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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스 Sep 15. 2023

네 번째 임신

  결혼하기 전에는 예쁜 다이어리에 아주 사소한 것부터 시작하여 이것저것 적는 취미도 있었다. 결혼하고 아이가 하나, 둘, 셋이나 생겨나자 다이어리는커녕 매일 아이 치다꺼리와 살림만 해도 시간은 늘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월경 주기가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고 최근에는 월 초에 했던 기억이 있었다. 격일로 물놀이를 하는 요즈음 그러고 보니 생리가 없어서 편했으나, 기운이 이상하다 느꼈다. 달력을 보니 8월 초에 했어야 할 생리가 하순이 되어가고 있는 이 시점에도 소식이 없다.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그때부터 혼자 태명을 짓고 나에게 음식을 건네줄 때는 태명을 부르며 아기가 먹어야 한다며 1,2,3호 태중에 있을 시절에는 해본 적 없는 자상한 아빠를 코스프레하고 있다. 어색하지만 웃음 지으며 확실한 것 아니니 조금 기다려보자고 했다. 난 그저 생리가 없다고 얘기한 것뿐인데, 타고 다니는 차부터 바꿀 생각을 그리고, 혼자 먼 미래까지 상상한다.

 이른 아침에, 결과를 알려주었다. 연기라고 생각했던 남편의 행동들이 연기가 아니었음을 알아차린 순간이었다.

“어쨌든 빨리 비뇨기과 다녀와 더는 불안하지 않게!”

남편은 “후회하지 않을까? 한 명 더 낳지 않겠어?”라고 나의 감정을 건드렸다.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었다. 이기적이었던 나는 고귀하고 소중한 생명에 마음을 온전히 빼앗겼고, 진실한 사랑에 빠졌다. 부모가 된다는 건, 다른 세계로 차원을 이동하는 것 같았다. 아이를 낳기 전 세상과 낳은 후 세상은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관심은 온통 아이에게만 흘러갔으며 금전적인 보상이 없는 노동은 고되지만 행복했다. 힘들어서 지칠 때 즈음엔 아이가 방긋 웃어주어 하루의 고단함이 저만치 물러가있었다. 처진 뱃살과 커진 엉덩이, 아줌마 말투와 호탕한 웃음소리, 얼굴 곳곳에 퍼진 주근깨와 기미 등은 아이 셋과 바꾼 훈장과도 같았다.


 아이들이 너무 예쁘고 소중해서 마냥 살갗에 대고 비비고 싶었다. 느지막이 기관에 보내고 나니, 이렇게 아이만을 바라보고 산지가 9년이 되었다. 물론 지금도 3호는 유치원을 가는 날 보다 안 가는 날이 더러 있지만, 아이 셋 모두 기관에 가고 나니 또 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교육 기관에 가고 나면 4시간의 잉여 시간은 고요했고, 평온했고, 또 다른 행복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생기면 9년 동안 못했던 요가, 운동, 산책, 채식식단 차려먹기, 종이책 읽기 등을 했다. 특별할 것 없는 행위들이지만, 온전히 나만 바라보는 시간은 오랜만이라 이 시간 또한 소중하고 값지다 느껴졌다. 그렇게 내 시간을 갖게 된 지 4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임신을 상상해 보니, 망설여지는 것은 사실이다.


아이는 그 어느 것보다 위대하고 특별하고 소중하다. 1,2,3호가 한 명 한 명이 고유하고 특별한 것처럼 오지 않은 4호도 만약 존재한다면 그럴 것이다. 앞으로 키워내는 일은 지금의 고민에 비하면 분명히 더 고된 것이겠지만 근시안적으로 더 고민되는 것은 사실이다. 무엇을 선택하든 “그때 내가 다른 길을 선택했더라면” 하고 아쉬움은 남을 것이다.


결단하기 전까지 끝나지 않을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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