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 스며든 시간
지난날 우연히 읽었던 어느 육아 서적 한 권에서 큰 울림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특별할 것 없었던 책인데 <부모라면 유대인처럼>이란 책을 읽고 또 읽었다. 남편은 언제부터 그렇게 책을 좋아했냐며 책을 들고 있는 나를 어색해했다. 생각해 보니 지나온 세월 동안 기억에 남는 책은커녕 읽은 책을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아이가 어렸을 때 누구나 그러하듯 당시 나의 관심은 아이에게로 쏠렸다. 평생 읽지 않았던 책을 들춰볼 만큼. 아이와 노닐다 근처에 서점이 있으면 꼭 들렸다. 육아 선배들의 추천 도서나 육아 베스트셀러를 사서 읽었다. 먼저 아이를 키워본 저자들에게서 조언을 듣고 위로를 얻었다. 육아 서적은 때론 잘못된 육아 방침을 깨워주고 바른 길로 인도해 줬다. 처음이라 어설픈 엄마 역할을 좀 더 잘해보고자 책에서 정답을 찾아 헤맸던 것이다.
100권쯤 읽다 보니 이 책이 저 책 같고 저책이 이 책 같았다. 어떤 책은 너무 뾰족했고, 어떤 책은 너무 둥글둥글했다. 또 돈에 눈이 멀어서 활자를 채우기 급급한 책도 있었다. 차츰 장르를 옮겨 갔다. 마침 아이들도 꽤 자랐고 그간 쌓아온 내공이 육아 서적의 저자들과 견줄만하다는 작은 거만함도 생겼다.
혹자가 좋다고 한 책이 나에게 꼭 좋지만은 않았다. 별다른 감흥 없는 베스트셀러도 있었다. 연예인이 입었던 옷을 일반인이 입을 때 전혀 다른 핏을 선사하는 것처럼. 나의 입맛과 그들의 입맛이 다른 것처럼. 내 입맛에 맞는 책을 골라야 했다. 책이 빼곡한 서가에 들릴 때면 천천히 책기둥을 훑어본다. 도심의 건물처럼 빼곡한 책들은 저들만의 이야기를 꼭꼭 숨긴 채 애써 침착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중 어떤 책들은 지나가는 나를 붙잡아 뒤를 돌아보게 만든다. 세월감이 묻어 있는 책에도 빛이 나는 법이다. 그날 영롱한 자태를 뽐내던 책은 저를 읽어달라고 많은 책들 사이에서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얼리어댑터와 한참 거리가 있는 나에게 남편은 종종 최신식 기계를 선물해 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IT업계 종사하고 있어서 기기에 관심이 다분하다. 아날로그 감성을 좋아하던 나의 손에 어느 날 전자책을 안겨줬다. 꽃다발을 받고 싶었던 몇 년 전 생일에 받은 딱딱하고 차가운 전자책은 실망감이 컸었다. 나를 몰라도 한참 모른다고 생각했다.
애물단지 신세가 될 것 같던 전자책을 아이들이 자는 밤에 한 번 들춰봤다. 편협된 짧은 생각과 다르게 전자책은 혁명에 가까웠다. 어쩌면 나에게 최적화된 물건이었다. 세 아이들과 얽히고설켜서 잠든 밤, 이불을 박차고 나가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세 명중 누구 하나는 귀신 같이 엄마가 없어졌다는 것을 알고 깨버리니 침대에서 긴긴밤을 보내는 일상이었다. 주로 스마트폰을 뒤적거리던 일상에서 전자책을 만난 후로 독서에 꽃이 피게 되었다. 전자책은 책이 아니라고 무시하는 소수의 의견도 있지만 그건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들을 재우면서 어떠한 조명도 키지 않은 채 한 손으로 읽는 책이라니,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아이들이 책을 찢거나 더럽힐 염려도 없었다. 책을 읽다가 종이책이 그리우면 이따금 종이책도 읽었다. 전자책은 나에게 편견을 깨워준 신문물이었다.
지난해 그렇게 읽은 책이 100권을 넘어섰다. 혹자는 시간 많은 아줌마이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의 독서 비중은 잠자는 시간을 쪼개어 전 후로 이루어졌다. 세 아이를 키우는 것은 생각보다 엄마의 개인 시간이 없다. 책이 읽고 싶어서 잠못든 밤, 졸린 눈을 비비며 읽었고 책이 읽고 싶어서 매일 오전 4시에 알람을 맞춰 뒀다. 그렇게 시간을 쪼개어 읽어나가니 마음이 단단하면서 부드러워졌다.
우리 집에는 스마트폰이나 TV 대신 책을 읽는 엄마를 보고 자라는 아이들이 있다. 한글을 깨친 첫째는 수시로 책을 꺼내 앉은자리에서 수십 권을 읽는다. 한글을 모르는 둘째와 셋째는 그림책 속의 그림들을 보며 지난밤 엄마가 읽어준 이야기를 꺼내어 책장을 넘긴다. 아이를 잘 키워보고 싶어서 읽었던 책 한 권의 시너지가 이렇게 확장될 줄이야. 일 년에 책 한 권 읽지 않았던 내가 감히 독서가를 지향하고 내 자녀들은 나를 따라서 책을 읽는다. 아이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었던 나의 바람이 현실이 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