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 열외자

”제 아이는 학습에서 제외시켜 주세요. “

by 아리스

즐겁게 다니던 유치원을 어느 날엔 둘째가 가기 싫어했다. 말 끝을 흐리는 아이에게 끈질기게 연유를 물어봤다. 며칠 전부터 시작된 새로운 학습이 버거웠던 모양이다. 놀이 중심 유치원이었는데 그간 학부모들의 니즈를 반영하여 한글과 수 학습에 관한 학습지가 주어졌다. 문제는 어떠한 교육도 없이 그저 '깜지'에 불과한 한글 따라 쓰기라는 것이다. 유치원에 문의했다. '학습지 과제 이전에 어떠한 한글 교육이 있었는지' 돌아오는 대답에 헛웃음이 나왔다. '매일 자연스럽게 한글을 습득하는 걸로 교육을 대체한다고...'


매일 정해진 분량의 한글 쓰기 과제를 끝내야 자유 놀이 시간이 주어졌다. 운필력이 약한 둘째는 매일 놀이 시간 극단이 되어서야 과제를 제출하니 정작 놀이 시간에는 참여할 수 없었다. 나는 소식을 듣자마자 즉시 담임교사에게 연락했다. "우리 아이는 학습에서 제외시켜 주세요."


학습 열외자를 자청하고 걱정한 부분은 단 한 가지였다. 다수의 아이들과 달리 행동하는 내 자녀가 놀림을 당해서 또 그것에 상처받는 것.


다음 날부터 내 아이는 학습에서 제외되었고, 그 시간에는 책을 읽는다고 했다. 시간이 흘러 학부모 상담 기간이 되었다. 걱정했던 부분에 대해 여쭤보니, 다들 저 학습지 푸느냐고 다른 아이들에겐 별 관심이 없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며칠 후, 학급에서 공지가 내려왔다. '한글 학습이 어려운 아이들은 따로 연락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현재 초등학교 3학년 진학을 앞둔 첫째 또한 한글 교육 없이 학교에 입학했다. 정규 교육 과정을 지도하는 교사 아래 1학년 학급 교실의 풍경은 장관이었다. 이미 한글을 익힌 아이들이 다수이니 수업이 지루하고 따분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러나 한글에 문외한인 첫째는 달랐다. 처음 배우는 우리말이 신비하고 흥미로웠다. 교사가 알려주는 그대로를 습득하고 익혔다.


첫째를 보며 내가 가지고 있던 신념의 뿌리가 더 단단해졌다. 미취학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떠한 교육도 아닌 그저 '마음껏 뛰어노는 것'이라고. 그렇다고 좋은 교육을 지도하는 교사에게 손사래를 치는 것은 아니었다. 유치원에서 둘째에게 했던 행위는 교육의 부재 속에서 보여주기식 깜지형 학습이었다. 즐거워야 할 교육의 부재가 아이에게는 버거운 과제가 되었다. 학습을 중단할 이유가 충분했다.


학습지가 싫다고 울었던 둘째는 모순적이게도 집에서 그것을 즐겁게 들춰본다. '억압'이 없어진 자유에서 하는 한글 학습지는 재미있는 모양이다. 그럼에도 곧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둘째는 한글에 문외한이다. 교육에 '억압'이 들어가는 순간 본질은 흐려지고 '흥미'가 떠난 '과업'이 되리라. 학습은커녕 아이는 한창 뛰어놀기에도 부족할 나이다.


그럼에도 매일 빼먹지 않는 것은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이다. 그림책을 읽어주는 행위 속에는 '자연스럽게 한글을 습득할 수' 있는 일말의 기대도 들어있다. 이처럼 생활 속에서 아이에게 흥미가 될만한 것들을 하나씩 펼쳐보지만 아이에게 아직 '때'는 오지 않았다고 치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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