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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스 Sep 14. 2023

학습 열외자

우리 아이는 학습을 제외시켜 주세요.



 유치원에 잘 다니던 2호가 오늘 아침에는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애걸한다. 이유인즉슨, 원내에서 하는 한글과 수의 학습지가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하루 할당량을 마쳐야 자유 놀이에 참여할 수 있는데, 매번 2호가 가장 마지막까지 학습지와 고군분투하고 있었나 보다. 나는 주저 없이 담임교사에게 2호의 학습지 학습을 제외시켜 달라고 부탁했고, 그렇게 2호는 문제없이 등원했다. 2호는 오늘부터 학습지를 푸는 시간에는 열외자로, 책 읽기를 한다고 했다. 하원 후 2호에게 어땠는지 물었다. 2호는 학습지 과제가 없어져 유치원이 재미있다고, 학습지 안 한다고 좋다고 했다. 그리곤 집에 와서 그렇게 싫어하던 학습지를 “스스로” 꺼내 “재미있게”풀어나간다. 어느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데 말이다.


 2호는 아직 7살이다.(제도가 개편되었으니 6살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부러 한글도 알려주지 않았다. 한글을 알게 된 후로는 글자들을 보느라 우뇌 회전이 느려진다고 한다. 이에 근거하여 한글학습은 최대한 늦게 알려주려고 하는데, 원내에서는 학기 초부터 한글 학습을 시작했다. 초기에 2호는 새로운 환경과 교육에 흥미를 가졌기에 지켜보며 응원해 줬다.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학습물은 “의무”적으로 변형되었고, 2호는 그런 학습을 힘들어했다.


 또한 유치원학습은 배움은 빠진 깜지와 같은 형태였다. 배움의 부제 속에서 아이가 배우는 것은 한글 베껴 쓰기, 한글 베껴 그리기였을 것이다.


  배움의 열외자를 자처하곤,
잠시 스치는 생각은 있었다.
학교 가서도 열외자 반열에 올릴 것인가.
아이가 싫어하면 뭐든 다 제외시켜 주는 것이
맞는 교육법인가.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아직은 아이들이 스스로 찾을 때 그리고 습득하게끔 교육을 이끄는 것이 현재로선 중요하다고 판단한다. 원내에서 스트레스였던 학습지가 집에 오니 즐거운 놀이 시간이 되었던 것처럼 아직 아이에게 강요하는 교육은 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학교 가기 전에 한글을 알아야 한다고들 하지만, 문맹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한 1호는 1학년 교실에서 배우는 한글을 재미있어했다. 예습을 열심히 해서 한글을 마스터한 아이들은 교과과정이 복습이었으니 “지루하고 재미없는” 수업이었다고도 한다.


 어찌 됐든 2호가 유치원에 다시 흥미를 가져서 다행이고, 2호의 담임교사가 열외자로 인정해 줘서 감사하다.


 지난해 받아쓰기 시험 및 과제로 초등학교 1학년 과정을 힘들어했던 1호도 떠오른다. 2학년 학교 생활을 지난해보다 더 재미있게 하는 것으로 짐작하건대 올해 폐지된 받아쓰기가 주요인이 아닐까 싶다.


 주입식 교육은 끝까지 지양하고 싶다.

(아이들이 학령기가 올라가고, 경쟁구도에 있게 되면 내 교육관도 바뀌게 될까 봐 현재로선 그것이 가장 염려스럽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배우는 행위를 표현할 때나 그 과정을 거쳐 획득한 그 ‘무엇’을 일컬을 때 ‘앎’이라는 표현을 쓴다. 어떤 경우든 앎은 그 앎의 행위에 참여하는 사람의 삶과 연결되어야 교육적 의미를 지니며, 그 사람의 삶의 성장을 통해 앎은 자기 존재 이유를 실현한다.

앎은 바로 이 ‘깨짐-깨우침’의 선순환적 반복 과정에 개입하면서 우리 삶이 성장한다.
_<존재가 존재에 이르는 길 : 교육>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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