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플렉스 하반기 기대작으로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됐던 작품 '전란' 은 뼈아픈 전쟁과 민초들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진 영화였다.
학자 이이는 10만 양병설을 주장했지만 조선은 이를 거부하고 태평천하였다. 옆나라 왜는 조선을 발판으로 삼아 명나라로 진출하려는 야욕으로 전국을 통일하고 이미 신무기에 군사력까지 준비한 반면 조선은 아무 대비도 못한 채 임진왜란을 맞았다.
무능한 왕 선조는 백성을 버리고 자신만 살겠다고 북쪽으로 피난을 가고 이에 화가 난 백성들은 궁을 불태운다. 자기 백성들이 궁을 불태웠다는 사실에 분노한 선조는 피난길을 막으며 분노한 백성들에게 칼을 겨눈다. 평양에 이어 의주로 피신한 선조는 전란이 끝난 뒤에야 도성으로 돌아오다니 참 무능한 왕이 아닐 수 없다.
조선을 침략한 왜구에도 맞서지 못하고 도망간 왕은 힘없고 나약한 백성들, 그저 먹고 살기 위해 하루하루 근근히 살아가는 백성들의 고통을 보지 못했다. 피난길에 백성들에게 빼앗은 생선으로 올린 수랏상에 투정을 부리는 선조는 더 이상 자격없는 왕이었다. 나루터를 해체하고 배를 태워띄우지 못하게 하고 주변 민가까지 철거한다. 자기 하나만 살면 그만이라니...
7년 간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은 관군도 아닌 의병들과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수군들이었다. 유생. 신분을 막론한 백성. 승려들이 칼과 농기구. 돌멩이를 들고 왜구와 싸우며 승전한 민족정신은 지금까지 길이 빛난다.
어릴 때부터 주인과 종이 아닌 동무처럼 지내면서 우정을 다진 종려와 천영 두 친구의 엇나간 행보, 왜군이 아닌 백성에게 돌린 칼, 전란의 수습보다 경복궁의 재건에만 몰두하는 아둔한 왕은 영화를 보는 내내 고구마를 백 개 먹은 것 같이 답답했다.
어릴 때부터 억울하게 종의 신분이 된 천영은 무관의 집 아들 종려와 무술을 하며 함께 자라면서 신분을 초월한 우정을 나눈다. 번번히 무과 시험에서 낙방하자 노비 면천을 약속 받은 천영의 대리시험으로 종려를 무과에 급제시켰지만 약속은 커녕 화근을 막으려고 천영을 죽이려는 아버지에게 분노하며 자신의 검을 주고 친구를 멀리 도피시킨다. 하지만 추노꾼들에 의해 매번 잡혀서 손등에 문신을 새기는 고통을 당하고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될 때마다 목숨을 살려준 둘의 우정은 진했다.
전쟁이 일어나자 선조의 호위무사로 왕을 호위하러 나간 사이에 흉악해진 민심과 화가 난 대감집 노비들이 대감과 부인을 죽이고 집을 불태우고 노비 문서를 불살라버리면서 한순간에 집안이 풍비박산이 되었다. 처자식까지 죽었다는 참담한 소식을 듣곤 천영이 저질렀다고 오해하며 흑화된 종려는 백성들을 자기 손으로 죽이고 천영을 잡아오라고 끊임없이 추노꾼들을 보내며 복수를 다짐했다.
반면 전쟁이 일어나자 천영은 백성들과 의기투합해 왜구와 맞서 싸우는 의병 선봉장이 되어 왜구의 수장을 잡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힘없는 백성들은 목숨걸고 싸우고도 아무 보상도 주어지지 않는 현실에 분노한 나머지 의병들은 천영과 뜻을 달리해 호위호식하는 청주 목사를 죽이고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준다.
