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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스 Oct 02. 2023

신흥 종교

아이는 부모를 미치게 하는 종교 같은 것.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오후 9시 전후가 된다. 나는 주로 아이들의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들으며 전자책을 읽거나 작은 독서등을 켜고 종이책을 읽거나 한다. 추석 연휴에는 책이 잘 읽히지 않는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재미가 없는지 불 꺼진 방 안에서 목적 없는 손가락이 스마트 폰 위를 지휘한다. 이럴 때면 쓰는 게 낫겠다 싶어서 맥북을 가져온다. 브런치스토리 플랫폼에 갓 입문한 새내기라 브런치 발행에 재미 들린 탓이다. 그렇다. 요새 나의 취미는 읽기 아니면 쓰기다.


 


 

 작년 여름 처음 갔던 수리산에서 개구리를 잘 잡는 아이가 있었다. 나의 자녀들은 계곡에서의 채집이 처음인지라 개구리 실물을 영접하는 것이 소원이었던 그날, 1호보다 한 살 더 많은 그 아이를 보았다.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아이는 손만 대면 손에서 개구리를 튀어나오게 하는 마법이라도 부린 듯 손안에 채집한 개구리를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다. 버들치, 도롱뇽, 올챙이, 메뚜기과 곤충 등 수렵채집인의 후예라 할 정도로 대단한 아이였다. 개구리를 잘 잡아서 우리는 그 아이를 "개구리형"이라고 불렀다.



 수리산 아래 공원은 한적하고, 풍광이 한 폭의 그림 같아서 그 이후로 우리는 그곳엘 자주 다녔다. 우리가 세 번을 가면 꼭 한 번은 개구리형을 만났다. 아이들은 이산가족이라도 상봉한 듯 개구리형을 만나면 끌어안고 몹시 좋아라 했다. 한 달 전의 만남에서 나는 개구리형의 어머니에게 연락처를 물었다. 그렇게 연락처를 주고받은 뒤 오늘은 처음으로 개구리형과 만남의 약속을 가졌다.


 처녀 시절의 나는 냉소적이고, 비사교적이었다. 특히 모르는 사람하고는 일절 대화하지 않았다. 아이를 낳고 보니, 비슷한 또래를 가진 부모와는 비교적 대화거리도 많았고 잘 통하는 면이 있었다. "아이"라는 주제로는 일 년을 대화해도 이야기보따리는 샘솟는 우물 같을 것이다. 개구리형의 부모님은 우리(나와 남편)보다 10년은 더 세월을 보내신 연배였다. 같은 또래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고, 같은 행복을 누리고 있었다.


 두 분은 30대 후반에 만난서 결혼했다. 시험관으로 잉태한 생명을 낳았고, 아이는 하늘에서 주신 선물 같았다고 하셨다. 아이의 정서에 좋으라고 산으로 들로 다니셨던 게 아이는 그 자연 속에서 자연히 채집을 하며 자라났다. 아니 자라는 중이다.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인데, 공부에는 관심도 없고 남자아이들이 주로 즐기는 축구에도 흥미가 없어서 고민이라고 하신다. 매번 채집에만 재미를 붙이니, 이제는 채집 활동을 졸업했으면 한다고 아버님은 진심으로 바라셨다. 그러면서도 아이와 무엇을 하며 놀 수 있을까 궁리 끝에 최근에는 낚시를 시작하셨다고 한다. 그들도 모순적이었다. 아이의 취미 생활을 중단하길 바라면서도 좋아하는 취미를 연계하여 확장시켜 주었다. 낚시도 무언가를 잡는 것이니 좋아할 줄 아셨나 보다. 아이는 이제 초등학교 3학년으로 진득하니 앉아서 찌를 문 물고기만 기다리기에는 에너지가 넘친다. 아이는 무언가 눈앞에서 움직이는 생명을 즉흥적으로 채집하는 그 스릴을 즐기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마치 맹수가 사냥을 하듯. 나는 그런 개구리형이 보통이 아님을 느꼈다. 처음 본 그 순간부터, 반짝이는 눈빛이 또래와 달랐다. 채집을 정말 잘하기도 했지만 그 열정과 해박한 지식들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해루질로 낙지를 잡았다고도 했으니, 학교가 지루할 수밖에 없는 아이다. 나는 그 특별한 재능이 아깝게 느껴졌다. 개구리형의 부모에게 아이의 재능을 살려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드렸다. 안 그래도 그들은 아이를 원양어선에 보내려고 한다고 농담을 주고받았다.


 



 대화의 흐름 중 아이를 낳아 보니 낳기 전과 정말 다른 현실에 대하여 이야기가 오고 갔다. 남편은 아이를 낳으니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고 얘기했다. 나는 아이를 낳고 보니 마치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 듯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 것 같다고 혼자 생각했다. 개구리형의 아버지는 종교 같다고 하셨다. 다들 아이에게 미쳐 살아간다고. 아이가 뭐라고.

 

그렇다. 아이를 낳고 보면 전혀 다르게 흘러가는 세상에 부모는 아이에게 미쳐 살아간다. 아이들은 알까. 이 위대한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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