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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공장 아르바이트

Chapter Ⅲ 

   나는 대학교 4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았다. 집에서 학교까지 통학 거리가 왕복 4시간이 걸렸고, 방학이면 콩쿠르와 작곡 공모전을 비하느라 아르바이트를 할 시간이 없었다. 부모님께서는 아르바이트할 생각은 하지 말고, 그 시간에 열심히 나의 전공에 집중해서 장학금을 받는 게 아르바이트하는 것보다 더 나은 거라고 말씀하셔서 나는 4년 전체 학기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교 생활을 했다.

 

   그런데, 대학원생이 되면서부터는 아르바이트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원생인데도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나 스스로가 민망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어떻게든 아르바이트를 구해 보려고 아우성쳤다. 대학원 수업이 오전 오후 다 있을 때가 며칠 되다 보니 나의 일정에 구애받지 않는 아르바이트를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대학원 입학 전 했던 방과후 수업 월급도 점점 바닥을 향해갔지만, 학교 식당에서 점심 사 먹을 돈을(그 당시 학교식당 한 끼 비용이 2,500원 정도였다.) 부모님께 부탁드리는 게 죄송스러웠다. 오전 오후 수업이 다 있는 날 또는 오후 저녁 수업이 다 있는 날에는 학교 가기 전 집에서 미리 간단하게 도시락을 싸 갔다. 도시락이라고 거창하게 표현하기도 민망한... 조미김에 밥 한 숟가락씩 싼 걸 열 개 정도 만들어 갔다.


   그런데, 도시락을 어디서 먹어야 되는가라는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학생 식당에서 먹기엔 괜히 눈치 보이고, 화장실에서 먹는 건 너무 싫고, 그러다 생각난 곳이 음악대학 연습실이었다. 그래서 졸업할 때까지 나는 음악대학 연습실에서 조미김에 밥 한 숟가락씩 싼 도시락을 혼자서 자주 먹었다.

 

   하루는 인력시장 같은 곳에서 모집하는 하루짜리 야간 단기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게 되었다. 저녁 8시부터 아침 8시까지 12시간 동안 하는 일이었고, 삼성 스마트폰 부속 기자재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됐는데, 뜨거운 불에서 갓 나온 철판을 자르는 일이라서 조금만 일해도 몸이 너무 뜨거웠다. 철판을 자를 때 손에 힘을 많이 줘야 되는데 나는 몸의 왼쪽이 불편해서 내가 힘을 많이 주려고 해도 결과물로 나오는 게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느렸다. 이런 나를 못마땅하게 봤던 공장 남자 직원 분들이 나한테 슬금슬금 와서는 핀잔을 주곤 했지만, 그 핀잔에 상처받지 않고 지금 하는 일에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하고자 노력했다.


   그 공장 입장에서는 일의 능률이 적은 사람한테 좋은 감정이 들지 않을 것 같다는 이해가 되긴 했지만, 오로지 나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서글픈 현실이었다. 한 시간마다 핀잔을 끊임없이 받아온지 12시간이 흘러서 아침 8시가 되었고 집에 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새벽에 나한테 핀잔을 줬던 공장 남자 직원 중 한 사람이 나한테 와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결과적으로 보면 일을 적게 한 거니까 2층 높이 정도 되는 기계 안에 들어가서 쇠 파편과 쇠 찌꺼기가 쌓여있는 것을 자루에 담아 오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하려고 기계 안으로 들어갔는데, 새벽에 서서 일할 때 느껴진 뜨거움은 약과에 불과할 만큼 기계 안은 너무 뜨거웠고 숨을 쉬기 버거운 곳이었다. 그래도 해야 된다 생각하며 열심히 쇠 파편과 쇠 찌꺼기를 쓸어서 자루에 담고 있는데 갑자기 마음이 먹먹해지더니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만만치 않은 대학원 생활과 경제적 힘듦, 여러 산재되어 있는 문제들이 한꺼번에 나의 머릿속에 스쳤고, 내 얼굴은 금세 땀과 눈물, 쇠 찌꺼기에서 나온 검은 먼지들로 뒤범벅되었다. 그날 나에게 일당 10만 원은 참 눈물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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