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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폐인작가 Apr 22. 2024

좋은 생각에 나쁜 생각을 보냈더니


2월 어느 날, 나는 일상이 무료함을 넘어 지루해 미칠 지경이었다. 방바닥에 들러붙은 몸을 억지로 일으켜 교보문고로 갔다. 나는 평소 가던 1층으로 가지 않고 2층으로 올라갔다.


단순히 내 패턴에 작은 변화를 주고 싶었달까.

2층으로 올라가서 둘러보다가 어떤 코너가 눈에 띄었다. <<좋은 생각 3월호>>였다. 어릴 때 몇 번 본 적 있다. 부모님이 집에서 읽고 있을 때면 나는   ‘저런 건 어른들이 읽는 거지 혹은 무슨 재미로 읽어?’  그렇게 생각을 하며 표지만 힐긋 보곤 아예 펼쳐볼 생각도 안 했다.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을 싣는 책. 나에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나는 견본책을 집어 들고 첫 페이지를 펼쳤다.  그리고 난 경악했다.


세상에 이렇게 글 잘 쓰는 사람들이 많다니!


첫 페이지부터 작가임을 밝힌 어느 작가의 글은 날 압도했다. 그 작가는 내게 ‘거기 애송이! 이런 게 글쓰기에 대한 고뇌라는 거다!’라고 펀치를 날렸다. 종이 위에 박힌 검은 문장 한 줄 한 줄이 내 얼굴을 쳤다. 결국 나는 피를 토했다.


자기 방에서 일어나는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이렇게 깔끔하고 담담하게 쓰다니. 거기다 공감까지!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렇게 잘 써? 글을 종이로 읽어서 그래, 액정화면으로 읽었으면 충격이 덜했을 거야.


아직 나에겐 ‘종이 위에 인쇄된 글자’에 대한 로망 있어 그 글이 크게 다가왔다.

나는 입을 벌리고 한 장 한 장 작은 책에 게재된 사연들을 읽었다. (주변에 힐끔거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알았지만 아무렴 상관없었다.) 나는 읽으면서 지난 2년간 글쓰기 수업에서 공부한 걸 생각하며 나름 배웠답시고 글에 대한 평가를 내렸다. 이 글은 구성이 좋고 이 글은 문장이 감동적이고 이 사연은 눈물 나고 등등… 난 왜 이런 글을 못쓰지 하는 얕은 자책도 하며 글을 읽었다. 그러다 맨 뒷장을 봤다.


오, 생활문예대상 공모전?

……. 나도 해볼 만하겠는데?


그래, 이거야. 이 책에 내 글이 실리면 좋겠어. 실린다면 4월호인가? 이왕이면 상금도? 온갖 몽상을 집어삼켰다. 그렇게 그로부터 약 한 달 동안 3월 공모전에 낼 두 편의 글을 혼자 신나게 썼다. 보냈다. 그리고 떨어졌다.


나는 망했어. 인터넷에서 그곳에 똑같이 응모한 사람들 의 당선 후기를 보며 눈물을 쏟았다. 발표일이 월 말이라면 중순쯤 개별연락을 주는데, 그동안 나에겐 그 개별 연락이 단 한 통도 오지 않았다.


즉, 내 글은 미채택 되었다.


내 글이 출판사로부터 거절이란 거절은 다 받은 상황에서 실낱같은 희망처럼 여긴 공모전마저  떨어지다니.


그래, 이게 나였던 거야. 방구석에서 혼자 꿈만 꾼 거지. 냉혹한 현실을 깨달은 나는 방구석에 주저앉았다. 괴로웠다. 지난 2년 동안 뭘 한 거지? 나름 글쓰기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생각일 뿐이었고 글쓰기에 대한 내 진심은 거짓이었다.

거기다 형편없는 실력까지.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이런 거구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무기력해지다가 우울했다. (하지만 이 우울도 엄마의 호통에 단 이틀밖에 가지 못했다. 그 후엔 땅속으로 숨으려는 나를 글쓰기 수업 작가님이 그림책으로 위로해주었다.)


