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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경 Sep 16. 2023

감나무 아래

오월에는 감꽃이 튄다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 눈만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


예닐곱 살 쯤이었나?

이른 아침에 나는 온전히 떠지지도 않은 눈을 비비며 일어나, 부스스한 몰골로 곧장 짚더미로 향했다. 

짚 한가닥을 빼 들고 아침 준비로 바쁜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엄마는 대충 손을 털고서 나락이 핀 부분을 동그랗게 매듭지어 주셨다. 



 대문을 나서면 바로 앞 골목길에는 앞 집 담벼락 귀퉁이 너머로 감나무 가지가 길게 뻗어 나와 있었다.

5월이 되면 감나무에서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감나무가 보석을 토해 내는 것이다. 

새벽에 낙화한 감꽂은 진주알처럼 영롱했다. 

감꽃이 가득 차면 향기로운 빛이 골목을 뚫고 사방팔방 퍼져 나갔다. 

아무도 밟지 않은 보슬보슬한 땅 위에 보석을 수놓는 감나무. 재주도 좋다. 

갓 태어난 아기처럼 따뜻한 온기를 내뿜어며 우렁차게 땅을 차며 낙화하는 감꽃. 

그 광경에 전율이 일었다.


아직은 찬 공기가 팔뚝 솜털을 깨울 때,

대문을 열면 펼쳐지는 감나무의 향연

감미로운 향기가 코를 간지럽히고  

낙화의 소리가 귀를 노크하고

땅에 그려진 인상파의 명화가 눈을 부시게 하는 

5월의 감나무를 감상하는 것이 나의 소확행이었다.


감나무는 대낮에는 하늘을 향해 꽃을 피우고 

깊은 밤에는 땅으로 내려와 꽃 피운다.

낮에는 거의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늘에서 만개하고

밤에는 맑은 소리를 점점 크게 울리며 땅에서 만개한다.

드보르작의 신세계고향곡을 연주하듯 온종일 만개한다.

서너 평 남짓한 골목길을 예술의 전당 삼아 음악과 미술이 어우러진 멋들어진 공연을 한다.


누가 나올세라 훔쳐가기 전에 

해가 떠올라 마르기 전에 

감꽃 줍기를 얼른 서둘러야 한다.

나는 감꽃을 보물 다루듯 조심히 집어서 짚에 줄줄이 꿰어 뒤양간에 걸어 말렸다. 

그늘 진 뒤양간에도 감꽃이 주렁주렁 열렸다.

따근따근한 감꽃은 바로 먹으면 뽀드득뽀드득 소리를 내며 달짝지근한 맛이 난다. 

꾸덕하게 말려 먹으면 쫄깃한 식감이 일품이다. 

감꽃은 먹거리가 부족했던 시절 훌륭한 간식이 되어주었다.



감나무 아래 

땅 위에 감꽃이 박힌다.

알싸하고 달콤한 향에 이끌려

골목길에 나서면 

톡 또로롱, 툭 뚜루루 감 꽃이 튄다.

톡 톡, 툭 툭 감꽃이 나를 장난스레 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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