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어느 날, 나는 일상이 무료함을 넘어 지루해 미칠 지경이었다. 방바닥에 들러붙은 몸을 억지로 일으켜 교보문고로 갔다. 나는 평소 가던 1층으로 가지 않고 2층으로 올라갔다.
단순히 내 패턴에 작은 변화를 주고 싶었달까.
2층으로 올라가서 둘러보다가 어떤 코너가 눈에 띄었다. <<좋은 생각 3월호>>였다. 어릴 때 몇 번 본 적 있다. 부모님이 집에서 읽고 있을 때면 나는 ‘저런 건 어른들이 읽는 거지 혹은 무슨 재미로 읽어?’ 그렇게 생각을 하며 표지만 힐긋 보곤 아예 펼쳐볼 생각도 안 했다.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을 싣는 책. 나에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나는 견본책을 집어 들고 첫 페이지를 펼쳤다. 그리고 난 경악했다.
세상에 이렇게 글 잘 쓰는 사람들이 많다니!
첫 페이지부터 작가임을 밝힌 어느 작가의 글은 날 압도했다. 그 작가는 내게 ‘거기 애송이! 이런 게 글쓰기에 대한 고뇌라는 거다!’라고 펀치를 날렸다. 종이 위에 박힌 검은 문장 한 줄 한 줄이 내 얼굴을 쳤다. 결국 나는 피를 토했다.
자기 방에서 일어나는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이렇게 깔끔하고 담담하게 쓰다니. 거기다 공감까지!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렇게 잘 써? 글을 종이로 읽어서 그래, 액정화면으로 읽었으면 충격이 덜했을 거야.
아직 나에겐 ‘종이 위에 인쇄된 글자’에 대한 로망 있어 그 글이 크게 다가왔다.
나는 입을 벌리고 한 장 한 장 작은 책에 게재된 사연들을 읽었다. (주변에 힐끔거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알았지만 아무렴 상관없었다.) 나는 읽으면서 지난 2년간 글쓰기 수업에서 공부한 걸 생각하며 나름 배웠답시고 글에 대한 평가를 내렸다. 이 글은 구성이 좋고 이 글은 문장이 감동적이고 이 사연은 눈물 나고 등등… 난 왜 이런 글을 못쓰지 하는 얕은 자책도 하며 글을 읽었다. 그러다 맨 뒷장을 봤다.
오, 생활문예대상 공모전?
……. 나도 해볼 만하겠는데?
그래, 이거야. 이 책에 내 글이 실리면 좋겠어. 실린다면 4월호인가? 이왕이면 상금도? 온갖 몽상을 집어삼켰다. 그렇게 그로부터 약 한 달 동안 3월 공모전에 낼 두 편의 글을 혼자 신나게 썼다. 보냈다. 그리고 떨어졌다.
나는 망했어. 인터넷에서 그곳에 똑같이 응모한 사람들 의 당선 후기를 보며 눈물을 쏟았다. 발표일이 월 말이라면 중순쯤 개별연락을 주는데, 그동안 나에겐 그 개별 연락이 단 한 통도 오지 않았다.
즉, 내 글은 미채택 되었다.
내 글이 출판사로부터 거절이란 거절은 다 받은 상황에서 실낱같은 희망처럼 여긴 공모전마저 떨어지다니.
그래, 이게 나였던 거야. 방구석에서 혼자 꿈만 꾼 거지. 냉혹한 현실을 깨달은 나는 방구석에 주저앉았다. 괴로웠다. 지난 2년 동안 뭘 한 거지? 나름 글쓰기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생각일 뿐이었고 글쓰기에 대한 내 진심은 거짓이었다.
거기다 형편없는 실력까지.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이런 거구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무기력해지다가 우울했다. (하지만 이 우울도 엄마의 호통에 단 이틀밖에 가지 못했다. 그 후엔 땅속으로 숨으려는 나를 글쓰기 수업 작가님이 그림책으로 위로해주었다.)
