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나누어 더 넓게 쓰는 역설, 목공의 마법
인테리어 공사에서 철거로 집의 노폐물을 제거했다면, 설비를 통해 집구석구석 혈액을 통하게 만들었다. 그다음 공정으로는 집의 뼈대를 세우는 '목공'이었다. 아무리 좋은 옷을 입혀도 골격이 뒤틀려 있으면 옷태가 살지 않듯, 목공은 집의 수평을 맞추고 공간의 구획을 정리하는 근본적인 토대가 된다. 나는 이 형상을 세우는 과정에서 남들이 말리는 '가벽'이라는 갈비뼈를 두 대나 더해보기로 한 것이다.
먼저 아파트 현장에서 목수가 하는 일은 생각보다 방대하다. 천장 내림(덴조나 평천장 등), 아치형 입구 조성, 커튼 박스 제작부터 문틀, 방문, 중문, 문선, 몰딩, 걸레받이, 아트월 그리고 단열재 시공까지. 공사 전에는 분배기장이나 붙박이 가구, 냉장고장 제작도 당연히 목수의 영역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반셀프 인테리어라는 실전형 학습을 통해 제작 가구는 '싱크대 팀'의 소관이라는 걸 알아갔다. 턴키라면 몰라도 되는 공정의 경계와 책임 소재를 나는 몸소 배워야 했다.
우리 집은 93년생 구축 아파트답게 현관문을 열면 집 안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구조였다. 오물을 배설하는 화장실과 안락한 휴식 공간인 거실까지의 거리는 고작 한 뼘. 화장실에서 보이는 거실의 전경도, 과도하게 개방된 집의 구조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전에 살던 4 bay 신축 아파트의 안정감을 되찾기 위해 나는 거실에 장장 2m의 가벽을 세웠다.
거실에 깊게 뿌리내린 가벽은 거실과 복도라는 완벽한 공간 분리를 선사했다. 거실에서 마주 보며 공부하는 아이들은 더 몰입도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고, 화장실은 비로소 프라이빗한 공간이 되었다. 배달과 택배 초인종 소리에 온 가족이 옷매무새를 다듬을 필요도, 눈곱을 애써 떼며 당황할 필요도 없게 된 것이다.
구축아파트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거실처럼 드넓은 안방이다. 우리 부부는 생활 패턴이 다르고, 필자는 예민한 편이라 칠흑 같은 어둠 사이 화장실 조명 하나에 잠을 설치곤 한다. 나는 안방 가벽을 통해 화장실과 드레스룸을 하나의 독립된 공간으로 품고 싶었다. 전문가들은 침실이 너무 좁아진다며 공사 직전까지 재고를 권했지만, 나는 끝까지 고집부렸다. "어차피 잠만 자는 공간인데, 침실이 넓어 무엇하랴."
결과는 '신의 한 수'였다. 아치형 개방문에 암막 커튼을 달아 샤워 전후로 옷을 편하게 탈의할 수 있는 편리함. 침실에는 가습기를, 가벽 뒤 드레스룸에는 제습기를 따로 가동하는 쾌적함, 13자 장롱을 가득 채우던 옷가지들을 한 번에 관리하는 수납력까지. 배보다 배꼽이 큰 이 가벽이 만든 드레스룸은 삶의 질을 십분 높여주었다.
천장 작업 역시 반전의 연속이었다. 유행이란 돌고 돌아, 한때 개방감의 상징이었던 우물형 천장이 지나가고 이제는 정갈한 평천장이 트렌드로 자리 잡는 요즘이다. 집은 하루이틀 지내는 물건도 아니고 유행이 지나갔다지만 다시 돌아올 우물형 천장이기에 애써 손대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시나리오에 없던 목공 사장님의 '단내림 서비스'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투박한 우물형 천장을 메우고 평천장을 만드니 집의 선이 비로소 정돈되어 보였다.
하지만 '무몰딩'만큼은 집이 허락하지 않았다. 30년 세월이 만든 뒤틀린 선과 면은 수평이라는 개념 자체를 거부하고 있었다. 무리한 무몰딩은 되려 결함이 도드라져 보일 터였다. 결국 나는 이상을 내어주며 '마이너스 몰딩'이라는 현실을 택했다. 그것은 뒤틀린 뼈대를 인정하고 그 결함을 자연스럽게 감추기 위한 유일한 숨통이었다.
집의 분위기는 아트월과 중문에서 비로소 정점을 찍었다. '오늘의 집'과 '핀터레스트'에서 모은 레퍼런스 이미지를 보여주자 목공 사장님은 상상을 현실로 구현해 내셨다.
특히 중문과 아트월에 입힌 색채는 나의 확고한 취향이 반영된 '월넛'이었다. 혹자는 유행이 지난 올드한 컬러라고 했지만, 월넛만이 가진 묵직한 따뜻함과 고급스러운 감성은 우리 집의 중심을 단단하게 잡아주었다. 유행을 좇기보다 나의 감각을 믿었던 선택은 옳았다. 월넛의 깊은 색감은 집 전체에 적당한 무게감을 실어주며 월넛만이 지닌 고유한 감성은 그 어떤 컬러도 따라올 수 없었다.
목공은 결국 집이라는 도화지에 가장 정직한 선을 긋는 작업이다. 비록 9mm 문선과 무몰딩은 이상을 좇지 못했지만, 가벽이 만든 새로운 질서와 아트월이 주는 시각적 쾌감은 그 이상의 가치를 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