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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스 Sep 28. 2023

시집 잘 간 여자

아빠 자질은 미비하나 남편 자질은 월등한 당신

  


 22살 때 처음 만났던 남편은 나의 몸무게를 두 번 곱하고도 20킬로 정도 더 나갔다. 상상이 가지 않는 남녀의 그림은 보는 이 마다 "남자가 나라에 전생을 구했네"라며 나를 더 치켜세웠다. 7살의 나이차이도 그런 시선에 한몫했을 것이다. 4년 반의 연애 기간 동안에 당시의 남자친구였던 남편은 나를 공주 모시듯 대접했으며 나는 그런 처우를 받는 것에 익숙해져 갔다. 그렇게 나에게 헌신하는 남자와 결혼을 했다. 솔직히 나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다. '나를 이만큼 사랑해 줄 유일한 남자'라고 여겨 저서 그의 구애에 승낙한 것뿐이었다. 남편의 주는 사랑이 익숙했고 당연하다고 치부했다. 왜냐하면 나는 어리고 예뻤고, 그는 야수와도 같았으니까.


 결혼과 동시에 생겨난 아기를 출산하자마자 우리의 관계는 삐걱댔다. 어쩌면 내면의 내 감정들만 용오름 쳤을 수도 있다. 대개 남자들이 그러하듯 감정에 무심한 남편이기에 그는 몰랐을 수도 있다.

남편의 삶은 존재자체를 부정하기라도 하듯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었다.

그는 출근하지 않는 날이면 샤워는커녕 양치도 게을리했다. 집에 있을 때면 바닥에 일체형처럼 붙어 지내려고 했으며, 영상물에 빠져 대화를 할 때도 스마트폰이나 TV만 보려고 했다. 입에 버릇처럼 달고 사는 "귀찮아", "짜증 나" 따위의 부정어구도 듣기 싫었고, 주말에 우리 어디 갈까 하는 내 물음에 대한 대답은 늘 "쇼핑몰"이었다. 목적 없이 시간을 때우러 간 쇼핑몰도 싫었다.


 아이가 커갈수록 그의 행동들은
"아빠 자질"에 대한 의구심까지 품었다.

3호를 뱃속에 품고 있을 당시의 나는 평소처럼 1,2호의 목욕을 시키다가 남편에게 제안을 해봤다. "이제 1호는 좀 컸으니 목욕 한번 시켜봐" 돌아오는 대답은 "나는 그런 거 못해, 하던 사람이 해"였다. 남편은 늘 이런 식이었다. 몸 전체가 부르르 떨릴 정도로 분노가 에워쌌지만 꾹 참고 아이들을 재웠다. 몹쓸 말들을 내뱉고 자고 있는 남편을 후려갈기고 싶었지만 차분히 깨워서 옆 방으로 불렀다. 나는 설득인지, 설교인지를 한 시간가량 늘어놓았고, "내가 왜 목욕을 시켜야 하냐"던 남편은 끝내 “주말 1호 목욕 담당”으로 육아에 입문했다. 그렇다. 당시 뱃속의 3호까지 하면 아이가 3명임에도 남편은 육아에 참여해 본 적도 없는 그런 인간이었다. 목욕은커녕 소변 기저귀 교체조차 해본 적이 없는 그런 인간이었다. 남편은 IT업계 특성상 잦은 야근으로 평일에는 마주치기 힘들었고, 주말에는 남편의 말처럼 늘 내가 해왔으니 엄마인 나만 하는 육아였다. 시키지 않으면 당연한 줄 여기는 남편이 증오스러웠고, 한심했다. '그럴 거면 결혼은 왜 하고, 아이는 왜 낳았니.'


  '주말 1호 목욕시키기'로 육아에 입문한 남편은 그 이후로 시키는 일은 꽤 잘 해냈다. 끊임없이 남편에게 강요적인 설득을 한 나의 덕택이다. 그렇게 집안일과 육아에 몸이 벤 남편은 이제는 시키지 않아도 능숙하다.


