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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잭 슈렉 Aug 03. 2024

쓸데없는 고집

그렇다고 내가 무슨 최초 LP를 제작했던 시절의 사람도 아니다. CD 복각에 참여해서 그 어떤 기술을 개발한 사람도 아니다. 기껏해야 앨범 몇 장 제작 유통했고, 소극장 공연 수십 번 했고, 음악 잡지 몇 년간 연골이 닳도록 만든 딱 그게 전부다. 이마저도 경력이라 할 수도 없는 게 반짝였던 시절도 없던 그야말로 어둠의 암흑의 마이너에서 당장이라도 끊어질 숨통 부여잡고 무일푼으로 몇 년간 뼈와 살을 갈며 버텼던 것들이 전부였다. 


원점으로 돌아오면 음악 좋아하는 사람이다. 한자로 풀면 애호가다. 푼돈이지만 모으고 모아 CD를 샀고, LP도 샀고 카세트테이프도 샀다. AV라고 말할 수도 없는 낡은 전축으로 들었고, 워크맨 살돈 없어서 삼성 마이마이로 듣고 소니 CDP는 비싸서 파나소닉 CDP를 이용했다. 수십만 원 호가하는 플레이어나 이어폰 따위는 정신승리로 이미 배척한지 오래다. 


MP3 플레이어는 좀 이상했다. 그래 안다. 앨범을 PC에 넣어서 휘리릭 싸잡아놓으면 곡당 4메가 정도의 분량으로 만들어지고 그걸 플레이어에 옮겨서 듣는 거 말이다. 지금 젊은이에겐 생소한 이 과정이 그때 내게도 몹시 생소했다. 왜 그래? 그냥 CDP에 CD 걸고 들으면 되는데! 물론 버스가 덜컹거리거나 걷다가 오토바이를 피하느라 몸을 틀면 CD가 튕기긴 했다. 클라이맥스에서 CD가 튕기면 기분이 정말 좆같았다. 얼굴도 모르지만 CDP 만든 엔지니어 멱살을 부여잡고 패대기를 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했고,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 했다. 어쩌다 시작된 그때의 그 흐름은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모든 플레이를 그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90% 이상 음악을 들을 땐 앨범을 통째로 듣는다. 1번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그리 듣는다. 플레이어에 올려놓은 앨범의 러닝 타임이 65분인데 음악을 들을 시간이 40분밖에 안된다면 과감하게 플레이를 멈췄다. 누가 돈 주는 것도 아니고,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난 그랬다. 그리고 지금도 그런다. 



1번 트랙부터 이어지는 트랙리스트의 호흡. 배열. 균형. 그 리듬이 달콤했다. 그것은 마치 밴드는 물론, 작사 작곡 편곡 그리고 프로듀서와 앨범의 레이블까지 모두가 관여된 일관된 주관이 나에게까지 다다르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게 맞긴 하다. 예닐곱 곡. 배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느낌은 정말 하늘과 땅 차이다. 오묘한 그 분위기의 흐름. 리듬의 연속. 맥락의 연결 고리들이 트랙리스트를 좌지우지하면서 결과적으론 앨범의 완성도에 끼치는 영향력이 제법 되기 때문이다. 

'

아주 가끔. 지금 취중이라 딱히 떠오르진 않지만, 그간 들은 앨범을 통틀어 보면. 하나를 떠올려서 3번 다음에 6번 트랙이 오면 더 좋을 텐데 그걸 굳이 6번 트랙에 왜 배치했을까 싶은 앨범도 있고 그랬다. 곡단위 러닝 타임 때문에 LP 수록 때문에 그랬을까 싶다가도 도저히 분이 풀리지 않아 레이블에 메일을 보낼까 싶다가도 음악 들으면서 혼잣말로 욕이나 몇 마디 지껄이고 만 게 내 분노의 전부였다. 


그런데 또 신기하게도 허울이 엉망인 그 앨범을 듣고 또 듣고 계속 듣다 보면 3번 다음에 4번이 오는 게 또 제법 그럴듯했다. 사실 앨범을 만든 제작자와 레이블이 나보다 덜 고민했을까. 선택은 그들의 몫이고 청자는 내 역할이니 투덜거리다 순응하는 게 또 내 최선이려니 한다. 


결과적으로 어느 아티스트의 노래 여러 곡을 곡 단위로 들으면 그건 마치 국제광고제를 보는 느낌이다. 좋은 건 알겠는데 3~4분에 담긴 진심이 그 시간 단위로 뚝뚝 끊겨서 앞으로는 부족하고 뒤로는 여운이 생략된 기분이다. 하나 앨범 단위로 들으면 짧게는 40여 분 길게는 80여 분에 다다르는 시간 동안 그야말로 마치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하는 기분에 빠지게 된다. 


영화도 환장하는 마당에 음악을 듣는데 영화 같다니!!! 일거양득! 끝이다. 



그래서 1년에 몇 번 아티스트 특별전을 나 혼자 갖는다. 산울림 데이는 아침부터 밤까지 1집부터 마지막 앨범까지 차근차근 들어 나간다. 사실 산울림은 하루에 다 듣기 어려운 밴드다. 하루하고도 반나절이 필요하다. 훌쩍. 해철이 형 앨범도 마찬가지. 건강관리 좀 하지 형아... 


봄여름가을겨울. 김현식. 공일오비. 윤종신. 토이(표절하지 마라). 유영석(푸른 하늘, 그리고 화이트), 김광석. 이소라. 이상은. 나윤선. 데빌돌. 메탈리카. 라디오헤드. 뮤즈. 라크리모사. 얀 티에르상.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그만 나열하자. 창피해진다. 더 있는데. 더 못 적겠는 게 창피해...


그날 하루는 아티스트랑 나랑 온종일 데이트하는 날. 그래서 더 정겹고. 그래서 더 애틋하고 각별하다. 앨범 하나씩 플레이어에 올려놓고 순서대로 들으면서 당신의 데뷔와 현재까지. 그리고 그때의 내 젊음부터 오늘날까지. 그 서사와 역사와 시간의 기록들을 노래 한곡 단위로 이어지는 맥락과 흐름을 함께 공유하는 맛. 


짜릿하다. 


이유를 불문하고. 결국은. 쓸데없는 고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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