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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스 Sep 26. 2023

이름이 뭐예요?

엄마도 이름이 있었다.

  우리는 평범한 것들과 사람에 빠져야 한다. 무한한 인내심을 가지고 우리의 삶을 지지해 주는 것들과. 평범한 사물들의 미덕은 얼마나 융숭한가. 입어 줄 때까지 옷걸이에 걸려 있기를 마다하지 않는 바지, 더러운 발도 묵묵히 받아들이는 양말, 어떤 입술에도 아부하는 숟가락의 매끄러움, 밤새 앉아 울어도 품어 주는 의자, 진짜 얼굴을 감추는 행위를 묵인하는 거울의 너그러움.... 그것은 사랑이다, 그렇지 않은가?
_<시로 납치하다> 중


 첫 아이를 출산함과 동시에 나는 이름대신 불리는 "00 엄마"라는 명칭이 그렇게도 어색했었다. 나에게 엄마는 우리 엄마, 60대의 건강하지만 할머니로 가는 중년 단계의 여성이라고 어림잡았나 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가 내 자녀의 엄마라는 사실은 불변하지 않을 테고, 계속 듣다 보니 그 '00 엄마'라는 명칭도 익숙해져 갔다. '00 엄마'라고 불린 지 9년 즈음되었나 보다. 이제는 내 이름이 잊혀간다. 내 이름을 궁금해하는 사람도 없거니와 불리지도 않는다.

친정엄마나 남편이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한
내 이름은 이미 잊힌 존재였다.

사람과의 교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한창 뛰어놀 나이의 아이들이 세 명이니, 매일 같이 놀이터에서 만나는 아이의 친구 엄마들이 있었다. 내 성격 탓인 건지, 나는 그녀들과 아이의 발달단계 그 이상 또는 그 이하의 대화를 주고받지 않았다. 내가 첫 출산이 이른 편이라 놀이터의 그녀들은 나보다는 대개 나이가 많았다. "00 엄마"라고 부르게 되면 뭔가 예의에 어긋난다는 느낌에 나는 거의 그녀들을 부르지 않거나, "00 어머니"라고 불렀다. 그녀들도 당연히 나를 "00 엄마"라고 불렀으며 매일 만나는 그녀들과의 대화는 그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도 그녀들이 전부였다.


 어느 날이었다.  1호와 몇 해 전 같은 반 학부모께서 나에게 다가와 질문을 건넨다.

 “00 엄마는 이름이 뭐예요?”

그 간단한 질문 하나가 내 마음을 파고들었다. 내 귀에서 맴도는 그 질문이 나를 감격스럽게 했다. 내 이름 세 글자를 말하는데 그렇게 굼뜨기는 처음이었고, 내가 내 입으로 내 이름을 말하는 것이 그렇게 어색할 수 없었다. 9년 만에 불리는 내 이름을 그간 잊고 살았던 것조차 잊고 지냈던 세월이었다. 그녀는 내 이름을 물어본 날부터 나에게 "00 엄마"가 아닌, "00 씨"라고 내 이름을 불러주신다. 나도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00 어머님"이 아닌, "00 언니"라고 불러보았다.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맞다. 나도 내 이름이 있었고, 나도 좋아하는 색깔, 좋아하는 날씨, 내가 좋아하는 고유의 것이 있었다는 것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를 위해서도 시간을 조금 할애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출산과 동시에 내 시계는 오로지 아이들에게 맞춰져 있었다. 희생이나 헌신이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열정을 쏟았다. 세 명의 아이들과 뒤엉켜 꿈나라를 보내고 난 뒤, 아이들의 아침 식사를 차려주고 설거지를 했다. 집을 조금 정리하고 나면 점심을 준비해야 했고, 점심을 먹고 치우고 나면 아이들과 신나게 놀 시간이었다. 신나게 놀다가 간식도 때 맞춰 차려줘야 했고, 간식을 먹고 나면 저녁을 준비해서 먹이고 치우고 아이들을 씻겨야 했다. 아이들을 씻기고 나도 씻고 나서 책 몇 권 읽어주면 다시 꿈나라로 갈 시간이었다. 몇 해 전만 해도 3호에게 젖을 물려가며 1,2호 밥을 먹이는 날도 더러 있었다. 3호를 등에 짊어지고 1,2호를 씻기는 풍경도 잦았다. 외출하고 돌아온 차 안에서 자는 1,2,3호를 동시에 앉고 집으로 돌아온 날이면 팔이 좀 뻐근했지만 자고 나면 괜찮아졌다. 몸은 좀 힘들었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상은 행복했다. 아이들에게 집중할수록 나라는 존재는 아이들의 엄마로 스며들게 되었다.


 내 이름이 기억나고부터 마치 도돌이표 같은 일상에서 나에게 선사하는 작은 쉼표들을 만들려고 했다. 가끔 레토르트 식품을 먹이더라도 끼니와 끼니 사이에 한 장이라도 내 책을 읽으려고 했다.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를 찾아가는 시간은 그렇게 조금씩 늘려갔다.


  가정주부였던 우리 엄마는 늘 집에서 따뜻한 음식을 차려주시고, 종알대는 내 말을 빠짐없이 들어주셨다. 엄마가 적극적으로 놀아주지 않았더라도 그냥 엄마가 집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집이라는 곳이 포근하게 느껴졌다. 현관문을 열면 언제나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시던 엄마가 있어서 그저 그게 좋았다.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그 시절의 엄마도 좋으셨을까 궁금하다. 엄마는 나와 동생을 위해 헌신하셨다. 우리네 부모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살림살이와 아이들 치다꺼리만으로 일생을 몸 바치셨다. 엄마의 삶은 나처럼 행복하진 않으셨던 것 같다. 나와 내 동생이 출가하고 많이도 우셨다. 딸의 허전한 빈자리에 엄마도 바빠져야겠다고 백두대간 산행을 시작하셨고, 활기를 되찾으셨다. 엄마로서 더없는 포근함을 우리에게 헌신하셨지만 당신의 인생은 즐기지 못했던 것이었다. 엄마의 일생에서 한번 더 배운다. 나를 위한 시간도 빠짐없이 채우리라.


 이제는 아이들이 모두 교육 기관에 다니니 내 시간이 꽤 많아졌다. 4시간은 짧고도 긴 시간이다. 살림만 해도 부족한 시간이라고 치부하면 짧을 테고, 그간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조금씩 활용하면 알찬 시간이다. 오전의 4시간 동안에는 그간 잊고 지냈던 내 이름을 찾는 시간으로 사용해보려 한다. 아이들을 매일 따뜻하게 맞아주고 싶으면서 또 떳떳한 명함도 하나 갖고 싶은 것은 너무 이기적인 생각일까. 아이들이 "우리 엄마는 집에서 놀아" 대신 "우리 엄마는 어떤 일을 해"라고 얘기할 수 있는 업은 하나 갖고 싶다. 잠재되어 있던 욕망이 자꾸만 떠오른다. 그러면서도 내가 받았던 엄마의 품처럼, 내 아이들에게 따뜻한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 언제 들어와도 텅 빈 집이 아닌, 포근한 품을 가진 엄마가 집에 있단 사실만으로 위로가 되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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