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 600각 포기하고 덧방으로 아낀 2개소 욕실

by 아리스

가성비 인테리어로 계획을 추리다 보니 가장 먼저 포기했던 건 다름 아닌 '화장실'이었다. 6년 전 교체했던 타일에 변기와 세면대, 수전 같은 액세서리만 바꾸면서 욕실에는 지갑을 열지 않을 작정이었다. 하지만 나의 전략을 비웃기라도 하듯 '부분 수리'에 대한 견적서는 생각보다 높았고, "이 정도 수리는 안 한다"는 곳이 더러 있었다. 머리로 짜두었던 계획안과 다르게 내 시선은 점점 '화장실 인테리어' 포트폴리오에 머무르고 있었다.


어느 날에는 신호 대기 중 '욕실 전문 리모델링'이라는 글자가 번쩍였다.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무수히 많은 자동차 중 한 대가 왜 눈에 들어왔을까. 허름한 트럭, 대각선에서 나란히 초록불 신호를 기다리던 '욕실 전문 리모델링'이라는 글자가 사라질까 무서워 스마트폰으로 급하게 사진부터 남겼다. 잠시 후 차를 정차하고 사진 속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욕실 인테리어 사장님이시죠? 상담 좀 받고 싶은데요." 트럭 운전사는 마침 근처 현장에서 공사가 한창이라며 공사장 문을 활짝 열어두셨다.


시간을 쪼개 달려간 그날의 만남은 나의 욕실 계획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부분 수리 예산에서 조금만 더 보태면 욕실 두 곳을 완전히 새것으로 바꿀 수 있었다. 아메리칸 스탠다드와 졸리컷, 그리고 600각 타일 같은 욕심만 비우면 모든 게 가능한 가성비 화장실 인테리어였다.


나라고 왜 호텔처럼 고급스러운 욕실을 하고 싶지 않았겠나. 특히 600각 타일은 메지로는 메꿀 수 없는 우아한 멋과 관리의 용이함 때문에 끝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현실적인 시공비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이상과 현실의 줄타기 속에서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요즘 '노멀'로 통하는 아메리칸 스탠다드나 그 하위 브랜드인 대림바스마저도 과감히 포기했다. 대신 선택한 것은 '인토(INTO)'. 대림과 같은 공장 출신으로 어차피 oem이니 똑같다는 욕실 사장님 말을 믿어보기로 했던 것이다. 브랜드 계급장을 떼어낸 대신, 수전과 액세서리에 무광 니켈 포인트를 주니 욕실에 제법 귀티가 흐르기 시작했다.


호텔 느낌을 한 방울이라도 더하고 싶어 고집한 것은 다름 아닌 '조적 파티션'이었다. 덧방 시공에 조적벽까지 들어서면 좁은 욕실이 더 답답해 보일 거라는 우려도 있었다. 웬걸, 타일 색상을 기존의 칙칙한 그레이에서 밝은 베이지 톤으로 바꾸니 오히려 욕실이 훨씬 넓어 보이는 마법이 일어났다.


이번 욕실 공사의 진정한 '효자'는 따로 있었다. 바로 '하츠 티오람'이다. 원래 욕실 사장님은 힘펠 기본형을 달아주려 하셨지만, 나는 조명 사장님이 강력 추천하신 티오람을 직접 구매한 뒤 설치를 부탁드렸다. 욕실 사장님은 환풍기 대세인 힘펠을 두고 왜 중국산을 다느냐 우려하셨지만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30평대 가정 화장실에 휴젠트는 과하다는 경험을 토대로 조언해 주신 조명 사장님의 안목이 빛을 발했다. 티오람과 두 달 지내본 바 겨우내 따뜻하게 샤워할 수 있었고 일주일이면 자욱하던 분홍빛 물때마저 영영 볼 수 없게 되었다.


욕실에서 가장 감동한 포인트는 따로 있었다. 기존 욕실 문틀이 낮아 애초에 욕실 슬리퍼가 문을 열고 닫을 때 걸리기 일쑤였다. 덧방을 하면 그 틈이 더 좁아지니 물이 문 밖으로 튀는 일상도 상상하며 시공을 감행했다. 그런데 생각하지도 못했던 '단올림 서비스'. 덧방만 생각했지 문틀의 단을 올려 삶의 쾌적함을 올리는 것이 가능할 줄은 몰랐다. 여기서 하루의 피로를 녹여주는 니켈 마감의 해바라기 수전까지 더해지니 500만 원을 아끼고도 만족도는 수천만 원 부럽지 않은 욕실이 완성되었다.


인테리어는 결국 '포기'가 아니라 '우선순위의 재배치'였다. 모든 것을 최고급으로 채울 수는 없지만, 나에게 꼭 필요한 기능과 분위기에 집중할 때 비로소 예산과 행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욕실 현장에서 다시 한번 배웠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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