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 버닝-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설정은 가상입니다.
(이 소설은 이슈의 클럽 사건들을 여러 개 모티브로 하지만 사실과는 전혀 무관한 픽션임을 밝힙니다.)
간호사들은 아라의 심장을 따라 손목으로 터져 나오는 분수 같은 피들을 지혈했다.
간호사의 얼굴에 붉은 피가 튀어 흐른다.
아라는 기절했고 O형의 피는 가느다란 관을 통해 아라의 몸속으로 채워졌다.
쏟아지는 피, 검게 물든 병상 침대를 보며 한 인간의 수치심과 찢겨진 존엄성을 보았다.
모든 삶이 흔들리고 깨져버린 조각들처럼 우리들의 그날도 사라졌다.
은지와 나는 충격에 주저앉았다.
내 눈앞에 펼쳐진 이 광경들이 그냥, 영화였으면 좋겠다. 아니면 꿈이거나.
아니면 내가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
3년 전,
아라를 알게 된 건 대학교 때다. 같은 조별 과제 모임을 우연히 하면서 알게 되었다.
아라는 윤기나는 긴 생머리에 날씬하고 곧은 다리, 분홍색 볼, 초롱한 눈망울이 예쁜 아이였다.
아라와 나는 대학교 동기, 가끔 연락하는 친구 그 정도였던 것 같다.
언젠가 아라가 내가 사는 곳까지 놀러 와 서초동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서울 교대 앞에는 곱창집들이 많았다.
"곱창 먹을 수 있어?" 아라가 물었다.
나는 "음.. 사실 잘 먹진 못해.."라고 말했다.
곱창집 앞에서 우린 냄새만 맡으며 서있었다. 곱창 먹을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오토바이 한 대가 세차게 지나가며 수십 장의 전단을 뿌렸다.
새차게 날아온 전단지는 내 오른팔을 치고 떨어졌다.
“아야!” 오토바이는 나의 작은 비명에 연신 깔깔대며
사라져갔다. 아라는 “미친놈!” 이라며 나 대신 욕설을 했다.
바닥에 떨어진 전단을 보니 '셔츠룸'이라고 적혀있었다.
"셔츠룸??"
"세탁소야?" 나는 순간 와이셔츠가 떠올라 세탁소 전단일 거라 예측했다.
아라는 나의 말에 황당한듯 푸하하며 웃었다.
"너 진짜 순진하다!"
나는 아라가 웃자 전단을 하나 주워 읽어 보았다.
그 아래 작은 글씨로 '20대 여신 집합소'라 적혀 있었다.
우린 셔츠룸이란 단어가 재밌어서 같이 키득거렸다. 서초동과 강남일대는 셔츠방, 란제리방, 레깅스룸 같은 변종 성매매가 성행하였고 키스룸, 입싸방 등 단속을 피해 이상한 이름으로 변종되어 운영되었다. 강남구는 직장인상대의 유흥업소가 퍼져있고, 영업소를 숨기고 오피스텔이나 빌라 건물에서 영업 신고도 하지 않고 불법 운영되는 업소가 많다.
셔츠룸도 그중 하나 인데 여성들이 셔츠만 입고 접대하는 컨셉을 가진 성산업이다. 서초구가 강남구 길바닥은 그들이 던진 전단지 쓰레기가 가득하다.
언젠가 서초구를 대표하는 낯익은 정치인과 마주했는데 그 정치인의 발밑에도 셔츠룸 전단지가 있었다.
곱창집은 사람들이 많았고 작은 티브이에는 연신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다.
곱창집 아주머니의 화려한 솜씨가 들어간 불판을 가운데 두고 아라와 함께 이야기 나누었다.
"너 그거 알아?" 아라가 말했다.
리벤지 포르노라는 거 알아?
"리벤지?? 복수?" 나는 어리둥절하게 바라봤다.
배우 이예화 알아? 아라는 곱창하나를 잘근잘근 씹으며 말했다.
"알아, 걸그룹 출신이었는데 연기한다는 애."
"지난번 본 영화 "무제"에서 단역으로 나온 여자애잖아."
"응" "맞아."
이예화의 전 남자친구라고 주장하는 남자가 성관계 영상을 인터넷에 유포시켰대.
"그게 리벤지 포르노야?"
"남자친구 사귀어도 절대 그런 거 영상 찍으면 안 돼. 그리고 그런 거 찍자는 놈은 제정신 아닐 거야. "
아라는 나의 말에 "몰래 찍기도 한대."라고 답했다.
리벤지 포르노. 불쾌하고 짜증 난다. 그렇지?
욕설을 내 뱉고 싶었지만, 입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
흠...
곱창집의 작은 티브이에선 단역배우 이예화의 리벤지 포르노 기사가 흘러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