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 혁명 시대의 역행자
중독은 대개 그런 물질보다는 환경과 상황에서 비롯된다. 스티브잡스는 이를 간파했다. 그가 자기 자녀들에게 아이패드를 금지시킨 것은 중독 물질과는 다른 온갖 장점을 가진 그 기기의 매력에 아이들이 취약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잡스를 비롯한 테크놀로지 전문가들이 판매하는, 거부할 수 없도록 고안된 도구가 사용자들을 무차별적으로 빠져들게 만들 것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_<멈추지 못하는 사람들> 중
바글대는 식당에 가도 이제는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가끔 칭얼대거나 떼쓰는 아이들이 있지만 이내 아이들의 손에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가 쥐어진다. 언제 울었냐는 듯 아이들은 작은 화면 속 애니메이션에 집중한다. 빠르면 돌 전부터 보급화 되는 유튜브는 특히 우는 아이들에게 만병통치약이다. 고사리 손에 쥐어진 작은 화면은 식당뿐 아니라, 백화점을 활보하는 유모차 안에서도, 동물원에 나들이 나온 유모차 안에서도, 신나는 놀이공원에 놀러 온 유모차 안에서도, 등하교하는 아이들 손에서도, 놀이터 곳곳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가정마다 문화가 다르다. 우리 집은 우리 집만의 엄격한 규율이 있다. 아이들이 깨어 있을 때 부모인 나와 남편은 TV나 스마트폰 금지이다. 물론, 사진을 찍거나 전화기의 용무까지는 허용한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는 오로지 아이들에게 집중하고 싶었고,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혼수로 샀던 55인치 TV는 1호가 두 돌 무렵, 거실 벽에서 걷어냈다. 꺼진 TV화면의 검은 프레임만 보고만 있어도 그 작은 아이는 중독성이 강한 애니메이션을 보고 싶어 했고, 한 번 틀어주면 끄는 것은 더 힘들었다. 아이에게 제한 시간을 주면서 충분히 교육시킬 수 있었지만 아이가 TV 보는 그 시간이 내게 너무 달콤했다. 끊임없이 같이 놀아야 하고, 치워도 끝이 없는 치다꺼리는 아이가 TV를 보는 순간 마법처럼 사라졌고, 그 시간은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다. 육아가 힘이 들 때면 '오늘은 왜 TV 틀어달라고 안 하지', 'TV나 봤으면 좋겠다', '그냥 TV나 틀어줄까'와 같은 생각에 사로잡혔다. 한두 번 틀어주던 TV는 그 빈도수가 늘어났고, 1회의 시청 시간 또한 계속해서 늘어났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었다. 결단을 내린 다음 날, 거실 벽에서 TV를 걷어냈다. 마침 그림책이 둘 곳이 없어서 거실의 양 옆을 책으로 빼곡하게 채워갔다.
외식은 버거웠다. 아이들이 각 1,3,5살 무렵 했던 외식은 "돈 주고 애들 뒤 치다꺼리 한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힘들었다. 아이가 둘 일 때만 해도 매주 하던 외식을 끊었다. 집에서 밥을 먹으니, 아이들은 밥을 먹고 난 뒤 제 알아서 장난감을 꺼내 논다. 시끄럽게 놀아도 별 상관이 없었다. 외식을 끊었다고 얘기했지만, 아이들은 자라나고 외식 문화가 발달된 요즈음 외식을 아주 안 하기란 어려운 것이었다. 우리도 그랬다. 한동안 끊었던 외식을 아이들이 좀 컸다고 점차 늘려 갔다. 외식을 할 때면 우리 부부는 교대로 밥을 먹었다. 식당에 가면 "아이 3명에 어른 2명이에요"하고 4인 테이블이나 6인 테이블에 앉았지만, 늘 나 혼자서 밥을 먹었다. 내가 식사를 끝내면 식당 주변에서 아이들과 놀던 남편이 입장한다. 남편은 밥을 먹고, 나는 아이 셋을 먹인다. 이렇게 어렵게 식사를 하면서도 우리는 단 한 번도 유튜브 영상을 보여주지 않았다. "딱 한 번인데 어때"라는 유혹에 넘어갈 수도 있었으나, 그 유혹에 입문함과 동시에 중독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은 난 잘 알고 있었다. 아이들이 유튜브에 중독되는 것 보다 내가 그 달콤한 시간에 중독될 것 같았다. 교대로라도 식사를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집 안은 좀 심심하게 생겼다. 거실의 양쪽 벽 면에는 5칸에서 6칸짜리 책장들이 줄지어 서 있고, 그 안에는 그림책들이 빼곡하다. 아이들은 심심할 때 책을 본다. 멍하니 책기둥을 바라보다 책을 듬성듬성 꺼내 읽고, 책을 읽고 있는 형제자매를 보고 따라서 꺼내 읽는다. 책으로 책탑을 쌓아가며 놀다가 읽기도 하고, 책이 재미있어서 읽기도 한다. TV를 없앤 직후 몇 날은 힘들었으나, 지금 거실에서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이루 말할 수 없이 감사하고 벅차다.
영상물을 아주 끊은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영어로 된 애니메이션을 자막 없이 시청한다. 영어 애니메이션을 시청한 지 5년 남짓 되었다. 아이들은 영어로 된 애니메이션을 아주 흥미롭게 보고, 자연히 영어를 습득한다. 좋은 습관이 형성되었다.
이제 아이들은 5,7,9세(제도가 개편되었으니 4,6,8세라고 해야 하나..)이지만 여전하다. 달라진 점은 있다. 처음 영어 영상물은 DVD였고, 넷플릭스를 꽤 오랫동안 시청해 왔다. 최근에는 유튜브로 보기도 한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된 1호는 이제야 유튜브에 입문했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아닌 TV로 시청하며 여전히 영어 영상물 중에서 시청할 수 있다. 물론, 초등학교 2학년이지만 1호는 아직 스마트폰이 없다.
당신의 자녀만 스마트폰이 없고 소설미디어에 수시로 접근하지 못한다면 이는 잘한 조처다. 아이는 굳건한 자아의식을 발달시킬 것이다.
_<우리 아이 스마트폰 처방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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