육아가 힘든 어느 날엔, 꼭 남편이 미웠다.

애 셋을 나 혼자 감내하다니 참 버겁다.

다른 집들은 남편이 잘도 도와주던데,

독박 육아가 너무 고되다.

남편은 돈 버는 기계인 것인가.


 남편은 신혼 초기에 "나 집안일하기 싫은데, 가정부 써, 얼마나 한다고"이런 망언을 한 적도 있었다. 가정부를 고용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나, 본인이 그려놓은 한 줌의 흔적들조차도 치우려고 하지 않는 천성이 게으른 태도에 화가 났었다.





 


 그런 사람이 언제는 분명 꼭두새벽에 퇴근했다. 그다음 날, 주방에 나가보니 어제와는 사뭇 다른 주방의 풍경에 화들짝 놀란 적이 있었다. 결벽증세와 근접했던 내가 아이 세명의 육아에 치여 너저분한 주방의 차림을 미처 치우지 못하고 잠들었던 어느 날, 새벽에 퇴근한 남편은 "시키지도" 않은 주방의 너저분함을 깨끗이 지웠다. 그때부터였다.


 육아는 나 혼자 하는 게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새벽에 퇴근해도 주방뿐 아니라 미처 우리가 치우지 못했던 흔적들을 정리하고 그는 잠을 청했다. 굳이 치우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깔끔한 걸 좋아하는 나에게 기분 좋은 아침을 선사하려고 나름 애를 쓴 것이다. 뿐만 아니다. 집에서 나오는 각종 쓰레기 처리도 매번 그의 몫이었다. 그는 우스갯소리로 "분리수거는 어떻게 하는지 알아?", "음식물 쓰레기 어디에 버리는 줄 알아?" 하며 나를 놀려댄다. 맞다. 나는 쓰레기도 한 번 버려본 적도 없으면서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묵묵히 우리의 흔적들을 없애주는 그의 노고를 뒤늦게 알아봤다.

 이제는 주말이면 그는 독박 육아를 자청한다. 어떻게든 아이 셋을 데리고 나가서 잠깐이라도 나의 숨통을 쉬게 해 주려고 안달이다. 사람이 이렇게 돌변할 수 있단 말인가.


 무엇보다 남편은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자기"라며 나를 아낌없이 사랑해 준다. 남편의 "아빠 자질"에 대해서 의문을 품었을 때도, 그냥 넘어갈 수 있었던 건 변함없는 그의 사랑 때문이었다. 연애를 4년 넘게 하고 결혼한 지 9년이 지나가고 있다. 13년을 매일 같이 "사랑한다", "예쁘다"라고 말해주는 남자가 어디 있을까. 그의 눈을 보고 있노라면, 그것이 진실임을 금세 알아차린다. 살림에 찌들어 있는 내가, 그의 눈 속에 비치면 반짝인다. 아낌없이 주는 그의 사랑에 고된 육아에도 지치지 않을 수 있었다.


 이제껏 나는 타박하기 바빴다. 13년의 세월 동안 나는 그에게 마치 엄마가 아들 대하듯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오죽하면 1호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엄마는 왜 좋아하지 않은 사람하고 결혼했어? 좋아하는 사람하고 결혼했으면 혼내지 않아도 되잖아." 아이의 시선에서는 매일 같이 아빠를 혼내는 엄마가 있었다. 1호의 이야기는 나를 성찰하게 해 주었다. 나는 되도록 참고 호전하여 건네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전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성찰하면 무엇하랴. 오래도록 입에 밴 습관들은 잘 고쳐지지 않는다. 남편에게 오늘도 이맛살을 찌푸리며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다. 남편은 늘 이렇게 답변한다. "화내도 예쁘네, 그래도 사랑해"

남편은 좋은 아빠는 아니지만 최고의 남편이다.

혼자 이루어낸 육아와 가정인 줄 알았는데, 늘 사랑을 주는 남편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임을 깨달았다.

"고마워 남편, 나도 사랑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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