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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스 Sep 16. 2023

나는 아무 걱정 없이 산다.

9월 중순의 감사 일기

걱정은 출처가 무엇이건 간에 우리를 악화시키는 것이요, 용기를 앗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인생을 단축시키는 것이다.
_존 란카스터 스팔딩


선선한 바람이 끈적임은 저 멀리 날려 보내고, 가을 냄새를 품고 온다. 어제오늘 부는 바람은 가을바람보다 겨울의 찬 바람처럼 뼛속까지 파고든다. 내내 내렸던 비 때문이었을 것이다. 입술이 찬 바람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다. 립밤을 촉촉이 발라도 듬성듬성 갈라지는 예민한 입술 때문에 입 모양이 쪼글쪼글 해진다. 임대받은 밭에는 무청을 70개나 심었다. 무청 모종에서 단단하고 달큼한 무가 자라나려면 찬 바람은 아직 이르다. 아직 여름철 풀벌레들이 여름이 가지 않았다며 밤마다 지저귀는데, 더위야 조금만 더 머물다 가주련.



핸드크림을 바꿨다. 바꿨다기보다는 기존에 사용하던 핸드크림이 떨어져서 언제인지 모를 선물 받아 두었던 상자를 열었다. 부드러운 핸드크림을 양손에 듬뿍 바르고 남은 것은 팔꿈치부터 쓸어내리며 내 팔을 토닥였다. 은은한 꽃향기가 코에 번진다. 기분이 좋다. 예전에는 아주 강하고 섹시한 향수 냄새, 이를테면 코코마드모아젤 같은 향을 좋아했다. 그 강한 향수를 진하게 뿌려 내가 머물렀던 자리에는 마드모아젤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는 건지 은은향 꽃향기나 풀내음이 좋아진다. 잔잔하게 코 끝에 다가오는 핸드크림의 이름을 외워본다. ’다 쓰면 이걸로 또 사야지.‘



 코로나 바이러스는 잠잠해졌는데, 환절기에 으레 돌고 도는 바이러스가 유행인가 보다. 곳곳에서 'A형 독감에 걸려서', '열이 40도까지 올라서', '감기가 심해서'라며 학교나 유치원에 병결 사유서를 제출한다. 아이들도 어디서 옮았는지 기침을 간혹 한다. 그럼에도 컨디션이 아주 최상이다. 아프지 않음에, 건강한 육체와 마음을 가진 아이들에게 늘 감사하다.


 오랜만에 시댁부모님께 연락을 드렸다. 5월에 찾아뵙고 들른 적이 없으니, 4개월 정도 못 뵈었다. 집에서 시댁까지는 20km 남짓한 거리인데도 잘 찾아뵙질 못한다. 어머님은 항상 "애들 사진이나 보내줘, 뭣하러 와"하신다. 최고의 시어머니다. 그럼에도 4개월 동안 못 찾아뵈었으니 무언가 불효를 하는 것 같은 죄책감이 내면에 있었다. 오늘 연락을 드려 곧 만날 약속을 잡았다. 묵은 죄를 씻어낸 듯 기분이 상쾌했다.


 친정 부모님은 곧 다가올 추석 연휴에 여행을 가자고 선언하셨다. 곧 다가올 친정 가족과의 여행에 벌써부터 설렌다. 여행지는 고모네 별장이기에 라떼까지 동행할 수 있어 아무런 근심 없이 푹 놀다 올 수 있는 곳이다. 아이들은 또 자연에서 곤충을 채집하고 밭에 나가 사과대추와, 사과, 배, 포도 등을 따먹을 테다. 영흥도에 가는 길에는 서해 갯벌에 들러 촉촉한 머드를 밟고, 갈매기에게 새우깡도 줘야겠다.


 남편이 근 한 달 만에 일찍 퇴근했다. 업무 특성상 주로 야근을 하는 편인데, 오늘은 일찍 와서 집에서 술을 마신다. 예전 같았으면 '이 늦은 밤에 저런 정크푸드를 먹고 있다니, 몸이 아주 망가져버리겠네, 한심하다.'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집에서 '혼술'하는 남편이 예뻐 보였다. 저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푸는 행위라고 여겨졌고, 다른 취미거리를 만들지 않음에 감사했다.

무엇보다 밤낮으로 나에게
"오늘도 예쁘다", "사랑해"라는 말을
아끼지 않는 당신이 있어
나는 아무 걱정 없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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