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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스 Oct 04. 2023

궁상맞은 행복

부끄럽게도 30대 중반에 생겨난 경제관념. 일명 "짠테크"

 아낀다고 아껴도 삶은 팍팍하다.

팍팍한 현실에서도 그간 아껴온 내성들은 습관이 되고 새로운 아낌을 향해 나아간다. 팍팍하다는 것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몰랐던 진실된 행복들이 점점 스며든다.  




혹자는 내가 스크루지의 후예정도 되는 줄 알겠다. 사실 나는 한참 전에 유행하던 "욜로족(Yolo)"에 근접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부모님께 받은 용돈이 소중한 줄 모르고 주말이면 스타벅스 캐러멜 마끼아또를 마시고, 대학생 때는 디올 화장품을 펴 발랐으니 겉멋만 잔뜩 든 그런 여자였다. 스타벅스 커피와 디올 화장품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난 그런 소비를 할 능력이 되지 못했는데도 비싼 소비를 고집했다는 예시일 뿐이다. 그런 내가 20대 중반에 결혼을 했고 가계를 꾸려 나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주말이면 우리 부부는 필요한 물건도 없는데 백화점이나 쇼핑몰에 가서 반짝이는 가방이나 옷들을 사고 행복하다 여겼다. 그렇게 돈을 주고 산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고 행복의 흐름이 끊길 때에면 또 소비를 해야 했다. 어느덧 아이가 세 명이 불어났고 우연히 접한 주식책들을 읽고 투자가 하고 싶었으나 텅 빈 지갑뿐이었다.


 왜 이제야 경제관념을 알았냐 질책하다가도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싶었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른 것이라 했는가. 이제부터라도 아끼며 살아가리라 다짐했다. 커피부터 끊었다. 정확하게는 약속이 없으면 카페에 가지 않았다. 매일 스타벅스나 로스터리 카페에 가서 습관처럼 마시던 커피를 사 먹지 않았다. 집에서 스탠리 텀블러에 카누를 타서 외출하면 그것으로 충족되었다. 스탠리 텀블러는 보온보냉력이 뛰어나 일회용 잔보다 커피의 시원함과 따뜻함이 오래 지속되었으며 무거운 것만 빼면 집에서 타간 커피는 여러모로 장점이 많았다. 부러 카페에 들르지 않아도 되니 시간도 절약되었다.


 아이들에게 고급 브랜드 옷만 입히던 내가 주변에서 옷을 물려받았다. 옷을 물려받고도 부족하면 플리마켓에 가서 몇 천 원 하는 옷들을 샀다. 굳이 새 옷을 입힐 이유가 없었다. 아이들은 바깥에서 뛰어놀고 흙바닥에서 뒹굴고 넘어지기 일쑤다. 오히려 새 옷보다 헌 옷이 편했다. 더군다나 우리 집에는 아이가 셋이라 물려받은 옷을 내리 물려받으면 그렇게 신명 날 수가 없었다. 새 옷에서 나오는 유해한 물질도 20번은 세탁해야 빠진다니 옷의 대물림이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었다.


 아이들이 어려 살림이 어렵다는 핑계로 매일같이 시켜 먹던 배달도 끊었다. 아이들이 좀 커서 수월해진 것도 한 몫했을 것이다. 단출하게 한 그릇 밥상으로 주더라도 아이들에게 더 건강하고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니 뿌듯했고 여러 번 반복하다 보니 요리도 조금씩 늘어갔다.


 키즈카페만 서성이던 내가 야외로 다니게 되었다. 야외는 위험하고 힘들 줄 알았던 내 생각은 큰 오산이었다. 녹음과 파란 하늘의 풍광에 아이들을 담아보니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었다. 키즈카페 말고 아이를 내놓기에 세상은 위험한 줄 알았던 내가 무지했다. 자연은 그 어느 장소보다 위대했다. 아이들은 자연에서 노닐며 계절의 변화와 흐름을 자연스레 깨우쳤다. 장난감이 없어도 주변에 굴러다니는 자연물이 놀잇감이 되었고, 햇볕을 받고 놀다 보니 건강과 체력은 나날이 좋아졌다.


  이제 아이들과 외출할 때면 36리터짜리 보냉백에 여러 가지 간식거리들을 챙겨 나가는 것이 몸에 배었다. 보냉백안에는 아이들이 마실 음료수, 방울토마토, 계절 과일, 젤리, 마른과자, 물 등을 넣는다. 아이가 세 명이니 가짓수마다 수량은 3개씩이다. 이렇게 외출하면 꽤 많은 비용을 아낄 수 있다. 또한 한 시간 이상 자차 이동시에도 요기 나게 배를 불릴 수 있어서 여러모로 좋은 아이템이다.


 해보니 "절약"은 궁상맞지 않았다.

 절약은 할수록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아졌고, 하는 만큼 소박한 행복으로 되돌아왔다. 소비는 한낱 쾌락에 불과했다. 그 쾌감은 오래가지 않았고, 잠깐의 쾌감을 위해서는 소비를 지속해야만 했다. 늦게 알았다고 한탄할 시간에 지금부터라도 아껴보자 마음을 다잡았다. 이제라도 경제관념이 생겨나서 참 다행이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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