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는 유난히 많은 그릇이 그릇장에 차곡차곡 있다. 박물관에나 있을 법한, 실제로 몇 년을 기다려 찾은 작품 유기와 백자 도기를 데일리로 사용하고 있다.
그릇 욕심은 품위 있는 식생활을 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오랜 세월을 공들여 찾았고, 기다려 설렘으로 맞이하였다. 종지 그릇 하나에도 추억이 깃들어 있다.
쨍그랑~ 덜컥 가슴이 내려앉는다.
'대체 무엇이 떨어졌길래?' 손에 땀이 밴다. "제가 할게요. 엄마는 들어가 쉬세요." 열세 살 막둥이 말투가 야무지다. 겉모습만 어린이인 아들은 야무진 요리사다. 어릴 때부터 미식에 관심이 많았고, 한 번 맛을 보면 식재료와 양념을 알아맞힌다. 베이킹 분식 양식을 작은 손으로 척척 차려낸다.
알고 지내는 5성급 호텔 출신 셰프가 "알베르토는 혓바닥을 타고났어요"라는 말을 했다. 고기도 직접 구워야만 직성이 풀리는 아들이다. 식당에서 먹어본 음식을 그대로 재현하고 인터넷이나 텔레비전에 나온 요리를 연구해서 만들어 낸다.
심심풀이로 크루아상, 소금빵을 반죽하고 성형하고 구워낸다. 두바이 초콜릿을 온종일 정성으로 만들어 식구에게는 권하지도 않고 친구네 집으로 가져가는 야속한 아들이다.
아이들은 맵고 짜고 달고 자극적인 '마라맛' 요리를 더 좋아하고 최신 트렌드 디저트와 퓨전음식을 선호한다. 펜데믹으로 공포에 떨던 2020년 2021년 우리 가족은 외식조차 하지 않고 매식을 집에서 하고 있었다.
줌수업과 저마다의 일정으로, 밥 먹는 때가 달라서, 각자의 방으로 하루 12번의 식사를 나르기도 했다. 그러다가 지쳐갔고 아이들도 한정된 엄마 음식에 질려버렸다. 예전에는 인스턴트 음식을 숨어서 먹더니 어느새 당당하게 먹기에 이르렀고 밖에 음식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점점 집밥을 덜 먹게 되고 저마다 취향에 맞는 일품요리가 일상이 되다 보니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이 간편해졌다. 때때로 인공 감미료와 설탕이 가미되지 않은 집밥을 거부하기도 한다. 엄마 역할에 자부하며 식탁을 차려왔고, 맛있게 잘 먹이는 것이 가장 큰 과업이자 낙(樂)이었는데 한풀 꺾였다.
천연의 조미료만을 고집하다가 결국에 MSG 감미료와 설탕 물엿 향신료 등 조미료를 구입하여 요리한다. 엄마 음식은 심심하다고 여전히 타박하기도 한다. 매번 솥밥을 해왔는데, 때마다 찬밥이 남게 되었다. 뜨거울 때 하나씩 1회분의 밥을 덜어서 뚜껑 있는 용기에 보관하여 냉동실에 보관하게 되었다.
막둥이는 편의성보다 적극적으로 맛을 탐구하고 탐닉하고픈 우리 집 최고의 요리사이다. 혼자서도 마트에 가는 것을 즐기고 품목을 정해서 신나게 식재료를 선별한다. 아이가 메인 요리를, 엄마는 마늘 찧기, 양파 채썰기 보조역할을 한다.
엔데믹 무렵부터 큰애들이 당당하게 라면을 빈번하게 끓이고, 아들들이 주스와 탄산음료를 벌컥이며 마시는 것을 보며 배신감이 들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건강한 식습관을 위해 노력했건만, 주부로서 자존감이 무너졌다.
그런 반면에 다행히도 막둥이는 건강한 음식과 맛, 고급스러운 식감을 내는 요리 방법에 관심이 많다. 원하는 맛을 내려고 온종일 정성을 쏟기도 한다. 그리고 요리 서적과 유튜브를 꾸준히 구독하고 있다.
이제 아이들은 먹고 싶은 것을 먹을 권리를 옹호하며 밥보다는 면을 찾는다. 쌀국수보다는 라면을, 집밥보다는 배달 음식에 열광한다. 나는 먹거리가 약이 되는 음식, '약식동원(藥食同源)'을 굳건히 믿는다. '지금 먹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이다'는 말이 아직도 귀에 울린다.
"배달앱 없는 집은 우리 집뿐이에요. 짜장면도 맘대로 못 시키나요?" 아이들 원성이 컸다. 어느 날, 집안이 너무도 고요해서 방마다 방문을 열었다. 한 방에 넷이 모여 배달 음식을 보약처럼 소스까지 들이키고 그릇을 삼킬 기세로 먹는 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결국 '지나치지만 않으면 해(害)가 되지 않으리라'는 생각으로 허용하게 되었다.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으나, 다름을 인정하고 평화가 찾아왔다. 엄마로서 지키고 싶었던 음식 고유의 맛과 영양, 그리고 한 끼 식사가 주는 정성과 사랑을 온전히 담을 수는 없어도, 서로의 세계를 존중하고 인정하며 수용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이들 반응이 괴롭고 화나고 납득할 수 없어서 상처가 되었다. "엄마 음식 맛없어." 거부하고 즉석식품을 조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상실감과 소통의 단절을 느꼈다. 알콩달콩 식구 모두가 함께하는 밥때가 간절히 그리워졌다.
그나마 막둥이는 주방에서 요리를 연구하고, 더 맛있는 먹거리를 만들어 함께 먹는 기쁨을 알아가고 있다. 큰애들은 골방에서 '1인 밥상'이 편하다고 한다. 부디 혼밥 하는 시기가 어서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얘들아, 이번 주말에는 우리 여섯 식구 모두 맛나게 식사하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