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 통의동 골목에 소재한 '라 카페 갤러리'가 3월 29일 문을 닫는다. 14년 동안 41만 명이 다녀간 이 공간은 ‘평화의 순례지’이자 ‘영혼의 안식처’로 불려왔다.
급격한 임대료 인상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로 갤러리 폐관을 앞두고 상실의 무게가 여실히 드러난다. 시작하는 봄의 계절에 전해진 이 소식은 문화 공간의 생태가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준다.
라 카페 갤러리는 박노해 사진전을 전시해왔다. 서두르지 않는 발걸음으로 사진 앞에 머무르면, 시인의 짧은 글귀가 가슴에 메아리쳤다. 방명록에 남겨진 다른 필체의 문장들조차 아름다운 나눔이었다.
박노해 시인의 글로벌 평화활동 사진전이 24번 열렸고 41만 명이 이곳을 다녀가며 '평화의 순례지'가 되었다. 관람객은 저마다 각자의 삶에서 멈추어, 깊은 숨을 쉬었다. 도시는 속도를 자랑하지만, 이 공간에서 느림의 미학을 느낄 수 있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산, 산이 있다
산은 두 세계를 잇는 은밀한 안내자
산은 모든 것을 품은 위대한 수호자
위대함은 '힘'이 아니라 '품'이다
박노해
마지막 전시는 〈산빛〉이다. 자연은 말하지 않는다. 인간의 시선이 낮아질 때 비로소 도달하는 고도에서 사물은 윤곽을 먼저 드러낸다. 우리는 그 앞에서 작품을 ‘이해’하기보다 ‘스며든다’. 빛 앞에서 머무는 시간만큼 삶의 결이 바뀐다.
폐관을 앞둔 공간에서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묻는다. 갤러리의 벽은 산의 빛을 반사하며 스스로의 역사를 비춘다. 전시는 바라보고 느끼는 순간으로 그치지 않고 참여와 연대였고, 다시 윤리로 환원되었다.
방명록에는 ‘고마웠다’, '아쉽다'는 글이 많았다. 사진을 보러 왔다가 시어에 멈추고, 자연으로 시선을 돌리며, 일상을 돌아본다. 라 카페 갤러리는 문화 콘텐츠 이상의 동선을 설계해 온 보기 드문 사례였다.
전시회에서 마주한 것은 풍경을 넘어 지속성이었고, 갤러리는 그 가능성을 공유하였다. 삶은 결국 머무는 기술이다. 어디에, 얼마나, 어떤 태도로 머무를 것인가.
우리는 낮은 시선으로, 더 오래 머무는 법을 기억한다. 그렇게 한 공간이 닫히고 또 다른 문이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