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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스 Sep 21. 2023

유튜브 문맹아

4차 산업 혁명 시대의 역행자

 중독은 대개 그런 물질보다는 환경과 상황에서 비롯된다. 스티브잡스는 이를 간파했다. 그가 자기 자녀들에게 아이패드를 금지시킨 것은 중독 물질과는 다른 온갖 장점을 가진 그 기기의 매력에 아이들이 취약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잡스를 비롯한 테크놀로지 전문가들이 판매하는, 거부할 수 없도록 고안된 도구가 사용자들을 무차별적으로 빠져들게 만들 것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_<멈추지 못하는 사람들> 중


 바글대는 식당에 가도 이제는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가끔 칭얼대거나 떼쓰는 아이들이 있지만 이내 아이들의 손에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가 쥐어진다. 언제 울었냐는 듯 아이들은 작은 화면 속 애니메이션에 집중한다. 빠르면 돌 전부터 보급화 되는 유튜브는 특히 우는 아이들에게 만병통치약이다. 고사리 손에 쥐어진 작은 화면은 식당뿐 아니라, 백화점을 활보하는 유모차 안에서도, 동물원에 나들이 나온 유모차 안에서도, 신나는 놀이공원에 놀러 온 유모차 안에서도, 등하교하는 아이들 손에서도, 놀이터 곳곳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가정마다 문화가 다르다. 우리 집은 우리 집만의 엄격한 규율이 있다. 아이들이 깨어 있을 때 부모인 나와 남편은 TV나 스마트폰 금지이다. 물론, 사진을 찍거나 전화기의 용무까지는 허용한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는 오로지 아이들에게 집중하고 싶었고,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혼수로 샀던 55인치 TV는 1호가 두 돌 무렵, 거실 벽에서 걷어냈다. 꺼진 TV화면의 검은 프레임만 보고만 있어도 그 작은 아이는 중독성이 강한 애니메이션을 보고 싶어 했고, 한 번 틀어주면 끄는 것은 더 힘들었다. 아이에게 제한 시간을 주면서 충분히 교육시킬 수 있었지만 아이가 TV 보는 그 시간이 내게 너무 달콤했다. 끊임없이 같이 놀아야 하고, 치워도 끝이 없는 치다꺼리는 아이가 TV를 보는 순간 마법처럼 사라졌고, 그 시간은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다. 육아가 힘이 들 때면 '오늘은 왜 TV 틀어달라고 안 하지', 'TV나 봤으면 좋겠다', '그냥 TV나 틀어줄까'와 같은 생각에 사로잡혔다. 한두 번 틀어주던 TV는 그 빈도수가 늘어났고, 1회의 시청 시간 또한 계속해서 늘어났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었다. 결단을 내린 다음 날, 거실 벽에서 TV를 걷어냈다. 마침 그림책이 둘 곳이 없어서 거실의 양 옆을 책으로 빼곡하게 채워갔다.


 외식은 버거웠다. 아이들이 각 1,3,5살 무렵 했던 외식은 "돈 주고 애들 뒤 치다꺼리 한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힘들었다. 아이가 둘 일 때만 해도 매주 하던 외식을 끊었다. 집에서 밥을 먹으니, 아이들은 밥을 먹고 난 뒤 제 알아서 장난감을 꺼내 논다. 시끄럽게 놀아도 별 상관이 없었다. 외식을 끊었다고 얘기했지만, 아이들은 자라나고 외식 문화가 발달된 요즈음 외식을 아주 안 하기란 어려운 것이었다. 우리도 그랬다. 한동안 끊었던 외식을 아이들이 좀 컸다고 점차 늘려 갔다. 외식을 할 때면 우리 부부는 교대로 밥을 먹었다. 식당에 가면 "아이 3명에 어른 2명이에요"하고 4인 테이블이나 6인 테이블에 앉았지만, 늘 나 혼자서 밥을 먹었다. 내가 식사를 끝내면 식당 주변에서 아이들과 놀던 남편이 입장한다. 남편은 밥을 먹고, 나는 아이 셋을 먹인다. 이렇게 어렵게 식사를 하면서도 우리는 단 한 번도 유튜브 영상을 보여주지 않았다. "딱 한 번인데 어때"라는 유혹에 넘어갈 수도 있었으나, 그 유혹에 입문함과 동시에 중독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은 난 잘 알고 있었다. 아이들이 유튜브에 중독되는 것 보다 내가 그 달콤한 시간에 중독될 것 같았다. 교대로라도 식사를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집 안은 좀 심심하게 생겼다. 거실의 양쪽 벽 면에는 5칸에서 6칸짜리 책장들이 줄지어 서 있고, 그 안에는 그림책들이 빼곡하다. 아이들은 심심할 때 책을 본다. 멍하니 책기둥을 바라보다 책을 듬성듬성 꺼내 읽고, 책을 읽고 있는 형제자매를 보고 따라서 꺼내 읽는다. 책으로 책탑을 쌓아가며 놀다가 읽기도 하고, 책이 재미있어서 읽기도 한다. TV를 없앤 직후 몇 날은 힘들었으나,  지금 거실에서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이루 말할 수 없이 감사하고 벅차다.


 영상물을 아주 끊은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영어로 된 애니메이션을 자막 없이 시청한다. 영어 애니메이션을 시청한 지 5년 남짓 되었다. 아이들은 영어로 된 애니메이션을 아주 흥미롭게 보고, 자연히 영어를 습득한다. 좋은 습관이 형성되었다.


 이제 아이들은 5,7,9세(제도가 개편되었으니 4,6,8세라고 해야 하나..)이지만 여전하다. 달라진 점은 있다. 처음 영어 영상물은 DVD였고, 넷플릭스를 꽤 오랫동안 시청해 왔다. 최근에는 유튜브로 보기도 한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된 1호는 이제야 유튜브에 입문했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아닌 TV로 시청하며 여전히 영어 영상물 중에서 시청할 수 있다. 물론, 초등학교 2학년이지만 1호는 아직 스마트폰이 없다.


당신의 자녀만 스마트폰이 없고 소설미디어에 수시로 접근하지 못한다면 이는 잘한 조처다. 아이는 굳건한 자아의식을 발달시킬 것이다.
_<우리 아이 스마트폰 처방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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