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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러나 Jan 31. 2024

엄마는 '다 너 때문이야'라고 했다.

교통사고 과실을 따져야 할 때

교통사고가 나자마자 제일 먼저 찾은 건 보험사,

그다음이 엄마다.


"엄마, 나 지금 교통사고 났어"


엄마의 대답은 뭐였을까.


① 괜찮아?

② 많이 다쳤니?
③ 어떻게 된 거니?

셋다 아니다.

"넌 대체 뭐 하는 애길래 이 시간에 어딜 돌아다니는 거니?"


이 말을 해석해 보자면 이렇다.
'이 시간에 밖에 나가 차를 운전한 네가 잘못이다'


억울하다. 저녁 8시에 운전대를 잡은 게 대체 뭐가 잘못인가.


엄마는 왜 그렇게 밖에 말을 못 할까.


상처는 받았지만 놀랍지는 않았다. 엄마의 말들은 늘 일관성 있다. 엄마에게 무언가를 말하면 돌아오는 말들은 "다 네 잘못이야. 네가 잘못해서야"였다. 심지어 부부싸움이 생겨도 내 잘못이라고 했다.

살다 보니 신문에 나올 만큼 정말 무지막지하게 큰 일도 있었다. 그러나 절대로 엄마한테는 말하지 않았다. 엄마가 어떤 말로 상처를 줄지 이미 예상되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그 일에 대해서 "다 네 잘못이야"라고 엄마가 말해버린다면, 그때는 가차 없이 연을 끊고 싶을까봐 무서워서 말하지 않는다.


둘째 딸은 자라면서 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을까. 아니, 뱃속에 있을 때 엄마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감히 엄마에게 물어보지 못했다. 그저 "네 잘못이야"라는 말에 눈만 동그랗게 뜨며 삼십 년을 살았다.


그 말들은 깊게 심겨 있어서 병원에서도 나를 괴롭혔다. 엄마말에 의하면 교통사고가 난 것도 다 내 탓, 자동차를 폐차하게 된 것도 다 내 탓이다. 상대방 과실은 0, 내 과실은 100%다.






코로나 때문인지 독감 때문인지 요즘엔 병원에 면회가 불가능하다. 그 어떤 대화로도 채울 수 없는 그 적막한 시간 동안 나는 또 '내 탓이야'를 시전 하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밥이 잘 넘어갈 턱이 없었다. 소화시킬 자신이 없어서 어느 날은 간호사에게 흰 죽만 달라고 했다. 마음이 지옥이었다. 내 마음에 그런 지옥을 심어 두고 엄마는 신나게 태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일주일 뒤, 여행에서 돌아온 엄마를 만났다. 거실에 앉아 교통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냈다.
돌아온 엄마의 말.


"보나 마나 네가 잘못했겠지"


사고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어본 적도 없으면서 그렇게 말하다니. 결국 일주일 동안 엄마의 말을 잘게 잘게 씹어먹다가 삼키지 못하고 뱉었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정말 엄마 딸이 다 잘못한 것 같아? 내가 그렇게 멍청하고 한심해? 엄마는 어떻게 된 건지도 모르잖아"


당황한 눈빛의 엄마.


이윽고 그녀의 대답이 이어진다. 엄마도 무서워서 걱정돼서 그랬다고. 내 딸에게 그런 일이 생긴 것이 감당하지 못하겠어서 그런 말이 나와버렸다고. 미안하다고. 앞으로 그렇게 말하지 않겠다고.

"네 잘못이야" "니 탓이야"라는 말은, 엄마의 불안과 두려움을 허공에 던지는 말이었다. 그러나, 둘째 딸은 허공에 던진 말들에 맞아서 많이 아팠다. 그런데도 감정처리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엄마의 인생이 불쌍해서 더 이상 탓하지도, 쏘아붙이지도 못했다. 엄마의 탓을 할 수가 없으니까. 다른 사람의 탓을 하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교통사고 발생 3주 차, 보험사끼리 과실 협의가 되지 않았다. 결국 이 사건은 경찰서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래서 교통사고 진술서를 쓰러 갔다.


진술서에 ‘모두 다 내 잘못입니다. 나를 처벌해주십시오’라고 쓸 수는 없다. 엄마가 내 마음에 문신처럼 남긴 '너 때문이야'를 어떻게든 밀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은 한문철 TV 유튜브 채널 영상보기. 이 사고에서 내 잘못과 타인의 잘못은 무엇인지 어떻게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지 배우고 싶었다.

그렇지만 오히려 낭패였다. 교통사고의 시시비비를 논리적으로 따지는 법을 배우고 싶었는데 유튜브 댓글에는 온갖 비난과 책망이 가득하다. 어딘가에서 '네 탓이야' '네가 잘못한 거야'라는 비난의 말들이 솟아올라 곧 경기를 일으킬 것 같았다. 마음에 큰 파도가 치고 이성이 마비된 듯 그대로 얼어버린다.

내가 더 잘못한 것 같은 교훈만 얻은 채로 경찰서에 갔다. 교통조사계 테이블에 앉아 진술서를 펴두고 한 시간 내내 고민했다. 첫 장을 망치고 두장째로 넘어갔다. 대입 논술보다 어렵고 자소서보다 더 심난했다. 나를 변호할 사람은 나뿐인데 그 자리엔 심신미약의 어린아이만 남아 펜을 끄적이고 있었다.


그래서 진술서를 제출하지 않고 경찰서를 나와버렸다.


그렇게 진술서 제출을 또 이틀이나 미뤘다. 이틀뒤에 어른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어른이 되는 시간은 이틀이면 충분할까.


엄마의 말들을 나는 어떻게 몰아내야 할까. '너 덕분이야'라는 말들과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들을 많이 듣고 싶어 지는 2024년이다. 암흑 속에 지나는 이 1월은, 나의 성장과제를 뚜렷하게 직면하는 달이다.



교통사고가 내게 가르쳐 준 것, 세번째

내 안의 적 몰아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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