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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스 Sep 19. 2023

엄마가 화났다.

아이에 대한 진리는 하나밖에 없다. 사랑받고, 자유롭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누구나 공격성이 적고 겉과 속이 같으며 성실함과 배려하는 마음으로 가득한 사람이 된다. 선량하고, 평화로우며, 사교적인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_알렉산더 수더랜드 닐


 화가 밀려올 때가 있다. 복닥거리는 아이들은 늘 예쁜데, 특별한 이유 없이 그 예뻤던 아이들이 미워 보이거나, 내면의 화를 불러올 때가 있다. 이성을 놓지 말아야 했는데, 어제는 나에게 분명 원인이 있는 것을 알았음에도 아이들에게 화를 내버렸다. "화"라는 감정은 부정의 것이지만 표출하지 않으면 내면에 켜켜이 쌓여 언젠간 화산처럼 폭발할 수도 있다. 화는 분출해야만 누그러지는 감정도 아닌데, 지혜롭게 해소할 수도 있었는데 분출해 버렸다. 그렇게 감정을 억누르고 사는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일상적인 "화"를 내는 편은 아니다. 아이들은 눈치껏 '엄마가 화났다'라는 것을 알아채고 숙연해진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야 하루를 돌이켜보며 반성하고 있다.


 하원한 3호와 곧 하원할 2호를 기다리며 유치원 앞에서 "상어"놀이를 했다. 조팝나무 사이로 머리를 살짝 내놓고 상어처럼 유유히 헤엄치며 3호를 긴장하게 만들어야 하는 놀이다. 내 머리는 상어의 지느러미로 조팝나무 위의 대지는 상어 지느러미가 보이는 수면이다. 3호는 엄마의 머리가 너무 올라와서 재미가 없단다. 엄마가 연기를 너무 못한 탓이다. 3호는 있는 에너지를 다 쏟아내며 고함을 내지른다. 기분이 안 좋다고 바닥에 앉아서 다리를 휘저으며 있는 힘껏 소리를 내뿜는다. 유치원 앞에는 아이들의 하원을 기다리는 부모 인파들이 상당했다. 그 많은 눈들이 나와 3호만 쳐다보는 것 같아서 얼굴이 달아올랐다. 집이라면 3호의 그런 반응은 방임에 해당하는 교육에 들어갔을 테지만, 사람 많은 이곳에서는 3호를 달래야 하는데 나의 화난 감정이 3호를 어루만져주지 않는다. 감정은 빠진 육신으로 3호를 앉았다. 3호는 울음이 그치자마자 이내 잠이 든다. 졸렸던 것이다.


 오후에는 1호의 수영 레슨을 기다리며 아이들과 수영장 건물에서 시간을 보냈다. 수영장 건물의 도서관에서 지난 책을 반납하고 새로운 책을 대출했다. 날씨가 좋아서 바깥 활동 하자는 엄마의 말에 3호는 아기도서관에서 놀고 싶다고 한다. "도서관은 책을 읽는 곳이야, 걸어 다니고 아주 조용히 이야기해야 해."라고 당부를 하고 들어갔지만, 3호는 책 사이를 마치 경보하듯 활보하고 다니고, 애매한 볼륨으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화가 났다. 타이르다가 곧 화를 내고 도서관에서 나왔다.


 지하 1층의 편의점에 들렀다가 1층 로비로 올라오는 길에서 3호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고 싶다고 했고 나는 건강한 다리로는 걸어 다녀야 한다며 계단을 고집했다. 수영장 로비에서 또 3호는 크게 자지러진다. 창피하고 화가 난다. 이번에는 3호를 두고 그냥 나왔다. 울면서 따라오는 3호를 차에 태우며 집에 갈 때까지 연설을 퍼부었다. "운다고 옳지 않은 것을 다 들어줄 수 없어, 반성하고 있어!"


  새근새근 자는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나 지난 하루를 회상한다. 대충 짐작은 했지만, 너무 잘못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싶다는 3호를 뿌리치고 굳이 계단을 이용하며 화를 냈던 나는 내가 아니었다. 5살짜리와 기싸움이라도 하려 했던 걸까.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이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고 들어주지 않았을까. 도서관에서 경보하고 있는 아이에게도 화를 내기 전 좋게 이야기하며 나올 수 있었는데, 화를 낼 필요는 없었는데 화를 내버렸다. 아이가 하원하고 때아닌 투정을 부릴 땐 졸려서 그런 것임을 투정 한 번 받아줄 수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당시의 아이는 미웠다. 지나고 보니 다 내 잘못이다. 순한 양처럼, 지지 않는 꽃처럼 달큼한 냄새를 풍기며 새근대는 아이들 옆에서 엄마는 또 반성한다.


 또 하필 이 시점에 "무조건적 수용"을 하라는 교육 책을 읽고 있으니 죄책감이 더 커진다. 다시 한번 되새긴다. 훈육을 하기 전, 아이의 태도를 나무라기 전에 "아이의 의도"를 먼저 파악하자. 무조건적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마음의 그릇을 넓혀두자.


 내일 아침 눈을 뜨면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얘기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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