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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정을 받다

희미하게나마 느끼고 있었지만 명확히 표현할 수 없었던 것

by 반차

언니의 첫 외출이 끝나고 나서 서로 기분이 많이 상해 보였다. 그러다 어느 날 엄마가 언니의 전화를 받지 않겠다 선언했다. 엄마는 말이 통하지 않는 언니를 대하는 것에 지쳐버린 듯 말했다. 엄마는 가끔 애 같이 굴 때가 있었고, 그때마다 내가 엄마의 엄마 노릇을 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나를 병들게 했다. 근데 힘든 상황에서 엄마가 또 그러자 나도 너무 지쳤었다.

게다가 술 한잔 한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너네 언니한테 지금 전화 못하겠으니까, 네가 언니한테 전화 좀 해라"

그 말을 듣고 정말 환장하는 줄 알았다. 아니, 언니는 지금 병원에서 유일한 연락망으로 우리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 텐데. 매번 전화할 때마다 휴대폰이 없어 답답하다는 소리를 하는데, 부모로서 전화까지 안 받으면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그리고 나에게 말을 대신 전하라니. 어깨가 무거웠다. 참 막막했다.




살면서 언니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은 늘 있었다. (앞선 글에서도 언급적 있지만)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특징이라 생각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이상하다는 것이 희미하게나마 느껴질 뿐 단어로 풀어서 명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던 그런 지점이 분명 있었다. 나의 경우는 상담을 받으면서 '경계선 지능인'이라는 개념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언니가 경지인임을 의심해 볼 수 있었다. 반면 부모님과 언니의 경우는 '경계선 지능인'에 대해 전혀 몰랐기 때문에 한 번도 그 이상함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분명 우리는 모두 느끼고 있었다. 누군가 가볍게 해내는 일도 언니는 버거워했고, 어려운 일의 언덕을 넘지 못하고 넘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언니는 병원에 입원해 종합 정신 검사를 받았다. 검사는 환자에 따라 수 일이 소요되기도 한다. 언니는 검사에 잘 협조했기 때문에 하루 만에 검사를 마쳤다고 했다. 의사는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한 달이 걸린다고 했다. 하지만 입원 3주가 되었을 때 즈음 결과가 나왔다. 검사 결과는 본인이 먼저 듣고, 의사와의 면담 시간에 보호자가 듣게 된다.

결과를 들은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야. 내가 경계선 지능? 뭐 그런 거래"

"듣는데 초등학생 지능 밖에 안된다고 하니까 기분이 좀 나쁘더라고"

언니는 말했다. 기분이 나빠 보였지만 크게 충격을 받지 않을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랬구나. 언니는 살면서 그런 거 때문에 불편하다고 느꼈던 적이 없어?"

나는 언니가 의심한 적이 진짜 없었을까 싶어 물었다.

"한 번도 없었는데?"

언니는 답했다.


의사의 말로는 13세 봄 학기를 지나는 정도의 지능이라 말했고, 모든 판단을 할 때는 보호자에게 꼭 물어봐야 한다고 했다. 기억력과 판단력 부분에서 큰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사회성 부분에선 비교적 높은 점수였다고 한다. 언니는 검사 결과를 부모님 게 말 할지 말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어차피 밝혀질 결과인데 마치 본인이 잘못한 일인 양, 밝히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러면서 연약한 엄마에 대한 걱정을 했다.


"이거 듣고 엄마 쓰러질까 봐 걱정된다"


듣는데 참 마음이 아팠다. 사실 언니가 하는 고민은 의미가 없었다. 환갑여행 전 내가 이미 부모님께 언니가 경계선 지능인이라는 사실을 말했었기 때문이다. 또 일주일 뒤면 의사의 입에서 더 정확하게 듣게 될 일이었다. 그것을 온 힘을 다해 고민하는 언니를 보니 마음이 이상한 거다. 그리고 화도 내지 않고 애써 체념하는 언니가 참 순진하고도 아프게 느껴졌다.



시간이 흘러 부모님도 결과를 듣게 되셨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일이지만 충격이 크셨으리라. 부모님도 의사의 입에서 결과를 듣고서야 실감이 나는 것 같았다. 내가 말했을 때 느꼈던 것보다 충격이 크셨겠지. 그동안 언니에게 신경 써주지 못함에 큰 미안함을 느끼는 듯했다. 당시 내가 울산에 있지는 않았지만 아마 엄마는 오랫동안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때 부모님의 심정이 어땠는지는 감히 헤아릴 수 없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것이 우리 상황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수밖에.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덜 행복하게 사는 건 아니니까.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야. 너네 언니도"

나도 아빠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삶의 가치를 누군가 돈과 성공으로 둔다면 경지인은 그 기준에 미치기 힘들 수 있다. 하지만 행복을 위해 산다면 경지인도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당시 나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일 년 전에 언니의 상태를 알게 되었음에도 모른 척 방치했던 것이. 언니보다 나를 우선시한 것이. 그때는 나만 알고 있다는 사실이 무겁게도 느껴졌다. 부모님께 이를 어떻게 알려야 할지, 어떻게 언니를 정신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게 할지 막막했었다. 사실은 부모님과 언니를 정신병원에 데려다 놓는 게 큰 고비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일 년이 흘렀지만 그래도 언니는 보호자와 함께 검사를 받게 되었고, 걱정과는 다르게 부모님은 빠르게 결과를 받아들이셨다.


가족 모두가 알게 되니 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이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언니도 부모님도 그리고 나도 행복할 수 있는지 부지런히 공부해야 할 시간이다.

우선 차근차근해보자는 마음으로 국가에서 하는 가족상담을 신청해 드렸다.

우리가 행복해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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