로 했다며 만나러 나갔다.
학창 시절 동창에 성인이 되어 오래간만에 만났으니 반가웠다고 했다. 옛 감정은 없었는지 물었더니
"이제 애는 아니잖아요."
라는 쿨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야말로 순수하게 지나가는 감정이었다. 그 뒤로도 여사친이 되어 셋이 자주 어울리는 듯했다.
아들은 멀리에서 직장을 다니고 바쁘면 주말에도 못 올라왔다. 그 후 조카가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바로 그 여자 친구였다. 처음에 조카는 아들의 마음을 알고 있어 둘이 잘 되게 해주려고 만남을 주선한 거라고 했다. 하지만 아들은 어릴 때 순수한 마음으로 끝났다.
조카는 집에서 출퇴근을 하다보니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서 자주 마주치면서 만남이 잦아졌다고 했다. 얘기도 잘 통하고 성격도 잘 맞아 연애를 시작한 것이다. 조카는 성격이 아들보다 더 활달하고 적극적이라 둘이 더 잘 통한 것 같다. 참 재밌는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아들도 기쁘게 축하해주었다. 그즈음 아들도 대학 절친 결혼식장과 집들이에 갔다가 오래간만에 다시 만난 여자 동기와 교제가 시작되었다. 얘기가 잘 통하고 둘의 마음이 맞아 예쁘게 연애를 시작했다.
2년 정도 연애한 후에 아들과 조카 모두 결혼 날짜를 잡았다. 상견례도 끝나고 웨딩 촬영도 마치고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어 조카는 2월, 우리 아들은 4월에 둘 다 결혼을 앞두고 있다. 언니도 예비 며느리 성격이 좋다며 흡족해 하고, 나도 예비 며느리가 이해심 많고 야무져서 너무 마음에 든다.
조카와 아들 모두 서로 잘 맞는 배우자를 만나 예쁘게 연애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다. 인연은 참 묘하다. 아들의 초등학교 때 첫사랑이자 짝사랑인 친구가 절친이자 사촌인 조카와 인연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아들도 여자 친구가 대학 동기이고, 조카도 고교 동창이라서 넷은 30살 동갑내기로 어느새 친근해졌다. 같이 여행도 다니며 자주 만나는 서스름 없는 사이가 됐다. 함께 페러글라이딩도 하러 가고 여름 휴가도 같이 보내면서 친구들보다도 친하게 지낸다.
인연은 정해져 있다. 우리 아들과 조카의 풋풋한 사랑이 결실을 맺어 앞으로 만들어갈 둘의 가정이 아름답고 행복하기를 축복한다. 더불어 넷의 우정이 쭈욱 이어질 것 같아 바라볼 때마다 흐뭇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