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불가

책 십 년 천권 : 책 속으로 풍덩

by 잭 슈렉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 서울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동네에서 지금까지 쭉 살고 있으니 토박이가 맞다. 아이러니하게도 전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인데 내가 거주하는 지역은 자치구 중 가장 인구가 적은 곳이다. 그마저도 계속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지자체에서는 인구 감소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아이를 키우기 좋은 도시라는 주제로 다양한 시설과 복지를 구축하고 있는 중이다. 때문에 도서관은 물론, 영·유아부터 어린이, 청소년들이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들이 계절이 멀다 하고 만들어지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도서관이 걸어서 2분 거리다. 그 건물엔 7살까지 입장 가능한 유아 놀이터도 있고, 규모가 은근히되는 강당에 동사무소도 있다. 옥상에는 하늘정원이란 이름으로 카페테리아가 있고, 아이들이 여러 직업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상시로 운영되고 있다.


이 건물에서 길을 건너 2분 정도만 더 걸어가면 어린이와 청소년에 집중하는 아직 반짝반짝 새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 또 나타난다. 지하 두 개 층과 지상 한 개 층으로 되어 있는데, 언덕을 따라 만들어진 공원을 품고 있어서 지하 공간이 마치 미로처럼 독특한 재미를 준다.


일일이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많은 프로그램이 있는데, 최근 첫째 아이가 이곳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코딩을 배우러 다니고 있다. 아이를 따라 방문해 보니 그야말로 신세계가 따로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것은 바로 도서관이었다.


일반 도서관처럼 책장이 직렬과 병렬로 쭉 이어져서 답답하고 빽빽한 느낌을 전혀 주지 않는다. 벽을 둘러 책장이 있지만 높이가 높지 않고 유격도 충분히 쉼표를 찍을 만큼 여유롭다. 어린이 도서관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 얕은 미끄럼틀과 함께 온돌 바닥을 즐길 수 있다. 1.5층 높이로 이어지는 굵직한 계단에 앉아서 책을 볼 수도 있다.


자유로운 토론을 이어 갈 수 있도록 4인용 책상들과 커다란 원탁 테이블도 있다. 가장 안쪽에는 북유럽 스타일의 디자인이 느껴지는 푹신한 소파가 앙증맞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6명은 충분히 마주 앉을 수 있는 붙박이 공간이 여섯 개, 벽을 따라 이어지는 나 홀로 족을 위한 테이블의 물결까지... 개미들이 모여 사는 집을 연상할 정도로 사이사이 숨은 공간이 많다.


아이는 코딩을 배우러 사라지고 1시간 가까이 기다리는 동안 도서관에 머물러 여러 책들을 펼쳤다. 그러다 맘에 드는 책 한 권을 발견하고는 대출을 위해 도서관 출입구 옆에 있는 안내데스크로 향했다. 대출을 위해 앱을 미리 켰다. 자주 가는 도서관에서 3권을 대출한 상황이라 한 권 추가 대출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가벼운 목례에 이어 대출을 부탁드린다며 책을 내밀었다. 연세가 지긋하신 직원 분께서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곳은 열린 도서관이라고 했다. 대출은 안 되고, 도서관 안에서는 얼마든지 읽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대출이 필요하다면 바로 옆 건물에 있는 도서관을 이용해 달라고도 안내를 덧붙여 주었다. 그러고 보니 바로 옆 건물이 10년 전 내가 대출카드를 만든 바로 그 도서관이었다.


바코드까지 책 표지에 다 붙여 놓고선 대출이 안 된다고 하니 다소 의아했다. 이유를 물었으나,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열린 도서관. 결국 대출 불가 도서관에서 아이가 나올 때까지 손에 쥔 책을 읽었다. 1시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끝까지 읽을 수 없는 분량이라 원래 있던 자리에 정확하게 꽂아 두었다. 다음 주에 다시 와서 이어서 읽어주마. 책에게 선전포고를 전했다.


세상에... 대출 불가 도서관이라니.


낯선 규칙에 속상했지만, 자주 가야지. 어쩔 수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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