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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 Jun 20. 2024

젊으니까 안 보인다

보여도 모른다


나이 들면서 진심이 되는 것들이 있다.

그렇다고 젊은 청춘엔 몰랐냐 묻는다면, 절대 그렇지 않다.

그때도 정말 중요하다고,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호기롭게 대답했을 지도

모르는 것들이다.



건강.

사랑.

비움.




건강.

이라고 쓰고 '전부'라고 읽어도 좋다.

그만큼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아이러니한 것은 젊고 건강할 땐 절대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건강을 잃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건강을 잃고 지금까지 당연히 생각해 왔던 것들조차 마음대로 못하게 되는 

그 상황을 감히 상상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글을 쓰는 지금도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설명할  자신이 없다. 

뛰어난 필력을 지닌 누군가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슬쩍 귓뜸이라도 해 주었으면 좋겠다.


건강이 악화되어 병원에 계신 어머님은 늘 말씀하신다.


죽이 아닌 일반 밥에 김치 얹어 한 숟가락이라도 드셔보고 싶다고...

당신 두 발로 걸어 화장실에 갈 수 있기만 해도 다른 건 다 괜찮겠다고..


건강을 잃는 육체는 그야말로 몸과 마음, 영혼의 감옥이 된다.


눈을 감고 5분이라도 생활해 보기를.

손가락을 쓰지 않고 핸드폰을 조작해 보기를.

한 발로 30분이라도 걸어 보기를.







사랑.

이라고 100명의 사람들이 말한다면 100개의 서로 다른 정의가 나올 것이다.

무엇이라도 좋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했지만, 

사랑이 아니었던 것들을 감별할 수 있게 된다.


그 대부분의 것은 나의 집착과 욕심, 이기심을 상대방에게 투영하면서 

그것이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경우다. 


사랑은 "오래 참음"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젊은 시절 뜨거운 마음도, 열망도, 어떤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무엇이든 해 주고 싶었던 마음도

대부분은 되돌아보면 신기루와 같다. 당시에는 감정의 끝까지 차올랐지만, 이후 이런저런 이유로

그 사랑은 떠나거나, 변하거나, 심지어 증오나 분노로 변하기도 한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다.

이런저런 것들이 흔들고, 괴롭혀도 요동치지 않는 마음.

실망에도, 분노에도, 허무감이나 아픔에도, 

온갖 "그럼에도 불구하고"와 맞서 싸우는 마음, 

그렇게 끝내 놓아 버리는 않는 마음말이다.







비움

이라고 쓰고 '감사'로 읽어도 좋다.


나이 들어 비움은 어쩔 수 없이 되는 경우도 있고, 애써 노력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명품, 보석, 옷이나 신발, 음식.... 대부분 물질적인 것들의 '필요'가 줄어드니

비움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문제는 마음의 비움이다.

애착이나 욕심뿐만 아니라, 후회나 걱정, 두려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비우는 것에도 진심을 담아야 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보통의 일상, 

작고 평범하지만 내 루틴을 방해하지 않는, 

작은 것들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비움이다.


그렇게 내가 머무는 공간과, 육체와 마음을 비워내고,

가볍고 담백한 나를 만들어 가면서 

나는 '잘 죽는 것'을 준비해 간다.







건강.

사랑.

비움.


늘 곁에 있었지만, 전혀 몰랐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한 사람 보듯, 

'네가 원래 그런 애였어?"라는 심정으로 이들을 바라본다.


살아가는 세월이 쌓이면서 

내 진심 목록이 더 늘어날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진심 목록이 쌓이다 보면 내 인생도 멋지게 늙어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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