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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경 Sep 18. 2023

줄딸기와 오동잎 그리고 엄마

오동나무를 보면......

두건을 쓴 엄마, 이마에 땀방울을 훔치며

오동잎에 싸 온 빨간 줄딸기를 내미신다.

마루 끝에 서서 엄마 그림자만 좇던 나,

두 손에 오동잎 받아 들고 새콤달콤한 줄딸기에 홀렸네.


나는 오동나무만 보면 줄딸기가 생각나고 줄딸기에 줄줄이 엮여 엄마얼굴이 떠오른다.

정침터에 밭일을 하러 나가신 엄마, 엄마는 홀로 집을 지키고 있는 어린 내가 생각이 나신 걸까?

밭일을 마치고 오는 길에 엄마는 우산만 한 오동잎을 보자기 삼아 줄딸기를 따서 고이 싸 오셨다.

엄마 오기만을 기다리던 나는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엄마가 반가운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불쑥 내민 엄마의 손에 오동잎을 이불 삼아 얌전히 잠든 줄딸기에 그야말로 입이 찢어졌다.



몇 해 전 엄마는 갑작스레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나셨다.

엄마에 대한 기억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가운데 

오동잎과 줄딸기는 내가 엄마를 기억하는 끈이자 통로이다.

마음 저장소에 찰칵찰칵 찍혀 보관되어 있는 줄딸기와 오동잎 그리고 엄마 얼굴.


중학교 때, 학교를 파하고 버스를 기다리는 게 지쳐 친구들과 서너 시간을 걸어서 귀가한 적이 있다. 

그래봤자 별반 차이도 없이 도착하거늘 무슨 호기를 부려 걸어가자 했는지.........

아마 해가 길어진 것도 한몫하였을 듯 하지만.......

한참을 울퉁불퉁한 길을 가다가 한옆에 빨갛게 익은 탐스러운 줄딸기가 눈에 띄었다. 

너도 나도 누가 먼저라 할 새도 없이 책가방에서 도시락통을 꺼내 줄딸기를 따 담았다.


그날 내가 도시락통에 담아 온 줄딸기를 한알 입에 넣고서 찰칵 찍힌 엄마의 얼굴.

"아이고! 새그라바라! 너무 새그랍다!"

줄딸기의 새콤함에 사시나무 떨듯이 몸을 떨며 얼굴을 잔뜩 찡거리시던 엄마.

오동잎과 줄딸기, 도시락통과 줄딸기로 연결된 엄마와 나의 특별한 사랑의 징표다.



지난해 이기대에 갔다가 우연찮게 줄딸기를 발견하고서 얼마나 반갑던지!

줄딸기를 따서 싸 갈 도시락통도 오동잎도 없었지만 엄마를 부르며 엄마를 그렸다.

나는 줄딸기 서너 알을 따서 손에 오므려 쥐고서 밀려오는 파도소리에 그리움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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