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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별난 Oct 26. 2024

24화 방화범

어떤 불을 지를 건데?

방화범


"오빠보다 높은 사람인가 보네. 너무 공손하게 받는데. 누군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형이야. 난 이 형의 순수함이 좋아. 되는대로 막 살아온 나한테 없는 거거든. 있어도 나한텐 어울리지도 않고. 그리고 형 덕분에 그나마 사람 구실 하는 느낌으로 산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형이야."


"오~호. 되게 멋있나 보네. 나중에 한 번 소개해줘. 보고 싶네. 그리고 건졌다는 물건이 뭐야?"


"너"


"나? 헐. 감동 좀 있었다."


"넌 물건이라는데 좋냐?"


"웅웅. 오빠 덕에 쓰레기에서 그나마 물건은 됐잖아. 키키"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흐음. 그래"


사라는 호식이 품에 안겨 잠이 들었다.


사라가 잠이 드는 그 순간, 도중은 잠에서 깨어났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함께여도 기분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10만 원을 잃고도 즐겁게 이야기하는 친구들 틈에 선 내 모습이 초라해 보였다. 친구들이 사는 저 세상에 나도 가고 싶은데, 정작 그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새벽 고속도로 위로 짙은 안개가 깔리고, 내비게이션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차분히 알려준다. 마치 친구들이 내게 인생의 방향을 일러주는 것처럼. 커피 한 잔을 뽑아 들고, 친구가 해준 말을 곱씹어 본다.


친구의 조언


도박은 그런 거야. 하고 나야 뜨거움을 아는 사람들이 많이 해. 그 불에 탈 땐 이미 늦어. 불속에서 타면서도 그 불이 삶의 빚인 줄 착각하고 살아. 나오려면 삶의 빛을  잃는다고 착각해서 못 나오다가 타 죽든가, 늦게라도 빠져나와 온몸에 화상을 입은 채 살아가는 거야.


도박하는 사람들이 이런 말 엄청 많이 하지. '네가 해봤냐고? 그게 뭐가 무섭냐고? 너는 뭐 이리 배짱이 없어? 이제 방법을 알았어. 돈 없어서 살 길이 없는데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거야?' 등등. 다 헛소리하지 말라고 해.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막노동하고 공장 들어가서라도 살아가. 그냥 돈 우습게 알고 쉽게 벌려다가 중독된 걸 인정 안 하는 자기 합리화일 뿐이야.


도박은 해봐야 아는 것이 아니야. 너 불이 앞에 있는데 들어갈 수 있어? 절대 만져서는 안 되는 거야. 도박이 진짜 위험한 건, 그 불구덩이 속으로 자꾸 소중한 사람들을 끌고 들어가려 하는 거야. 죽으려면 혼자 죽으면 되는데, 다 끌고 들어가 같이 죽으려 해. 돈이 있어야 하는 행위인데, 본인이 다 털리면 소중한 사람들의 돈도 다 끌고 들어가 태울 가능성이 높아. 그리고 불은 더 활활 타올라 주변을 다 불지옥으로 만들 수 있어. 그 뜨거운 열기에 두 눈을 뜰 수가 있을까? 없어. 뜨고 싶어도 못 .


우리 친구들은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다. 딱 너 빼고. 넌 뭐에 빠지면 깊게 빠지고 놓는 성향이 있어서 살짝 위험해. 절대 하지 마. 도중아. 만약 하더라도 너 돈까지만 해.


현명한 사람들은 불을 만지지 않아도 뜨거운 줄 알아. 아니 현명하지 않아도 그건 알 수 있는 거야. 그래서 힘들어도 온몸에 파스를 붙여가며 살아가. 도박으로 수억을 따도 이미 그 사람의 가치관은 다 박살 났기 때문에 가치 없는 돈이야. 피, 땀 흘려 번 1원의 가치에 못 미쳐. 너 이래도 도박할래?


그런데 어떡하겠어. 지가 지 인생 불태운다는데. 소중한 자기 시간과 에너지에 열정의 불이 아닌 죽음의 불을 질러 태우는 모습들 보면 안타까워.  어떤 불을 지를 건데?


결국 이런 점으로 보면,  따든 잃든, 지인들한테 피해를 안 준다 해도 소중한 자신의 가치를 불타게  만들어, 소중한 인생에 본인이 없고 재만 남아. 난 그래서 도박꾼들을 방화범으로 여겨.


차에 두고 다니는 일기장도 꺼내 보았다. 예전 당구를 끊을 때, 썼던 글이었다.


'나란 놈은 잘 산다는 게 뭔지 알 턱이 없다. 지금처럼만 살지 말자.'

안갯속에 있어서 하늘의 별빛을 못 본 게 아니었을지 모른다. 안개 밖만 보려 해서 안 보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빛은 내 눈앞 어디라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들이 바라본 곳에 심어져 있다. 지금 상황보다 중요한 것은 어디를 바라보느냐의 문제다. 이 씨벌건 눈부터 정화하자.


이럴 때도 있었구나. 하지만 지금 내가 쓴 글도 친구의 말도 와닿지 않는다. 아내의 개인회생과 그에 대한 온갖 의문들, 우리 지안이, 그리고 변변찮은 수입으로 위축되어 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돈이 있어야 모든 것이 해결될 것만 같다. 친구의 말처럼 모든 상황을 도박을 할 명분으로 합리화하는 건 아닌지 모른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삶의 짐이 너무 무거워서, 다 팽개치고 어디론가 회피하고 숨을 곳을 찾고 싶기 때문이다. 나이만 먹었지, 세상이 두렵고 무서워 도망 다니는 겁 많은 아이일지도 모른다.


'온 사방이 어둠 같다. 이게 눈을 감은 것과 무엇이 다를까?'


집에 도착해 주차장에서 눈 딱 감고 불법 인터넷 도박 사이트에 가입을 하였다.  눈을 감으니 있던 빛마저 더 안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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