나는 한 발짝 떨어져 내가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려 애썼다. 공부해야 할 자격증 시험 2개가 있어. 일단 공부를…그런데 이럴 때일수록 글이라도 잘 써야 하는 거 아냐? 갑자기 마음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하 이런 ㅆ...”


내 글 어디가 부족한 거지?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얘기 좀 해달라고! 재미가 없나? 어떻게 재밌게 쓰는 지누가 좀 알려달란 말이야!


나는 잔뜩 화난 마음을 어쩌지 못하다가 결국 공부하던 국어책을 덮고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렇게 쓴 한 편의 글을 떨어진 곳이었던 <<좋은 생각>>에 다시 보냈다. 열받아서 쓴 a4용지 한 장 반 분량의 글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글을 다시 보지 않았다.






약 삼 주뒤인 4월 중순 오전. 나는 역시나 해야 할 공부를 뒤로 미루고 하품을 길게 하며 방바닥에 늘어져있었다.


아 하기 싫다.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벨소리가 크게 울렸다. 미련하고 게으른 내 생각을 부술 기세였다. 모르는 개인번호였다. 나한테 개인번호로 전화가 올리 없는데. 찝찝하지만 어쨌건 통화버튼을 눌렀다.


-누구신데요?

-아, 안녕하세요. 좋은 생각 편집 담당자입니다.

-... 아.

-어제 통화가 안 돼서 이렇게 개인번호로 연락드리게 됐습니다.

-... 예?


나는 황급히 통화창을 내려 통화내역을 확인했다. 정말이었다. 02로 시작하는 모르는 번호가 기록이 남아있었다. 나는 스팸이겠지 하며 습관적으로 넘겨 버린 번호였다.


-선생님께서 지난번에 보내주신 글 한 편이 아쉽게도 응모한 부분에는 되지 못하셨지만, 글이 재밌어서 다음 달 6월호에 일반 에세이로 게재하려는데 괜찮으신가요?


또 미채택 되었구나. 그런데 채택되었구나!

나는 아쉬움과 기쁨이 공존하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다만 나는 궁금했다.


어느 부분이 좋던가요? 어떤 문단이 마음에 들던가요? 내 글이 어디가 봐줄만하던가요? 왜 재밌던가요?! 그러나 나는 하고픈 질문을 집어삼켰다.


-선생님 본인 경험 맞으시죠?

-엇, 네. 맞아요. 씁쓸한 얘기죠...

-하하. 다른데 응모하진 않으셨죠?


부드럽고 친절한 서울말씨가 푸석한 내 마음에 물을 들이붓는 듯했다. 그때 깨달았다.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타인의 인정에 목말라 있었구나.


받을 경품을 고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통화는 끝났다. 어버버 거리는 나를 시종일관 담담하게 상대해 준 편집 담당자의 표정이 보였다.

(^ㅡㅡㅡㅡ^;; 이런 표정.)


그 뒤 브런치에서 활동 중인 필명으로 낼 수 없냐 아니다 실명으로 하겠다 따위의 하찮은 문의를 남기고 번복하는 뻘짓을 해서 밤중에 이불킥 하긴 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먼저 응모했던 그 두 편의 글이 왜 채택되지 않았는지는 좀 알 것 같다. 다시 보니 그 두 편의 글은 <<좋은 생각>> 에서 추구하는 이미지와 동 떨어진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뭐,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비록 원하는 곳에 되지 못했고 상금도 거하게 타지 못했지만 어찌 됐건 종이에 인쇄된 내 글을 보게 되었다. 남들이 보기엔 뭐 그런 거 가지고? 그게 별거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겐 처음 있는 일이라 부디 이해해 주길. 채택 통화 후 내 일상은 변함없다. 시험 하나는 치렀고 하나가 또 남았다. 여전히 게으르며 공부와 돈 때문에 머리 아프다.  


사실, 그동안 나는 점점 꿈에서 멀어지는 듯했는데, 이번 일이 작은 등불이 되어 다시 내 꿈을 향해 길을 비추어 주는 것 같다.


이런 경험을 계속하다 보면 내가 꿈꾸는 목표를 언젠가 이룰 수 있겠지. 또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오늘도 혼자 신나게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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