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러나 Jan 26. 2024

사별 중입니다

첫 차를 폐차시키던 날

사람이 죽어서 이별하는 것을 사별이라고 한다. 서른둘, 나는 애초부터 사별할 연인도 남편도 없다. 그럼에도 사별이라는 단어를 골라 쓴 것은 이유가 있다. 슬픔을 퍼올릴 우물은 꽤 깊기에 거짓도, 과장도 아니다.


사람보다 사랑한 첫차와 이별하며 느낀, 내향인의 깊은 애통을 더듬어 써본다. 우울과 불안의 회오리가 덮치던 그날과 눈물의 바다를 헤엄쳐 뭍으로 나오던 순간을 담았다. 이런 게, 상실감인가 보다.




"차는.. 폐차시켜야겠는데요?"

사고 15분 뒤 보험사 직원이 도착했다.  


입술을 빼쭉거리며 보험사 직원을 째려봤다.

'누구 마음대로 숨통을 끊으려고?'


애마의 이름은 쿠방이다. 사고현장에서 부서지고 찢어진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쿠방이. 숨을 헐떡이다 의식이 사라져 간다. 애처롭기가 짝이 없다. 보는 사람만 없다면 지금 당장 뛰어올라가 심폐소생술이라도 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 탄 냄새가 진동을 한다. 콧구멍 속으로 들어오는 매캐한 공기에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정말 이렇게 끝인 걸까. 그래도 이렇게 떠나보낼 순 없다. 쿠방이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다.


"견적 먼저 뽑아주세요"


폐차해야 한다는 말을 귓등으로 들은 체하고 수리견적 먼저 뽑아달라고 했다. 다음날 첫 번째 공업소에서 전화가 왔다. 수리비 대비 쿠방이의 가치를 이야기하며 폐차하라고 했다. 나는 퇴사한 백수, 주머니사정이 넉넉지 않다. 현실적으로 목숨값을 내고 쿠방이를 고칠 여유가 없다. 그래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마지막까지 어떻게든 살려보고 싶었다.


그래서 다른 공업소로 또 보냈다. 그곳에서도 고개를 저었다. 이제는 보내줘야 할 때라고.  발악을 했지만 쿠방이의 운명은 거기까지였다. 헤어져야 하는 순간이 이렇게 찾아왔다.


쿠방이의 눈을 감기기로 한 날부터, 며칠간 애도의 밤이 흘렀다. 시시때때로 흐르는 눈물 때문에 눈을 뜬 것보다 눈을 감은 순간이 더 많았다. 그래서 내내 캄캄한 밤이었다.





왜 이렇게까지 슬픈 걸까


깊은 슬픔 속에서 헤매다가, 난 도대체 사람도 아닌 것이 죽은 것에 왜 이렇게 슬픈 건지 생각해 봤다. 한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첫차를 잃었다고 밥이 안 넘어가는 건 또 뭘까.


1. 내향인은 혼자가 최고야

내향인인 나는 밖에서 사람을 만나고 오면 피를 철철 흘리는 사람이었다. 오롯이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은 자동차뿐이었다. 3년 6개월 동안 나의 피난처가 된 그 작은 공간에서 숨 쉬고, 울고, 웃고, 쉬고, 노래했다. 아무리 울어도, 아무리 크게 울어도 쿠방이는 요동하지 않았다.


때로는 사람보다 물건에게 마음을 주는 것이 더 편하다.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아무런 기대를 받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많이 피곤했다. 그 든든하고 편안한 요람이 사라졌으니 어디에 기대야 할지 몰라서 두려워졌다.


2. 20대 후반을 온통 함께한 친구

물건에 자주 기억과 애정을 담고는 한다. 감정과 말들은 사라지지만, 물건은 잃어버리지만 않는다면 언제든지 남아있다. 그래서 특별한 일을 기념하기 위해 물건을 산다.


첫차는 사회초년생 생활을 지켜봐 주는 수호신 같았다. 회사에서 억울한 일이 있을 때, 인정받았을 때, 내 마음이 한 뼘 성장했을 때 모든 시간을 함께했으니 나의 성장을 지켜보아준 증인도 됐다. 이런 존재가 사라지니 누구에게 나를 지켜봐 달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남자친구보다, 친구보다, 가족보다 더 가까이 지냈던 첫차가 나의 잘못과 누군가의 잘못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남자친구랑 헤어진 아픔보다 더 컸다. 그래서 사별 중이라고 제목을 지었다. 내가 겪은 슬픔과 고통을 비할 데는 그것뿐이었다.




슬픔의 바다


 3년 반동안 동고동락한 애마를 폐차해야 한다니, 슬픔과 자책감이 마음을 뒤덮었다. 육신의 고통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상심이 너무 큰 나머지 나는 술 한 방울 없이 한 말을 하고 또 했다. 쿠방이와의 이별이 얼마나 슬픈지,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는지 누구에게 알아라도 달라는 듯이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카톡으로, 직접 만나서, 전화로 울며불며 슬픔을 파헤쳤다.


제일 고비는 입원 중에 찾아왔다. 너무 슬펐는데 6인실에서 꺼이꺼이 울 수는 없는 일. 면회도 안되고 외출도 안 되는 병원에서 몰래 빠져나와, 집에서 한껏 울었다. 눈물이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때까지 바닥에 엎드려 속을 터트렸다. 그러다 더는 견디지 못해 더 입원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뒤로하고 빨리 퇴원해 버렸다. 병원에서는 마음 편히 울 수 없으니까.






"너를 지켜주다가 그런 거야"


퇴원 후 아빠랑 밥을 먹었다. 죽상인 나를 보다 못해 아빠 입에서 툭 튀어나온 한마디.


"걔는 널 위해서 죽은 거야 해야 할 일을 한 거지"


쿠방이가 그렇게 죽지 않았으면 그 큰 충돌에서 살아남을 수는 없었다. 나는 피 한 방울도 나지 않았고 부러진 곳도 없었다. 쿠방이는 제 할 일을 했다. 자동차가 무거운 철갑을 두른 이유는 운전자를 지키기 위함이다. 제 할 일을 백분해내고 떠난 게 고맙고 미안했다.


영화 인사이드아웃에서 주인공 라일리는 풍부한 감정을 배워간다. 세상엔 기쁨만 있는 게 아니다. 슬픔과 상실을 배워가며 한 사람이 온전한 인간이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이별을 처음 겪은 것도 아닌데, 마치 처음인 것 마냥 서른둘이 되어서 상실감을 다시 배워간다. 슬픔의 구슬이 영글어가는 시간인가 보다.  


사망보험금이 입금된 날


사고 후 일주일. 띠링-

KB국민은행에서 문자가 왔다.


폭포수 같은 눈물을 흘렸다. 그날은 댐이 열렸다.


이제 한 줌의 재가 되어 머린 쿠방이가 남긴 사망보험금, 아니 폐차되고 받은 돈이 입금되었다.


그 빨간 차가 더 이상 손에 만져질 수 없는 것, 그 핸들을 손에 쥘 수 없다는 것, 이제는 그의 존재가 기억 속에만 남아버렸다는 것이 더 크게 느껴졌다. 정말 끝이구나. 이제는 눈물이 마른 줄 알았는데, 속에 쌓이고 쌓이다 미처 터져나오지 못한 슬픔들이 튀어나왔다. 그날은 새벽 3시에도 데시벨이 전혀 통제되지 않는 이상한 날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 눈물탱크가 조금씩 말라가기 시작했다.




교통사고가 내게 가르쳐준 것 두 번째,

상실감







다음은 세번째 글로 돌아오겠습니다.

이전 01화 교통사고를 내고 말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