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이면 뭘 입어도 예쁠 때야"
칠순 여인이 환갑 여인에게 건넸다는 말은 우스갯소리처럼 들리지만 가슴에 오래 남았다.
그 말은 비단 옷차림에 대한 조언만이 아니다. 나이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이동하는지를 보여준다. 젊음의 세계에서는 외양이 평가의 중심이지만, 노년의 세계에서는 존재 자체가 평가가 된다.
나는 왜 늙은 기분으로 살았을까. 마흔에도 그랬고, 쉰에도 그랬다. 그때의 나는, 살아본 세월 중 가장 많은 나이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경험 안에서 판단한다. 마흔의 나는 마흔이라는 최대치를 살고 있었고, 쉰의 나도 그 나이만큼 보았다. 그래서 나는 늘 ‘이미 늙었다’는 감각으로 살아왔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매일 최고령자가 된다. 어제보다 오래 살았다는 사실로 오늘의 나는 언제나 가장 나이 많은 내가 된다. 우리는 젊음을 누리기도 전에 늙음을 학습한다. 그래서 젊음은 온전히 체화되지 않고, 노년만 누적된다. 나이는 몸보다 먼저 생각에서 늙는다.
그러던 어느 날, 생각의 방향이 바뀌었다. 지금은 내가 살아갈 가장 적은 나이다. 나는 더 살 것이고, 차츰 늙어갈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나는, 뒤에서 가장 젊은 나이기도 하다.
같은 숫자라도 해석이 바뀌면 감각이 달라진다. ‘이미 늙었다’는 말은 과거를 기준으로 한 해석이고, ‘아직 가장 젊다’는 말은 미래를 기준으로 한 해석이다. 늙음은 사실이지만, 늙음의 의미는 선택이다.
노년은 흔히 쇠락으로 읽힌다. 그러나 그것은 숫자의 언어이지 삶의 언어가 아니다.'늙는다는 것은 하강이 아니라 기준선의 이동이다. 젊을 때는 기준이 높아 힘들고, 나이가 들면 기준이 낮아져 편해진다. 노년은 덜 요구받고, 덜 증명해도 되는 시기이다. 경쟁 대신 관조가 가능해지는 시기다.
우리는 가장 많은 나이로 살아오다가, 어느 순간 가장 적은 나이로 자신을 다시 바라본다. 노년은 생물학적인 나이보다 시점의 문제다. 인생은 숫자가 아니라 해석이다.
"환갑이면 뭘 입어도 이쁠 때야.'
그때는 몰랐으나, 지나고 나서야 알게되는 그 나이 때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듯하다. 세월이 더해져 충분히 아름답다는 뜻으로도 들린다. 오늘, 우리는 살아본 가장 많은 나이로 살고, 살아갈 가장 적은 나이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