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리스 Sep 15. 2023

순간의 감정들

 아이는 예쁘고 사랑스럽고 자고 나도 시들지 않는, 이 세상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아름다운 꽃이다. 아이와 함께 산다는 것은 최고의 축복이다. 아이는 엄마 품에 안겨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는다. 엄마를 온전히 믿는다. 우리가 살면서 이렇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경우가 얼마나 있는가. 내가 아이를 낳아 주었기에 그 아이도 나를 이렇게 믿어 주는 것이다. 그런 아이와 함께 사는데 힘든 것도 좀 감내해야지 하고 나는 마음먹었다. 손수건 하나를 사도 값을 치르는데 아이의 이런 사랑을 받으면서 대가를 치르지 않을 수는 없었다.

나는 또한 아이와 지내면서 사소한 것들에 고마워했다. 아이의 살 냄새, 웃음소리, 짧은 젖니, 앞니 빠진 갈갈이를 대하는 기쁨도 컸 다. ‘엄마’ 라고 불러 주는 아이가 있어 그런 복을 누렸다. 더 무얼 바라랴. 날마다 기쁘게 살았더니 아이들이 잘 자라 주었다.

_<엄마학교> 중




아이들이 좀 컸다고, 내 시간을 챙기려고 했다. 잘 놀고 있는 것 같을 때마다 책을 읽으려고 했고 아이들은 한 문단을 읽기도 전에 꼭 크고 작은 소란을 피웠다.  처음에 드는 생각은 ‘책 한 장 읽을 시간도 안 주는구나, 너무하다.‘ 였다. 내 시간을 단 5분이라도 확보하려고 아이들에게 경고 아닌 경고를 하고 책을 읽어 내려가는데 마음이 영 불편하다. 아차 싶었다. 당장 책을 내려놓고 아이들과 함께 놀았다. 서로 엉켜 붙어 싸우던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맑은 미소만 보이며 잘도 논다. 더없이 예쁘다. 내 시간에 대한 목마른 갈증은 아이들이 자는 새벽 운동으로 대체했다. 한결 기분이 괜찮았다.


 책을 읽고 싶었던 욕구가 치밀었을 때 올라왔던 순간의 감정은 부정의 것이었다. “아직도 육아 힘들구나”, “내가 잘못 키우고 있나”, “5분도 쉴 수가 없다니”, “왜 나만 힘든 것 같지”…. 이런 부정의 감정들은 사실, 아이들과 일상을 보내며 자주 올라온다. 지난주 미술관에 갔을 때는 부정의 감정이 수두룩 올라왔었다. 조용히 걸어 다니라고 신신당부를 하는 엄마 앞에서 팔을 크게 휘저으며 희극스럽게 걸어 다니는 2호가 눈에 거슬렸다. 미술관 안에서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3호에게도 수도 없이 경고 메시지를 건네주며 “힘들다” 감정에 속박되었다. 아이들 탓을 하다가 전시 관람을 마치고 나오자 미술관에 데려간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때가 아닌 것을, 내 욕심에 준비가 안된 아이들을 어려운 공간에 집어넣어 두고 조용히 하라고, 뛰지 말라고 어려운 미션을 준 내가 잘못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편안했다.






 아이들은 매 순간 자라나며 보이지 않는 성장을 키워나간다. 점점 엄마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어설펐던 모양새가 제법 능숙해진다. 작년까진 많이 안아줘야 했던 3호가 이제는 오빠들과 어우러져 잘 뛰어논다. 스스로 화장실에 가 볼일을 볼 줄도 알고, 혼자 방 한구석에서 역할 놀이에 심취해 있기도 한다.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갈 2호는 대변 뒤처리(?)만 빼면 거의 엄마의 손길 없이 모든 일에 능숙하다. 1호는 제법 그림책을 읽어나가며 엄마의 말동무가 되어준다.

아이들이 자라나는 만큼,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는 만큼,
더는 보여주지 않는
그 시절 어설픈 행동들은
아련하게 그리워진다.

혀 짧은 말투, 짜리 몽땅한 팔다리에서 나오는 귀여운 몸짓, 향긋한 아기 냄새, 배만 뽈록 튀어나온 숨 막히는 몸매, 어설퍼서 귀여웠던 그 모든 행동들이 다 사랑스러웠고 그립다.


 그리고 행복하다.

아직도 세상에서 제일 최고는 엄마라서, 그게 나여서 너무 기쁘고 영광이다. 언젠간 친구가 제일이라며 엄마 품에서 벗어날 테니, 지금 이 시간이 유한하기에 더 값지고 소중하다. 이 행복을 마음껏 누려야겠다.



이전 09화 숨통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