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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스 Sep 15. 2023

숨통

9년 만의 자유부인이란,

 예상과 다른 시나리오에 계획에 없었던 내 시간을 매일 선물 받는다. 3호가 요 며칠 유치원이 재미있고 또 가고 싶다는 말까지 하는 걸 보니 분명히 교사의 태도가 무언가 바뀐 것으로 어림짐작했다. 퇴원에 대해 언급하기 전후로 3호가 유치원에 대한 흥미도가 가파른 상향세를 띄고 있다. 교사에게 퇴원신청서를 언급하자마자 등원하는 3호를 보고는 신중히 생각하고 얘기했으나 섣불렀다 싶었다. 며칠 지나고 보니, 현재 3호가 유치원에 대한 흥미도가 불어난 것은 내가 퇴원을 언급한 이후로 바뀐 교사의 태도라는 확신이 든다. 교사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것은 교사의 자질이 의심된다거나 그 어떤 부정의 것도 없다. 그녀는 3호의 안정적인 원 생활을 희구할 뿐일 테다. 그녀 입장에서 퇴원은 최후의 보루로 비극적 결말일 테니까.


 계획에 없었던 시간이라고 허투루 쓰지 않았다. 오랜 기간 동안 내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더없이 감사하고 소중한 시간들이다. 매일 생겨날지도 모르는 오전의 4시간을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살 것이라 다짐했던 지난날이 떠오른다.


 육아가 지치고 힘들 때도 기관에 보내고 싶진 않았다. 그저 언젠간 오게 될 오늘과 같은 공백 시간들에 무엇을 할지 상상만으로 행복했다. 선택할 수 없어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부모도 있겠지만 요즈음 문화 자체가 ‘엄마의 숨통’을 위해 많이들 보낸다. 나는 아이가 스스로 원할 때, 즐거울 때 가고자 했기에 그 시기가 늦어졌을 뿐이다. 육아에 헌신할 당시에는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내 시간이 급작스레 생겨나 마음이 바쁘다.


 계획을 세우다 보니 요가는 당분간 하지 못할 것 같다. 지난 1학기 때에는 우선순위를 요가에 두었기에 간헐적으로 생기는 내 시간에 라떼 산책과 요가 그리고 텃밭에 다녀오면 하원 시간이었다. 가을은 무엇이든 실행해 봐야겠다. 배워도 보고 뭐든 부딪혀 보겠다. 엄마가 아닌 또 다른 타이틀을 위해서….


 오늘도 서둘러 나갔다. 집에 있으면 무언가 집안일의 노예가 되어버릴 것 같았다. 꼭 해야 할 집안일이지만 조금 미룬다고 달라지지 않을 일이고, 집안일만 하기에 이 시간은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도서관에 가고 싶었으나 스타벅스 기프티콘이 계속 들어온다. 기프티콘이 소멸될 때까지는 도서관과 카페 중 행선지를 정할 수 있어서 좋겠다. 마침 대출한 책도 한참 읽어야 했기에 서가에는 갈 필요가 없었다. 노트북을 켰다. 스마트폰에 익숙해져 상품업로드도 스마트폰 하나로 문제없는 일상에 노트북은 좀 어색했다. 그래도 선물해 준 사람의 성의를 보아서 의식적으로 사용해야겠다 싶었다. Pc버전의 스토어팜이나 블로그는 세부항목이 많아져 더 어렵게 느껴진다. 익숙하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친해질 때까지 많이 만져봐야겠다.



그러고 보니, 9년 만이다. 1호의 출산부터 3호의 유치원 입학까지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세 엄마인 나라서 나에겐 없을 것 같았던 시간이 드디어 온 것이다. 분초를 다투며 이 시간을 잘 활용하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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