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는 종종 내게 물어야 할 것들을 메모지에 메모하신다. 스마트폰 작동법 또는 유선방송 관련된 내용이 대부분이다. 가끔은 이제 당신이 나이가 꽤 많이 들었음을 느낄 정도로 얼마 전만 하더라도 충분히 스스로 해결하셨을 일들에 대한 것도 심심치 않게 다뤄진다. 그럴 때면 정성껏, 서두름 없이 내게 전한 질문에 대한 답을 상세하게 들려드리곤 한다.
얼마 전엔 메모지에 재료 10여 종의 중량이 자세하게 적힌 레시피를 내게 건네셨다.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스파게티라는 것에 대해 나왔는데 만들어진 모양새나 재료가 예사롭지 않아 요리법을 물으셨던 것이다. 집 근처에도 스파게티를 파는 식당이 충분히 있음에 서툰 당신은 나가서 음식 한 끼 사드실 요량이 없으셨다. 어쩌면, 나이가 든다는 건 익숙하지 않은 것들로부터 생소하고 두려움을 더 많이 느끼게 되는 것 같단 생각이 든다. 나도 가끔은 그러하다
익숙한 메뉴라 가볍게 안내를 드렸다. 그리곤 일주일 뒤 아내와 함께 준비를 해올 테니 우리 네 식구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까지 해서 여섯 식구 다 같이 먹자고 말씀드렸다. 평소라면 뭘 귀찮게 그러냐고 그냥 티브이 보다가 끼적인 것뿐이라고 하셨을 텐데, 이번엔 일절 머뭇거림 없이 기다리겠다고 하셨다.
이탈리아 전통 음식 중 스파게티와 피자는 그야말로 전 세계를 지배했다. 우리 집 냉동실에 늘 냉동 피자가 있고, 스파게티 역시 토마토소스를 베이스로 한 조리법으로 매주 한 번 정도는 아내가 정성껏 만들어주고 있다. 가끔은 그것들이 우리 전통 음식인 양 느껴질 정도다. 피자든 스파게티든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게 어디 일이겠느냐.
죽자고 제대로 하면 제법 복잡할 테지만 이미 여러 이름을 단 소스들이 유리병에 담겨 시판되고 있다. 그리하여 소스와 면을 필두로 파프리카, 베이컨, 양파, 올리브유 등을 준비해서 소스는 부모님댁 건너가기 1시간 전에 만들어 살짝 식혀두었고, 면은 건너가자마자 삶아서 한상을 차렸다.
스파게티만 있으면 서운할 것 같아 얼마 전 아내가 먹고 싶다고 해서 만들기 시작한 바게트를 조금 추가했다. 아버지께서는 방에 스파게티를 함께 먹는 게 낯설어 도전하지 않으셨으나, 엄마는 은근 맛있어 바게트와 스파게티 소스의 조합을 환대하는 눈치였다.
방금 조리한, 그야말로 뜨거운 스파게티였다. 부모님댁에 마땅한 그릇이 없어 그릇과 예쁜 포크도 함께 갖고 와서 부모님 앞에 준비해 드렸다. 어쩌면 뚝배기에 담긴 국밥의 느낌이었을까. 소주 한 잔과 스파게티 한 입을 차분하게 드시면서, 연신 맛있다고 먹을만하다고 소감을 들려주시는 아버지 모습에 절로 기분이 달콤해졌다.
어려운 거 아니라고. 큰돈 들지 않는다고.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음식 중 잡숫고 싶으신 건 언제든지 요리 이름만 알려달라고 말씀드리자 거절 없이 고개만 끄덕이셨다. 웬만한 요리는 다 할 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열심히 더 집중해서 요리 준비에 매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세 번째 음식은 아버지의 신청을 받아 즐거운 한 끼 식사로 마무리 지었다. 월간이라 이름 짓고 반년이 지나 두 번째 음식을 준비한 것이 못내 멋쩍었지만, 언젠가는 격주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괜히 설렘이 밀려왔다.
빨간 토마토소스의 스파게티를 맛보셨으니, 다음엔 하얀 크림 스파게티도 준비해 볼까. 성공 확률이 현저히 낮지만, 은근슬쩍 그런 궁리도 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