이 일로 공을 세운 의병장 김자령이 선조를 알현하러 갔다가 역모로 몰려 처형 당하고 의병들마저 몰살 당하자 더이상은 못참겠다는 천영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얼마나 화가 났으면 백성들이 궁에 불을 질렀을지 선조는 왜 그 이유를 생각지 않았을까. 물론 확대해석이나 선조를 너무 가볍고 무능하게만 그려 왜곡된 면도 없지 않겠지만 백성을 버린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의병장이 받는 찬사를 질투하며 혹여라도 백성들이 그를 더 따를까 두려워 역적으로 내몰아 죽음에 이르게 하고, 백성들을 따르는 이순신을 경계했다니 분별력도 제대로 된 판단력도 없을 만큼 무능한 왕이었으니 백성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무지한 왕과 복수심에 불타 이미 판단력을 잃은 종려는 의병들이 잡은 일본 수장과 함께 보물을 찾아 궁을 재건하고, 민란을 수습하는 두 가지 목적으로 김자령 의병장의 잔당을 잡으러 떠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왜구 수장과 그의 병사들의 손에 의병들과 조선 관군은 모두 죽임을 당하고 두 친구와 왜구 수장의 마지막 대결만 남는다. 해무 속 세 사람의 싸움은 그야알로 압권이었다.
천영이 가족을 몰살시켰다는 오해를 갖고 분노했는데 사실 가족을 구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행보가 잘못 되었음을 알았지만 후회하기엔 너무 늦었다. 왜구 수장의 칼에 최후를 맞으며 우정을 다시 확인하고는 친구의 품안에서 눈을 감는 종려의 마지막 모습이 안타깝다.
둘의 우정이 엇나가긴 했어도 끝까지 깨지지 않은 것은 그나마 조금의 위안을 주었지만 종려가 처음부터 백성과 나라의 편에 서서 그들을 지켜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무관이던 강한 아버지에 대항도, 무능한 왕에 대한 충언도 못하고, 자신 때문에 회초리를 맞아 죽어가던 노비들도,
자기를 믿었던 친구도 지키지 못한 현실 순응에 나약함의 소유자였다.
종과 동무가 되지 말라는 부인의 말에 개와는 친구가 되면서 종과는 친구가 되어선 왜 안 되냐던 종려의 진심이 천영의 마음에 깊게 남아있는 데도 왜 친구를 끝까지 믿지 못했을까.
친구와 나라를 위해 왜구 수장의 목에 단검을 꽃은 천영은 이후에도 삶을 강인하게 이어가고, 선조는 보물이라고 믿었던 상자안에 잔혹하게 왜구에게 살해당하고 전리품처럼 모아놓은 백성들의 귀와 코를 보며 경악하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전란. 참 끔찍하다. 선조 때의 임진왜란. 인조 때의 병자호란. 두 번의 외세 침략은 조선을 피폐하게 만들고 고통은 고스란히 백성들의 몫이었다. 백성들의 숫자가 줄고, 경작지도 줄어 살기가 더 힘들어졌지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또 어떻게든 살아갔다. 민초들이 강인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저항의식과 민족정신으로 피흘리며 끝까지 지켜낸 우리나라이다.
반면 배운 자는 배운 자답게 행동해야 하는데 부정부패로 사리사욕을 채운 양반들은 백성들의 피를 빨았다. 양반이란 신분을 특권인 양 백성들을 착취하고 노비는 인간 취급조차 하지 않던 그들이다. 갑오개혁 때야 폐지된 신분제는 너무 오랫동안 조선을 지배해왔다. 조선 말에는 하늘 아래 인간은 평등하다는 동학과 인간 존중을 주장한 서학까지 끊임없이 박해하며 그들이 지키려고 했던 쓸모없던 사상은 조선의 개방과 근대화를 늦추고 나라를 일제에 빼앗기는 고통을 안겼다.
나라의 흥망성쇠는 지도자와 정치에 달려있다. 태평성대는 거저 이루어지지 않는다.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정신으로 정치를 하는 지도자의 책임의식이 크게 좌우한다.
지금도 전란 중에 있는 나라들이 있다. 대의를 위한 희생이라지만 무고하고 죄없이 희생된 이들이 너무 많다. 지도자로서 국민을 위한 현명한 선택과 결정을 내려 참혹한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더이상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