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 유치원에 처음 간 아이

장기 가정보육 이야기

by 아리스

외주 보육이 흔치 않았던 30여 년 전 나는 4살에 선교원에 다녔다. 그 시절의 기억은 잃어버린 퍼즐 조각처럼 흩어져 있거나 대부분을 기억하지 못한다. 친정 엄마는 내 아래로 17개월 차이 나는 동생과 나의 양육이 힘들어서 매일 반복되는 '등원 전쟁'을 치르셨다고 한다.


기저귀를 빨리 떼고 야무졌던 4살의 나는 선교원에만 가면 소변 실수를 하는 날이 잦았고 하염없이 하원할 시간 만을 기다렸다. 모든 것은 친정 엄마에게 들은 지난날의 조각이지만 그때의 감정들은 내면 깊은 곳에 존재하리라. 그 시절, 세상의 전부였던 엄마와의 이별, 잠깐이지만 왜 헤어져야 하는지도 모른 채 갔던 선교원에서 내가 얻은 것은 상실감, 두려움 같은 부정의 감정들이었다.


요즘에는 옛날과 다르게 일하는 여성들이 많아서 아이를 낳고도 '본업'을 이어간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 으레 일을 그만뒀던 여성들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쌓아 올린 커리어가 아까워서’, ‘먹고살기 빠듯해서’와 같은 이유가 대부분일 것이다. 2020년 통계자료를 참고하면 30대 후반의 여성 고용률은 59.9%, 40대 초반의 여성 고용률은 64%이다. 현대 여성들은 결혼 유무, 자녀 유무와 상관없이 일터로 향한다. 어린이집 또한 마찬가지다. 부모의 맞벌이 유무에 관계없이 돌 무렵이면 어린이집에 입학한다.


나는 계속되는 임신과 출산의 반복으로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없었다. 일명 '전업맘'으로 오랜 시간 아이와 함께 있었다.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당연한'것이라고 여겼다. 어느 날 주위를 둘러보니 주변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어린이집은 엄마가 '직장인' 유무에 관계없이 돌 무렵이면 보내는 것이 만연했다. 나는 결혼 전부터 왜인지 모르게 외주의 양육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가 강했다. 남들이야 어떻게 키우던 내가 아이를 키우게 된다면 내 자녀 만은 내 소신껏 키우고 싶었다. 생각했던 대로 아이를 키웠다. 아이가 걸을 수 있어서, 밥을 먹게 되어서, 젖을 떼서 '어린이집'에 '당연히' 가지 않았다.


아이가 5살이 되자 주변에서는 응당 유치원에 가야 한다고 했다. 나는 자문했다. 내가 직접 아이를 키워 보니 5살의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어떠한 교육도 외주의 보육도 아니었다. 엄마의 사랑이면 충분한 아이를 부러 유치원에 보내지 않았다. 주위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았다. 남들과 다른 것이 틀린 것은 아니니까.


6살이면 제법 자라서 또래 아이와의 소통을 갈망하는 것 같아 보였다. 첫째를 그 무렵 유치원에 보냈다. 아이는 유치원의 생활을 충분히 즐거워했다. 첫째를 6살에 보낸 것처럼 둘째를 6살에 유치원에 보냈다. 둘째는 첫째와 다르게 유치원 생활을 어려워했다. 유치원에 가는 날이면 도살장에 끌여가는 소와 같았다.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과 비통함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둘째를 끝내 유치원에 들여보내지 못했다. 5회 미만의 등원 횟수 끝에 나는 유치원에 '퇴원 신청서'를 제출하고 둘째와 온전한 하루를 쌓아갔다. 아이를 책망하지 않았다. 첫째가 6살에 유치원에 적응했으니 둘째도 그럴 것이라고 어림 짐작했던 나를 돌아봤다. 세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들은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다름을 인정하고, 고유의 색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내 역할임을 한번 더 상기한다.


둘째는 6살에도 또래 아이들과의 소통을 원하지 않았다. 또래와의 소통보다 엄마와의 연결이 더 중요했다. 집 안에서 세 아이들끼리 복닥거리는 일상과 놀이터에서 만나는 동네 친구들과의 교류면 충분했다. 미취학 아이에게 어떠한 교육도 시키지 않겠노라 다짐한 나로서는 '6살인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백수와도 같은 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책이 그득한 거실에서 책을 펼치곤 읽는 시늉도 해보고 서로를 보며 깔깔대며 웃는다. 아침을 먹고도 놀이는 이어진다. 장난감을 있는 그대로 꺼내 놓고 저들만의 놀이에 심취해 있다가 엄마가 읽어주는 그림책에 한동안 집중하기도 한다. 오전의 놀이터는 한산해서 타고 싶은 놀이 기구를 마음껏 즐기고 오후의 놀이터는 하원하고 나온 또래들과 뒤섞여 상호작용을 한다. 아이는 피곤해서 저녁밥을 미처 먹지 못하고 까무룩 잠들기도 한다. 일찍 잠든 탓에 내일도 새벽 기상은 이어진다.


아이가 원하는 대로 엄마와 모든 일상을 함께하며 6살의 시간들을 보냈다. 계속되는 가정 보육이 힘들지 않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힘들지만 '힘들다'는 감정에 속박되면 더 많은 힘듦을 가져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즐기려고 노력했다. 그랬더니 정말 아이들과 함께하는 순간이 즐겁고 벅찼다. 다시 오지 않을 6살 아이의 일상에 함께여서 경이로운 순간들이었다. 아이의 세상에는 아직도 엄마가 가득하다. 아이는 작지만 아이가 주는 사랑은 가슴을 파고든다. 부모의 사랑이 위대하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아이의 사랑은 그것을 능가했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 내 곁을 떠나가더라도 이 시절의 사랑을 기억하고 추억하리라. 나는 추억이 많은 부자 엄마이기 때문이다.


이전 14화이중 언어 환경 만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