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 읽는 국악이야기 ㅣ 하응백 ㅣ 휴먼앤북스
십여 년 전, <가요무대>를 즐겨보시던 어머니께서 저건 어떻게 가서 볼 수 없냐고 물으셔서 KBS 홈페이지에서 몇 차례 신청을 거듭해 방청의 기회를 얻은 적이 있었다. 어머니 포함 모두 네 분께서 정말 재밌게 보셨다고 했고, 다른 프로그램은 또 그렇게 볼 수 없냐고 물으셔서 <국악한마당>도 신청해 드렸다. 두 달간 매주 신청했던 <가요무대>와는 달리 <국악한마당>은 1회차 신청에 바로 방청권이 당첨됐었다. 상대적으로 신청자가 적은 느낌을 역력히 받았다. 어머니께서도 좋아는 하셨지만 트로트로 채워진 <가요무대>보다는 덜하다고 하셨다.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는 국악보다 클래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만 같다. 자진모리장단이니 쿵덕쿵 더러러 등 이런 거보단 네덜란드 가곡, 미국 민요를 비롯해 모차르트니 베토벤이니 헨델이니 하는 클래식 작곡가들의 이름이 더 자주 등장한다. 이를 두고 분개하던 중학교 시절 음악 선생님의 일장 연설이 아직도 귀에 선명하다. 그는 독특하게도 늘 단소를 갖고 다녔고, 몽둥이로도 쓰면서도 가끔 복도에서 뜬금없이 단소 연주를 들려주곤 했다.
결국 모든 예술은 기록의 산물로 남을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 존재해야 그것의 가치가 비로소 드러나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클래식은 수백 년 동안 정확한 악보가 남아 있기에 전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다. 국악은 가사는 그럴 수 있으나 음표가 별달리 없는 구조라 아무래도 경쟁력 면에서 취약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것이 좋은 것이라고 주야장천 떠들던 시절이 있었고, 사람들도 국악이 좋은 건 알았지만 피부로 느낄 만큼 살가웠던 적은 없었다. 그런 가운데 <서편제>의 흥행은 국악이란 장르의 일대 전환기를 이끌어 왔다.
대중음악에서도 국악을 접목하는 시도가 많이 일어났다. 김수철, 신해철, 서태지, 황병기 등이 떠오른다. 유명세를 떠나 그런 소소한 시도들이 음악으로 남고, 인간의 수명보다 더 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예술로서 흔적을 남겼다는 사실만으로도 왠지 뿌듯하다.
국악만으로도 어려운데 거기에 인문학을 더한 책이다. 절대 쉬울 일 없다. 하지만, 가끔은 잊히고 외면했던 장르를 책으로나마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만든다. 그래서 손에 쥔 이 책은 더딘 속도로나마 어렵게 읽어나갈 수 있었고, 생각보다 재미있는 당시의 일화들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흥미를 자아냈다.
일정 규율로 만들어진 음악 구조라 한들, 결국 우리 국악에는 클래식에는 없는 '가사'가 존재했다. 여러 악기가 어우러진 협연도 국악에 존재하지만, 시조 등의 형태를 빌린 노랫말이 국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이었다. 그 가사는 당시 노비들의 지루한 삶을 담기도 했고, 고약한 임금의 행태를 꼬집기도 했다. 풋풋한 청춘의 사랑을 그렸고, 19금을 능가할 수준의 음담패설도 쏠쏠하게 등장했다.
이러한 가사를 통해 그 시절을 해석하고 짐작하는 책에 등장하는 여러 곡들은 오랫동안 우리 조상 그리고 이 땅에서 국악이 어떻게 명맥을 유지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국악 중 빼놓을 수 없는 아리랑에 대한 심도 있는 언급도 시선을 붙잡아 둔다. 민초들의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며 이제는 세계적인 노래로 이르게 된 아리랑의 시초는 '정선아리랑'으로 본다. 이후 서울 경기의 긴 앙리랑, 경상도의 밀양아리랑, 전라도의 전라 아리랑, 황해도의 해주아리랑 등으로 구전 과정에서 해당 지역의 특색에 맞춰 가사가 조금씩 바뀌고 멜로디와 분위기가 달라졌다.
지극히 짐작될 일화겠지만, 언젠가 외국에서 오래 살던 이민자가 우리나라 해외 공연단이 부르는 아리랑을 듣고 펑펑 울었다는 이야기를 TV에서 접했다. 먼 타지에서 사는데 우리 노래를 들으면 으레 그럴 법도 한 일이다. 오죽하면 평생을 한국에서 사는 나 또한 가끔 청아하게 울려 퍼지는 아리랑을 들으면 괜히 마음이 젖는다. 돌아가신 할머니께서도 일제 강점기 시절을 얘기하시면서 그때 배웠던, 이제는 다 잊은 일본 말들과 함께 아리랑을 부르면서 여명이 밝아오길 나와 함께 기다리곤 하셨다.
국악, 그중 아리랑은 노래 자체가 한민족의 영혼과 얼이 담긴 것이라 해도 무방하지 않을 것이다.
국악도 인문학도 결국 사람 사는 모양새다. 시대가 달라져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지배하는 세상이 도래했다 한들, 그 속에 숨 쉬는 우리의 모습은 여전히 과거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자주 들춰볼 순 없을지언정, 그래도 가끔은 국악이 주는 그 단아함과 정갈함 속에 영혼을 맡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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