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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스 Sep 17. 2023

재미없는 엄마

   잦은 비 예보로 더 머물다 갈 더위마저 씻겨간 듯하다. 물놀이 생각이 안나는 걸 보니, 매미들의 합창 소리가 잠잠한 것을 보니, 여름이 다 지나갔나 보다. 그렇게 시끄럽게 울어대던 매미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현관문을 통해서 새끼를 밴 암컷 모기들이 수혈을 하기 위해 들어오지만 매가리가 없어 금방 손에 잡힌다. 모기도 기운이 없어지니 이제 무섭지도 싫지도 않다. 되려 움직임이 굼뜬 모기의 일생이 애잔하여 살포시 잡아서 창 밖으로 보낸다.


 한참 전부터 잘 때는 에어컨을 켜지 않았으나, 어제는 밤바람이 선풍기 틀어놓은 듯 시원해서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잤다. 찌르르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에 마치 펜션에 놀러 온 듯한 기분도 들었다. 우리 집은 저층이라 문을 열어 놓으면 집 안에 벌레가 있는 듯 곤충 지저귀는 소리가 난다.


  개학한 지 이틀 째에도 3호는 유치원에 가지 않겠단다. 첫날은 교실 앞에서 40분가량을 쭈그려 앉아 기다렸다. 다리도 저리고, 교직원들 눈치도 보이지만 무엇보다 3호의 담임교사와 학급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 나를 불편하게 했다. 결국 3호는 끝까지 가지 않겠다고 했고, 나는 그런 3호를 밀어 넣거나 의무적으로 보내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어쩌면 3호는 그래서 안 가는 것일 테다.

그래도 상관없다.

 1학기 동안 등원을 도와주며 더욱 그렇게 느꼈다. 유치원은 대변처리도 혼자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의무적으로 가면서 대단한 교육을 받을 곳은 못 된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내 자녀만은 “스스로 가고 싶을 때”, “즐거울 때” 갔으면 좋겠다. 3호의 오빠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 시기가 1호는 6세였고, 2호는 7세였다. 유치원을 비하하는 발언은 아니다.

그저 내 아이가 작더라도
“재미의 한 조각“을 맛보았을 때
보내고 싶은 것뿐이다.

  어쩌면 아이나 엄마인 나나 아주 팔자 좋은 상황일 수도 있겠다. 다수는 선택지가 없어서 보내는 것일 테니까. 그렇다고 우리 가정이 재정적으로 아주 여유있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나는 긴 육아로 “경단녀” 중이어서 그런 팔자 좋은 선택지를 늘어놓았을 수도 있겠다.

 

그래도 2학기 등원 거부 이틀 째에 담임교사에게 언급한 퇴원은 좀 섣불렀다. 난 나름대로 신중에 신중을 가하여 더는 시간을 끌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이야기를 꺼낸 것이나 삼일 째 되는 날, 신나게 유치원에 다녀온 3호를 보니 참으로 민망할 따름이다. 한편으론 고맙고, 기특하기도 하고….


 유치원 등원을 하지 않은 날에는 그래도 즐거울 거리를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싶었다. 문득 등원하지 않은 3호와 라떼 산책을 시키다가, 3호의 그네를 밀어주다가, 자전거를 태워주다가 한번 더 느꼈다.

“어머니,
집에서 너무 재미있게 놀아주지 마세요.”

‘그래, 이러니 안 가지, 내가 유치원 안 보내고 뭐 하는 짓인가..’ 집에서는 3호에게 단언했다. “엄마도 일해야 하니까 30분 동안은 엄마를 찾을 수 없어!” 몇 분도 채 안 돼서 곁에 있는 3호를 뿌리치지 못하고 또 역할놀이에 빠져있는 나를 발견한다.


 당분간 평일에는 재미없는 엄마 역할극에 집중해야겠다. 3호의 성공적인 원 생활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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