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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2016년의 시작

Chapter Ⅲ 

    눈이 안 보이게 된 이후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것마저 두려웠던 나에게,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2016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2016년의 한 해가 마무리 되는 날까지...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하루 종일 울고 또 울었다. 눈물이 이렇게 많이 나올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다발성경화증 치료제인 인터페론 주사-레비프를 처음 맞은 다음날, 나는 제본한 졸업논문에 심사위원 교수님들서명을 받고 학교 도서관으로 제출해야 되었다. 교수님 서명을 받으러 학교로 나서려고 현관문을 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다가 갑자기 쓰러졌고, 내 몸은 계단에서 스스로 제어할 수가 없었다. 계단 층을 굴렀고, 계단에는 내 피가 군데군데 떨어져 있었다. 첫 계단을 밟으면서 갑자기 몸이 앞으로 기울더니 그때부터는 내가 제어할 수 없을 만큼 가속도가 붙어서 내 몸은 엎드려서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가는 것처럼 계단에서 미끄럼틀을 탄 격이 되고 말았다.


   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계단 위에서 쓰러졌을 때부터 계단을 다 내려와서 가속도가 멈추게 될 때까지 나는 ‘턱으로 계단 찍어 내려가면 내 이빨 부러질 수도 있는데... 내 이빨 내 이빨...’ 이런 생각만 들었다.  


   턱으로 계단을 찍어 내려가는 게 멈춰지고서는 계단과 평지에 각각 내 몸의 반씩 걸터눕게 되었고, 그 상태로 멍하게 몇 초 동안 엎드린 자세로 있다가 순간 ‘내 이빨... 괜찮은가?’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래서 바로 일어나서는 가방에서 부리나케 거울을 찾았다. 거울로 얼굴을 보니 입술 밑쪽은 터져서 피가 많이 나 있었고, 입안도 피로 가득 차 있었다. 거울을 보면서 나는 위아래로 입을 벌렸다가 다물어보면서 이빨을 확인했다. 턱으로 계단을 계속 찍어서 이미 피가 많이 나오는 상황이라 턱 주위의 통증이 시작되어 이빨이 괜찮은지 자가진단을 내리기 어려웠다. 그러다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땅에 주저앉게 되었고, 그때서야 겁이 나기 시작했다. 119에 전화를 해야 될까 하다가 본능적으로 엄마한테 먼저 전화를 했다.  


  나: 엄마 (엄마라고 말하자마자 바로 눈물이 나왔다.)

  엄마: 왜? 무슨 일이야? 울어?

  나: 나 아파트 계단 내려가려다가 계단에서 굴렀어. 그래서 입안이랑 턱이 째져서 피가 많이 나... 지금 서있지도 못하겠어서 땅바닥에 앉아있어. 어떻게 해야 될지 아무 생각이 안 나...

  엄마: 엄마한테 전화를 하면 어떡해. 119에 먼저 전화를 했어야지... 잠시만 전화 끊어봐.     


   엄마랑 전화를 끊고 나서 몇 초 뒤에 앞집에서 현관문이 열렸고, 평소 자주 왕래하며 지내 온 앞집 이모가 나를 보면서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뛰어오셨다.     


  앞집 이모: 진영아 뭐야 왜 이래. 엄마한테 전화받고 나왔어. 어떡하니...      


   너무 놀라서 아무 생각도 없이 멍하게 앉아있는 나를 앞집 이모는 따뜻하게 품에 안아주셨. 그리고 이모는 바로 119에 전화하셨다. “계단에서 사람이 굴러서 피가 많이 나고 서 있지 못하고 있어요. 사고당한 사람은 젊은 아가씨예요. 빨리 좀 와주세요.” 이모는 신고하고 다시 집으로 가더니 방석을 가지고 나와서는 내가 앉아있는 차가운 세면 바닥 위에 방석을 깔아주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구조대원들이 도착했고, 내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서 지혈해 줬고 나를 들어서 침대에 눕혀 구급차에 태웠다. 차에서 구조대원이 나에게 나이와 질병 약물복용여부 등을 물었고, 나는 어제 인터페론 주사를 맞았다고 말했다. 병원은 어디로 갔으면 좋겠냐는 물음에 나는 어제 다발성경화증을 확진받았던 병원을 알려주며 그곳으로 가 달라했다. 


   그러다 오늘 11시까지 교수님 연구실로 가서 논문 심사위원 교수님들 서명을 받으러 가야 된다는 일정이 구급차를 타고 가는 길에 생각이 났다. 나는 구급차에 누운 채로 휴대폰을 찾아서 교수님들께 전화드려서 상황을 설명했다. 다행히 교수님 서명을 받는 약속은 하루 미뤄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고 직후에는 느끼지 못했던 통증들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틀 연속으로 다발성경화증을 확진받았던 병원에 가게 될 줄은 생각지 못한 일이었지만, 어쨌든 사고가 났으니 지긋지긋한 병원 검사를 또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심한 타박상은 있지만 골절은 없고 턱이랑 입술 밑쪽이 찢어지긴 했는데 심하진 않아서 꿰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내가 계단에서 떨어지면서도 마음속으로 계속 외쳤던 이빨도 다행히 이상 없었다. 오전에 병원에 도착해서 오후 늦게 병원에서 다시 나왔고, 엄마랑 같이 집으로 가는 길에 엄마는 나한테 걱정 섞인 말을 하셨다.     


  엄마: 내가 진짜 너 때문에 못 살겠다. 어떻게 사고가 끊이질 않냐...

  나: 그래도 부러진 거 없고 크게 다치진 않았으니까 다행이지 뭐... 누구는 다치고 싶어서 다치고 아프고 싶어서 아픈 줄 알아? 내가 제일 힘들거든.     

  

   나는 그렇게 엄마 앞에서 토라진 척을 했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너무 두려운데 그 마음을 들킬까 봐 토라진 척을 한 거였는데, '엄마는 내 마음을 알기는 할까... 어떻게 연초부터 이러냐... 진짜 작년 연말부터 올해 연초까지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는구나... 올 한 해는 또 어떤 한 해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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