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현실의 줄다리기

디아망 대신 베스띠로, 가랑이 찢어지지 않는 뱁새의 여정

by 아리스

턴키(Turn-key)의 좋지 않은 두 번의 경험에도 다시금 턴키의 문을 두드렸다. 관련 종사자도 아닐뿐더러 빠듯한 공사 일정과 바쁜 일상에 치여 당최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 좌표 잃은 클라이언트처럼 견적서의 금액도 거센 파고처럼 출렁거렸다. 이전 두 번의 인테리어를 진행할 때는 알지 못했다. 자재마다, 품삯마다, 그리고 회사마다 정해진 답도, 정해진 가격도 없다는 것을.


이번에 입주 예정인 집은 93년도에 준공하여 서른 살을 훌쩍 넘은 구축 아파트다. 6년 전 세입자에게 내어줄 요량으로 1천9백만 원에 새시 교체 포함하여 인테리어를 한 이력이 있는 집으로 '구축' 중에서도 그리 나쁜 컨디션의 집은 아니었다(고 나름 생각했다.) 공사 비용 중 꽤 큰 값이 나가는 '창호' 값을 아끼는 것만으로 큰 기쁨이었다. 그러나 인테리어 직전, 집을 둘러보는 과정에서 '새시 교체'가 전체 새시가 아닌, 외창호만이었음을 알게 되면서 내창호 교체라는 큰 공정을 하나 더 끌어안게 된 것은 비극도 아니었다.


진짜 복병은 따로 있었다. 바로 거실 중앙에서 존재감을 내뿜던 '분배기장'이었다. 크지 않은 거실에 떡하니 자리 잡은 '분배기장'을 보고 있노라니 수 십 년 전, 집을 이렇게 설계한 시공사가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안락한 공간, 온 가족이 만나는 휴식의 장소에 당당하게 위치한 분배기와 그것을 에워싼 분배기장. 이 이기적인 것들로 인해 거실과 주방 심지어 집안 전체 분위기를 망가트렸다. 지난 인테리어 당시 ubr 욕실 2개소 철거 비용이 500만 원대였으니 이보다 작은 값이라고 부러 위안을 삼았더랬다. (ubr 욕실은 공장에서 욕실을 통으로 찍어낸 조립형 화장실로 90년대경 공사 기간 단축을 위해 사용된 사례가 제법 있었다. ubr 욕실의 단점 중 하나는 일반 욕실에 비해 철거 비용이 2~3배가량 비싸다는 점.).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말이 절로 세어나왔다. '나쁘지 않은' 컨디션에 최종까지 '필름 시공'으로 계획을 변경하지 않았던 주방 마저 나를 배신했다. 공사 직전 비좁은 주방에 들어설 냉장고 자리가 없다는 사실에 턱끝이 바닥까지 내려앉을 판이었다. 이 구조라면 냉장고는 식탁 옆에 기둥처럼 놓여져야 했고 분배기장보다 더한 우리집 '트롤'이 되어버릴 셈. 속은 쓰리지만 빠르게 계획을 변경하며 쓰라린 공정을 하나 더 끌어안았다.


이렇듯 시나리오에 없었던 공정들이 하나둘 추가되면서 다른 인테리어에 들어가는 비용을 절약해야 했다. 처음부터 친환경 페인트나 수입 타일에는 눈 돌릴 틈도 없었고 요즘 다 한다는 '디아망' 벽지도 쉽게 포기할 수밖에.('디아망'은 LX지인의 프리미엄 실크 벽지 라인업 중 하나로, 일반 실크 벽지에 비해 최소 1.5배 비싸다.) 2025년 11월 기준, 비확장임에도 인테리어 값은 평당 200만 원을 웃돌았다. 자재값이 아무리 올랐다지만 배보다 배꼽이 클 수는 없는 법이다. 처음 잡았던 인테리어 예산은 3,500만 원. 그러나 예정에 없었던 창호 교체와 분배기 이동 그리고 주방 재시공이라는 변수로 4,000만 원을 최대 예산으로 잡고 턴키를 포함하여 숨고, 발품, 손품 그리고 입품으로 호박에 줄 그어줄 전문가들을 찾아 나섰다.


시간은 촉박했고 본업에 충실하지 못한 지금을 자책도 했지만 오늘 내가 투자한 시간으로 천만 원은 족히 아낄 수 있다고 생각하니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핀터레스트나 오늘의 집에서 보는 멋스러운 공간처럼 과연 내 집을 꾸밀 수 있을까? 메모를 거듭하고, 포트폴리오를 모으고 모아 진정 내가 추구하는 공간과 취향을 알아갔다. 트렌드가 아닌, 내 가족이 사용하고 우리 만의 보금자리가 될 그런 집. 대중이 좋아하는 집이 아닌, 업체에서 그럴듯하게 찍어내는 집이 아닌, 우리 부부와 내 아이들의 안식처. 그곳은 디아망이 아니어도 괜찮았고, 구정마루가 아니어도 좋았다. 그렇게 보급형 등급의 자재와 합리적인 시공 방법으로 계획안을 거듭 수정해 나가며, 최고보다 최선을 위해 선택과 집중에 포커스를 맞췄다.


화장실 2개소는 '덧방' 진행으로 철거, 폐기물, 설비, 방수, 미장 등의 비용을 십분 아낄 수 있었다. 디아망은 포기해도 600각 타일은 욕심이 났건만, 가랑이 찢어질라 300x600 국산 타일에 애써 양보했다.


서른 살도 훌쩍 넘은 발코니의 클래식한 타일은 덧방 시공조차 하지 않는다고 하니 '다 고치고 나면 낡은 타일만 눈에 들어올 텐데..'라며 다수의 전문가들은 나의 계획을 심히 우려했다. 죽은 공간에 돈을 투자하고 싶지 않기도 했지만, 차가운 타일 감촉이 싫어 인조 잔디와 데코타일로 데드스페이스를 살려볼 작은 포부를 살짝씩 내비치며 애써 '괜찮다' 말했다.


다 포기해도 끝까지 고집을 부렸던 건 다름 아닌 '조명'이었다. 까닭에 예산을 부쩍 초과했고 계획서를 거듭 수정해도 금액이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조명 사장님께는 ‘이번 인테리어에서 가장 욕심을 부린 조명이지만 예산에 맞지 않아 계획을 지속적으로 변경하여 죄송하다'라고 말씀드렸다. 사장님은 대뜸 조명 일정을 하루만 더 늘려달라고 하시며 어렵지 않게 품삯 하나 비용을 줄여 견적을 예산에 맞게 수정해 주셨다.


위엄 있고 우아한 황새도 좋지만, 앙증맞은 뱁새도 사랑스럽지 아니한가. 공사가 한창인 지금에 와서야 '어차피 살림 들여놓고 살다 보면 거기서 거기일 텐데'라는 회고도 가져본다. '조명' 이외에는 더 예산을 줄여볼걸.. 이러한 아쉬움은 수년 후에도 '... 해볼걸'이라는 미련이 남을 테니, 나의 보폭에 맞춰 한 걸음씩 인테리어의 여정을 완주해본다.



N번째 수정한 인테리어 계획안(이후에도 공정이 끝날 때까지 수정은 계속되었다.) | 계획안 내 이미지의 출처 : 오늘의 집


keyword
토요일 연재
이전 01화프롤로그 : 세 번째 인테리어, 첫 번째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