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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레오의 추억

Billy Ocean - Caribbean Queen

by 오리아빠 Feb 07. 2025

  84년 그러니까 고1 때 되시겠다.


  당시 웬만한 애들은 소니에서 나온 '워크맨'(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 아님 삼성에서 나온 '마이마이'정도는 하나씩 허리에 차고 다닐 때였는데, 워낙 가난해 그런 것 가질 수 없는 형편이라 마이마이가 10만 원쯤 다면 나는 어찌어찌 1만 원 정도 돈을 만들어 내 형편에 최선일 수 있는 휴대용 FM수신 라디오를 사러 세운상가를 나갔다.


  당시 세운상가는 포르노잡지 유통의 온상이어서 어리바리한 학생이 눈에 초점을 못 맞추고 두리번거리며 걸어가면, 삐끼들이 들러붙어 "좋은 것 있는데 구경할래?"하고 데려가 맛보기 보여주고 구매를 강요하는 악명 높은 장소였다.


  그 악명 높은 장소를 혼자 갔으니 두려움과 피로함을 어찌 말로 할 수 있을까? 길을 막는 삐끼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치듯 하나씩 밀쳐내며 도착한 어느 전파사. 


  친구들과 함께 오지 못함을 후회했고, 빨리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던 순딩이 고딩은, 깎아달라는 말도 꺼내지 못한 채 폴더형 전화기 크기만 한 라디오를 구입하자마자 배터리를 넣고 이어폰을 꽂았다.


  그때 방송이 MBC FM 김기덕의 '두 시의 데이트'였는데, 나오던 음악이 바로 <Billy Ocean - Caribbean Queen>


쿵쿵 짝짝~쿵쿵 짝짝~

쿵쿵 짝짝~쿵쿵 짝짝~ 삐삐 뿌뿌~~~


  남산 바로 아래, 그러니까 대한민국 최고 방송 송신탑 아래의 세운상가에서는 주파수를 잘 잡아 보겠다고 산동네, 달동네에서 안테나 방향 가지고 씨름했던 것과 달리 고급 오디오에서나 들릴 것 같은 소리가 FM에서도 나왔다.


   잡음 없이 깨끗한 소리가 왼쪽 귀와 오른쪽 귀를 번갈아 울리며 머리 위를 지나는 입체 음향은 그 어떤 오디오에서도 들어 보지 못한 소리였는데, 소리가 머리 위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신기한 체험은 처음 느낀 기술의 충격이었다.


  신무기 장착을 끝 내고 되돌아 나오는 길, 또 수많은 삐끼들이 손짓을 했지만, 귀에 이어폰을 하고 있으니 더는 붙잡지 않았다.


  첫사랑이라 그런 건가? 그때부터 어디서든 이 노래만 들리16세로 리턴된다.


https://youtu.be/uxX2gA18grk?si=jNYvNMrITiuM6X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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