나는 한 발짝 떨어져 내가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려 애썼다. 공부해야 할 자격증 시험 2개가 있어. 일단 공부를…그런데 이럴 때일수록 글이라도 잘 써야 하는 거 아냐? 갑자기 마음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하 이런 ㅆ...”
내 글 어디가 부족한 거지?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얘기 좀 해달라고! 재미가 없나? 어떻게 재밌게 쓰는 지누가 좀 알려달란 말이야!
나는 잔뜩 화난 마음을 어쩌지 못하다가 결국 공부하던 국어책을 덮고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렇게 쓴 한 편의 글을 떨어진 곳이었던 <<좋은 생각>>에 다시 보냈다. 열받아서 쓴 a4용지 한 장 반 분량의 글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글을 다시 보지 않았다.
약 삼 주뒤인 4월 중순 오전. 나는 역시나 해야 할 공부를 뒤로 미루고 하품을 길게 하며 방바닥에 늘어져있었다.
아 하기 싫다.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벨소리가 크게 울렸다. 미련하고 게으른 내 생각을 부술 기세였다. 모르는 개인번호였다. 나한테 개인번호로 전화가 올리 없는데. 찝찝하지만 어쨌건 통화버튼을 눌렀다.
-누구신데요?
-아, 안녕하세요. 좋은 생각 편집 담당자입니다.
-... 아.
-어제 통화가 안 돼서 이렇게 개인번호로 연락드리게 됐습니다.
-... 예?
나는 황급히 통화창을 내려 통화내역을 확인했다. 정말이었다. 02로 시작하는 모르는 번호가 기록이 남아있었다. 나는 스팸이겠지 하며 습관적으로 넘겨 버린 번호였다.
-선생님께서 지난번에 보내주신 글 한 편이 아쉽게도 응모한 부분에는 되지 못하셨지만, 글이 재밌어서 다음 달 6월호에 일반 에세이로 게재하려는데 괜찮으신가요?
또 미채택 되었구나. 그런데 채택되었구나!
나는 아쉬움과 기쁨이 공존하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다만 나는 궁금했다.
어느 부분이 좋던가요? 어떤 문단이 마음에 들던가요? 내 글이 어디가 봐줄만하던가요? 왜 재밌던가요?! 그러나 나는 하고픈 질문을 집어삼켰다.
-선생님 본인 경험 맞으시죠?
-엇, 네. 맞아요. 씁쓸한 얘기죠...
-하하. 다른데 응모하진 않으셨죠?
부드럽고 친절한 서울말씨가 푸석한 내 마음에 물을 들이붓는 듯했다. 그때 깨달았다.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타인의 인정에 목말라 있었구나.
받을 경품을 고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통화는 끝났다. 어버버 거리는 나를 시종일관 담담하게 상대해 준 편집 담당자의 표정이 보였다.
(^ㅡㅡㅡㅡ^;; 이런 표정.)
그 뒤 브런치에서 활동 중인 필명으로 낼 수 없냐 아니다 실명으로 하겠다 따위의 하찮은 문의를 남기고 번복하는 뻘짓을 해서 밤중에 이불킥 하긴 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먼저 응모했던 그 두 편의 글이 왜 채택되지 않았는지는 좀 알 것 같다. 다시 보니 그 두 편의 글은 <<좋은 생각>> 에서 추구하는 이미지와 동 떨어진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뭐,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비록 원하는 곳에 되지 못했고 상금도 거하게 타지 못했지만 어찌 됐건 종이에 인쇄된 내 글을 보게 되었다. 남들이 보기엔 뭐 그런 거 가지고? 그게 별거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겐 처음 있는 일이라 부디 이해해 주길. 채택 통화 후 내 일상은 변함없다. 시험 하나는 치렀고 하나가 또 남았다. 여전히 게으르며 공부와 돈 때문에 머리 아프다.
사실, 그동안 나는 점점 꿈에서 멀어지는 듯했는데, 이번 일이 작은 등불이 되어 다시 내 꿈을 향해 길을 비추어 주는 것 같다.
이런 경험을 계속하다 보면 내가 꿈꾸는 목표를 언젠가 이룰 수 있겠지. 또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오늘도 혼자 신나게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