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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합창단

Chapter Ⅲ 

   돌이켜 생각해 보면 대학원 생활 동안 나를 버틸 수 있게 해 준 상황이 각 학기마다 있었던 것 같다. 대학원 2학기부터 졸업 후 임용고시 합격 때까지 나의 마음을 헤아려 주시고 항상 힘이 되어 주셨던 다음 소제목에 소개되는 박경희 선생님, 한 학기 동안이었지만 세상을 조금 더 넓게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도록 제시해 주셨던 나의 조교 생활 시절 학과 교직원 선생님, 그리고 합창단 생활이다.


   지금은 연락이 뜸하지만, 이십 대까지만 해도 초등학교 동창 중 유일하게 연락이 닿았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반이었는데, 내가 불편한 모습이 보여도 그것에 개의치 않고 다른 친구들과 똑같이 대해주었다. 그러다 중고등학교 진학하면서 못 보게 되었는데, 대학생 때 지하철 환승구간에서 우연히 마주치면서 연락처를 서로 주고받은 후부터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사는 곳도 그 친구와 나는 가까워서 가끔씩 만나면서 그 친구가 활동하고 있는 합창단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게 되니 솔깃해졌다. 학부 때부터 합창곡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나로서는 합창단 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이 솟아올랐다. 그 친구의 소개로 활동하게 되었던 합창단은 <필그림쥬빌리싱어즈>라는 합창단으로 지금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합창단이다.

  

   합창단 연습은 매주 월요일 저녁에 있었는데, 거의 2년 정도 활동하다가 대학원 마지막 해인 2015년이 오기 전, 교생실습과 졸업논문 그리고 임용고시 준비로 인해 그만두었다. 나는 앞서 기재한 내용처럼 대학원 입학 전부터 갑자기 제일 친한 친구의 눈을 보면서 대화하는 것이 매우 두렵게 느껴졌던 현상을 합창단이라는 새로운 환경으로부터 극복하고 싶어졌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과 어우러져서 생활하고 적응하다 보면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씩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일말의 희망과 절실함을 가지며 매주 합창단 연습을 오갔다.


   그러기를 반년쯤 지나서부터는 합창단 연습이 있는 매주 월요일 저녁이 기다려졌고, 합창단 연습으로 힘든 것들로부터 잠시나마 해방될 수 있었다. 그리고 합창단에서 발성하는 방법과 지휘법, 좋은 명곡들을 많이 접하고 배웠다. 합창단 활동을 했던 2년 남짓한 시간은 나에게 아직도 감사한 시간들로 기억된다.

  

   내가 합창단에 입단한 그 해 겨울에 합창단 정기연주회를 하게 되었는데, 무대가 50석이든 2,000석이든 준비하는데 쏟는 애정과 열정은 나는 같다고 생각한다. 작곡가로서는 크고 작은 무대에 몇 번 서 본 적이 있지만, 노래를 부르는 합창 단원으로서 무대에 서는 것은 이때가 처음이라서 연주회를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몇 달 동안 나는 연주회 날이 하루씩 다가올수록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때로부터 반년 전만 해도 내가 갑자기 제일 친한 친구의 눈을 잘 쳐다보지 못했는데, 그로부터 반년이 지났다고 해서 천여 명의 관객들 앞에서 한 시간 반동안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는 건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하지만, 이 두려움을 나는 꼭 이겨내고 싶었다. 합창단 정기연주회 무대에 서는 것을 시작으로 나의 내면에 내재되어 있던 두려움을 하나씩 벗어던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합창단원들과 같이 안무 연습을 할 때 나의 몸이 불편해서 안무하는 동작이 부자연스럽게 보여도 연주 당일까지는 더욱 자연스러워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을 합창단 연습 가기 며칠 전부터 연습하고 또 연습해서 연습날 합창단원들한테 용기 내서 말했다. 그 말을 하고 나니 나의 부자연스러운 안무 동작들에 대한 무거운 부담감에서 조금 내려올 수 있었다.


   매일 집에서 거울을 보면서 안무 동작을 천천히 하나씩 연습한 끝에 합창단 정기연주회는 무사히 잘 끝났고, 연주를 촬영한 영상 cd를 나는 한 시간 반동안 아주 떨리는 마음으로 봤다. 영상 속에서 나의 모습은 내가 우려하고 염려했던 것처럼 엄청 불편하게 보이진 않아서 스스로 벅차고 마음 저 깊은 곳에서 뜨거운 전율이 끓어오르는 느낌은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생생하게 느껴진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잊고 있었던 일이 기억나는데, 당시 합창단 회비가 한 달에 2만 원이었다. 그런데, 합창단에서는 일하지 않고 학교만 다니는 학생한테는 회비를 받지 않는다고 해서 나는 감사하게도 한 번도 회비를 낸 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갑자기 너무 면목이 없어지고 감사하다. 대구에 길게 머무르는 기간이 온다면, 합창단 연습 시간에 맞춰서 꼭 다시 찾아뵙고 인사드려야겠다는 다짐을 부끄럽게도 이제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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