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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율 Dec 08. 2023

사춘기가 심각하지 않았다면 거짓이다

자전적 이야기, 성장통

동생에게 물었다.

'나 학창 시절 어땠어?'

'몰라서 물어?'

'개날나리였지.' '이제 와서 청순한 척하지 마.'




중학생 시절 나는 사춘기의 반항이 찾아왔다.

모든 게 심각했다.


미술시간이면 소묘며 데생이며 그려내기만 하면 칭찬을 듣던 시절이 있었다. 미술선생님도 그런 나를 예뻐해 주셨고 내 그림은 항상 우리 반의 샘플이 되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는단 건 참 기쁜 일이다. 그 느낌은 나를 으쓱하게 만들었다. 무언가 잘하는 게 있으면 그것은 곧 나의 수식어가 된다.  ‘그림 잘 그리는 서율이‘이런 식으로 말이다. 처음으로 '내가 무언가 잘하나?' '내 그림이 좋나?' 난 그냥 쓱쓱 그린 건데.....

못 그리는 애들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나는 모범적인 아이는 아니였다. 외모에 한창 관심이 생겨 교복치마를 짧게 타이트하게 줄여 입고 풀메이컵을 하고 다녔다.

'화장했어?'

담임 선생님에게 뺨을 맞았다. 요즘 같아선 상상할 순 없지만 그 시절은 가능했다.

눈물도 안 났다.




만화 그리는 걸 참 좋아했다. 말 수는 적지만 내가 만화를 그리면 반 아이들이 많이 좋아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들, 이야기들을 은근 슬적 나의 만화 속에 집어넣었다. 은유적으로 넣기도 하고 대놓고 넣기도 하며 나는 아이들과 소통했다. 말을 많이 하진 않지만 그림으로 글로 소통했던 나의 방식이었던 것 같다.


만화는 점점 물이 올랐다. 독자가 좋아하는 만화나 글은 자극적인 요소가 필요했던 걸까? 사춘기의 감수성을 건드릴려면 보다 쎈 수위가 필요했다.  어느새 내 만화는 19금, 『불온서적』이 되어 갔다.  아이들은 나의 만화를 종종 돌려보았는데 수업시간에도 멈출 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시간 한 아이가 입을 막은채 크게 웃어대는 바람에 선생님에게 만화 노트를 들켰다.


'이거 누가 그렸어?'


미술 선생님이 단호하게 다시 물었다.


'이거 누가 그렸어?'


나는 교탁 앞으로 나갔다. 그리곤 미술 선생님 손에 쥐어진 만화노트를 뺏어 그대로 교탁 앞 칠판을 향해 집어던졌다.

미술 선생님이 수업도 하지 않고 그대로 교실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부모님을 당장 모셔와라. 반성문을 써라.

이 두 가지는  나의 과제였다.


일주일 정도 수업을 들어가지 못하고 한 여름 미술실에서 혼자 반성의 시간을 보냈다.

수많은 이젤들 처럼 덩그러니 혼자 놓여진 나.

지루하고 따분하고 물감냄새에 머리가 어지러웠던 그 시절의 미술실이 아직도 생생하다.


미술선생님은 나에게 큰 배신감을 느끼셨다고 한다.

그날 이후 더 이상 미술시간 나를 칭찬하지 않으셨다.

나도 미술이 재미없어졌다.

만화도 안 그렸다.

16살,

그 시절의 내 여름은 그렇게  다 써버린 스케치북처럼 채워졌다.







벌새는 1초에 90번의 날갯짓을 한다.


성장통이 없다면 그건 거짓이다. 그 시절 나는 한 여름의 벌새처럼 고된 날갯짓을 했다.


좋아했던 미술선생님도, 나의 그림도, 16살의 여름도 그렇게 사라졌다. 나는 그 시절의 나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 걸까?


만화를 그리지 않게 된 나는 공부만했다. 반에서 16등이던 그저 그런 내가 다음 학기 전교 3등이 되었다.

학교가 떠들석했다.

상위권 아이들이 펑펑 울었다.


‘개날나리 한서율이 전교3등했어’


나는 석차가 적힌 성적표를 그대로 갈기 갈기 찢으며

생각했다.


인생 참 우습다.






(드러내기 힘든 기억의 마음속 깊은 일기를 꺼내보았습니다.)



* 영화 벌새 내용과 무관한 개인의 자전적 이야기입니다.

*사진출처 영화 벌새

*벌새에 관한 설명 인용 (네이버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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