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 구석의 시계가 6시 정각이 되는 순간, 부리나케 사무실을 빠져 나온다. 북적이는 지하철을 다섯정거장 견디면 어느새 집에 다다른다. 아주 가끔 지하철이 연착되거나 플랫폼에 사람이 많아 출구까지 빠져나오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면 슬쩍 아내에게 문자를 보낸다. 어찌됐건 늘 비슷한 시간대에 집에 도착하면 두 아이와 아내의 반가운 인사를 들은 뒤 저녁 상을 마주하게 된다.
아침잠이 많은 아내를 둔 덕에 아침밥은 늘 내 담당이다. 까다로운 입맛을 자랑하는 큰녀석 덕에 같은 메뉴를 두 번 이상 반복하지 않는다. 엄마를 닮은 둘째는 아침밥 대신 잠을 선택해 종종 빠지만 어찌됐건 두 녀석의 아침은 내가 책임진다.
한푼이라도 아껴보겠다고 점심은 도시락으로 해결한다. 월요일 출근길에 그 주에 먹을 반찬을 몰아서 챙겨가고 함께 도시락을 먹는 멤버들 역시 국과 반찬을 십시일반 거든다. 밥만 회사에서 바로 지어 먹는데, 시간도 많이 단축하고 돈도 아주 많이 절약할 수 있다. 그런 연유로 나는 아침과 점심을 늘 집밥을 먹는 느낌적인 느낌으로 지낸다. 그러다보니 저녁만이라도 나름의 별미를 먹게끔 해주겠다는 아내의 마음이 연신 고맙고 또 예쁘다.
떡볶이, 스파게티, 쌀국수, 부대찌개는 1순위 메뉴다. 객관적인 1인분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양이기에 늘 2~3인분의 양으로 준비해준다. 비빔국수와 튀김만두, 비빔면과 소떡, 만두국, 찐만두, 돈까스 등은 별미 메뉴다. 하나의 메뉴만으로는 약간 부족하다 싶어서 뭔가를 곁들여주는 구성이 몹시 아찔하다. 변변한 재료나 계획이 아쉬울땐 노른자를 익히지 않은 계란이 2개나 올려진 김치볶음밥이 나를 기다린다. 방금 만든 뜨거운 김이 펄펄 솟아나는 밥 한끼는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시달린 내 피로를 말끔하게 사라지게 한다.
그 밥 한끼가 뭐라고. 그리 오래되지 않은 아내의 정성이 담긴 밥상은 언제부턴가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그래서 더더욱 식탁에 앉기 직전까지 어떤 메뉴인지 알아차리기 싫을 정도로 눈도 감고 후각도 잠깐 마비시킨다. 투정 안부리고 잘 먹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남김없이 깨끗하게 먹어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15분 남짓, 그날 서로에게 있었던 일을 주고 받으며 말 그대로 '따뜻한 시간'을 보낸다.
그 밥 한끼를 먹기 위해 아침에 출근을 한다. 그 밥 한끼를 공유하는 시간에 행복한 마음을 느낀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 중 하나가 밥이라 한들, 내게 있어 저녁에 먹는 그 밥 한끼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것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